부상하는 민정계 ‘맏형’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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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泰俊 최고위원 경선주자 ‘상징적 대안’으로 부각

민자당의 세 최고위원들이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활짝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의 상식이 되었다.

10월7일 金永三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예측이 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 朴泰俊 최고위원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이 있나”며 김대표의 연설을 맞받아쳤다. 김대표가 지난 9월말 유엔 동시가입에 앞서 부시 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자 이번에는 박최고위원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친형 프레스코트 부시씨와 오찬 및 골프회동을 가진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박최고위원은 28일 스트롬 서먼드 의원을 비롯한 미 상원의원 4명과 오찬회동을 가진 데 이어 모스 배커 상무장관과 양국 통상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고, 29일에는 댄 퀘일 부통령과 회담을 가져 폭넓은 외교력을 과시하고 있다.

부시씨와의 골프회동만 해도 崔在旭 비서실장은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했으나 이를 지켜보는 민자당내 각 계파의 시각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민주계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박최고위원이 미국 캐나다 일본을 방문하고 부시 대통령의 형과 골프를 치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다. 최의원이 “박최고위원과 부시씨와는 평소부터 친분관계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민주계에는 거슬리는 부분이다.

민주계의 한 소장의원은 “박최고위원의 이번 일정을 보면 철저하게 김대표를 의식하고 짠 듯한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고 “김대표 대세론을 차단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박최고위원의 일정에는 정계 지도자들과의 연쇄 회동 말고도 한 · 일슈퍼게임 개막식에서 始球를 하는 행사가 포함돼 있어 보는 이에 따라서는 김대표 일본방문보다 더욱 화려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18일 박최고위원과 노대통령 단독 면담 △20일 민정 · 공화계 중진의원 골프회동 △21일 金鍾泌 최고위원과 노대통령 단독 면담 △22일 박최고위원 외유 등의 일정에서 일반 국민이 받는 느낌은 분명 범상치 않다.

박최고위원이 이번 외유를 통해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22일 공항 출영식 때 70여명도 넘는 민정계 의원들이 참석, 세를 과시했던 민정계의 속셈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공천을 받기 위해 평소 보이지 않던 사람도 몰려들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지만 출영식 장면은 분명 박최고위원 위상이 전에 없이 올라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월계수회 ‘박태준 옹립’ 가장 적극적
박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최근 민정계 분위기와 관련 ‘상징적 대안론’을 제시하고 있다. “당의 단합을 위해 민정계는 그동안 계파 모임을 자제하고 있었다. 장기에 비유하면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노대통령 자신이 차포 다 떨어지고 졸 2개만 가지고 국면을 운영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대통령후보와 관련, ‘민정계가 대안이 없다’는 소리를 더 이상 들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민정계를 관리해온 박최고위원이 민정계의 상징적인 ‘대안’이 되고, 확실한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많았다. 박최고위원 자신도 이런 역할이라면 마다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그가 경선에 나가 누구와 대결을 하고 그런 차원은 분명 아니다.”

박최고위원 자신이 대통령후보 경선 주자로 나서기로 결심한 상황은 아직 아닌 듯하다. 민정계 내부는 그를 경선 주자로 확정짓는 듯한 그룹과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신중론을 펴는 그룹으로 갈려 있다.

그룹 경선주자로 미는 데 제일 열심인 쪽은 朴哲彦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비롯한 월계수회이다. 박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마다 “박최고위원은 포철 신화를 이룩하는 등 좋은 이미지와 경륜을 지니고 있다”고 적극 옹립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박장관의 한 측근도 “이제 세계는 군사력보다 경제력에 의해 패권을 잡는 시대로 변했다”면서 “새로운 지도자는 과거의 민주화 투쟁여부보다 국가경제를 얼마나 잘 이끌어 갈 수 있느냐는 점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지도자 자질론을 상기시켰다.

박장관측에서 지도자의 국가경제 운영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평소 박최고위원이 경제를 모르는 정치인들에 대해 심한 반감을 표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평소 “국가경영과 경제발전에 능력을 가진 50대 인물을 지도자로 밀고 싶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지도자론 때문인지 박최고위원은 유망한 민정계 중진의원 몇명에 대해 경제적 혜안을 시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鍾贊 의원도 경제전문가와 토론을 벌이는 형태의 심사에서 합격점을 받은 사람에 속한다.

민정계 중진의원 상당수는 아직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잇다. 박최고위원의 역할은 민정계를 결집시켜 총선까지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동시에 김대표를 견제하는 선에서 끝나야지 그 이상은 좀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박최고위원도 내각제 개헌 추진은 이제 확실히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박최고위원이 경선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 뒤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았다”는 표현으로 그가 경선 주자로 굳어지는 분위기를 경계했다.

14대 출마하면 ‘경선 출사표’로 봐야
민정계 중진들의 유보적 자세는 박최고위원이 여러 강점 못지 않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최대 약점은 ‘철강왕’이라는 기업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대중 정치인으로서는 널리 인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공화국의 탄생 시점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줄곧 권력핵심부의 언저리에 머물러왔다는 점도 무시될 수 없는 부분이다.

박최고위원은 당내 민정계만이 아닌 당 외곽 인사들과도 널리 접촉, 관리 범위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최근에도 金容甲 전 총무처장관을 비롯한 李相翊 崔明憲 李範俊 전 의원들과 개별 회동, 범여권 결속을 도모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5공의 실력자들과도 만나 향후 정국구도와 관련한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최고위원이 ‘상징적 대안’의 존재로서만 머물 것인지 판단을 내리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유력한 민정계 대통령후보라는 점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정계 한 중진의원은 “민정계 후보가 당 바깥에서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제3의 인물 추대론을 부인했다. 그의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결국 민정계 후보는 박최고위원과 이종찬 의원으로 집약된다. 박최고위원이 14대 총선 출마를 선언한다면 이는 그가 경선을 향한 나래를 활짝 펼쳤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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