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철옹성 쿠바
  • 워싱턴 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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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자본에는 문 활짝

‘관광천국’일구려고 ‘불구대천’미국에도 화해 몸짓

 반체제인사 망명에 강경대응...외교분쟁 빚을 조짐

  북한과 함께 스탈린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는 쿠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가?

  최근 입단의 쿠바 반체제 인사들의 아바나주재 외국대사관 망명사건은 지난 31년간 정통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철옹성’ 을 자부 해 온 쿠바에도 마침내 변화의 바람이 상륙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7월9일 7명의 쿠바인들이 아바나 주제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관에 망명한 것으로 시작된 쿠바인들의 ‘망명 러시’는 “국외탈출에 대한 어떠한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란 쿠바 정부의 강경 입장으로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이나 이 문제는 현재 쿠바와 관련 당사국간에 외교분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정치변화 가능성 거의 없어

  아바나 주재 스페인 대사관으로 쿠바인들이 피신한 사건과 관련, 스페인 정부는 18일 쿠바 주재 대사를 소환했으면 미국도 17일 쿠바 경찰이 스위스 대사관 지역내 미 대표부 지역으로 피신하려던 쿠바인 1명을 체포한 데 대해 강력한 항의를 제기했다.

  이처럼 자국내 망명사건이 외교분쟁으로까지 확대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피엘 카스트로 정권이 이에 굴복할 것이란 조짐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들은 특히 혁신적인 당정 개혁을 발표한 금년 2월16일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카스트로가 “사회주의를 포기하느니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편이 낫다”고 말한 사실을 들어 단기적으로 쿠바가 변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실 밖으로는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강력한 우방인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 혁명으로 개혁물살을 겪고 있고 동 유럽의 마지막 ‘형제국’알바니아마저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데 위기감을 느낀 쿠바정부는 오히려 언론통제를 강화하는 등 내부 단속에 열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쿠바도 요즘 안을 들여다보면 찌든 가난에서 헤어나기 위해 빠끔히 문을 열고 자본주의 나라의 돈이 흘러 들어오도록 손짓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지난 31년동안 마르크스주의로 나라를 이끌어온 카스트로 대통령은 소련의 개혁정책을 통렬히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서방측투자가들에게 왕년의 관광명소 쿠바를 재건해 달라고 손을 내밀고 있다.  쿠바 정부 관리들은 지금까지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겨온 미국을 향해서도 화해의 신호를 보내면서 미국 자본가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고 나서고 있다.

  국영 관광공사 판매담당 이사 조지나 에르난데스 여사는 “생각은 자본주의자처럼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를 떠나는 것은 아니다” 고 말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관광수입을 늘리는 길이 가장 빠르다.  이념이고 뭐고 따질 필요가 없다.  관광사업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개혁 바라는 젊은이의 불만이 큰 위협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하여 공산주의 정권을 세운 이래 미국은 즉각 경제봉쇄를 단행하여 미국인의 투자는 물론 일반 미국인이 관광 목적으로 쿠바를 방문하는 것까지 금지했다.  미국이라는 가장 큰 시장을 잃은 쿠바는 과중한 군사비 지출과 사회보장제도를 뒷받침 할 막대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소련으로부터 해마다 수십억달러씩 원조를 받아왔다.  약 45억달러에 달하는 소련의 원조가 지금 끊긴 것은 아니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장차 제3국에 대한 원조를 중단할 생각을 하고 있어 조만간 쿠바는 소련의 원조 없이 자력으로 살아야 하는 날이 닥쳐올 것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공산주의 나라 치고는 정치 분위기가 비교적 느슨한 쿠바이지만 젊은이들은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고 있는 민주화 열기가 하나하나 착실히 열매 맺는 것을 바라보면서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게 요즘의 상황이다.

  젊은이들로서는 혁명이 가져온 건강 및 의료에 대한 국가적 보장, 그리고 중남미에서는 가장 훌륭한 제도로 알려진 대학까지의 무상교육과 같은 혜택은 당연한 것으로서 별로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일자리가 없고 주택이 태부족인 형편에다 물자도 달리는 가난한 생활에 지쳐 있는 젊은이들은 내놓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다.

  불만을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쿠바를 떠나고 있지만 그 수는 아직 적은 편이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쿠바에도 불어오기를 열망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이들이야말로 카스트로에게는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이다.  이 위협은 날이 갈수록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쿠바봉쇄’풀 생각없이

  관광사업을 늘려나가는 것은 기왕에 관광천국이라는 국제적인 정평이 나있어 그다지 어려운 과제는 아닌 것 같다.  미국 관광객은 없지만 아직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간 30만명이 찾아와 돈을 뿌리고 간다.  카스트로 정권은 앞으로 10년 안에 관광객을 2백만명까지 늘릴 계획을 세우고 추진중이다.  미국인은 쿠바를 방문할 수는 있어도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위법행위로 처벌대상이 된다.  다만 언론인의 취재여행이나 학자들의 연구여행, 그리고 친척 방문의 경우는 이런 규제에서 제외된다.  근년에는 해마다 6천명 가량의 미국인이 쿠바를 방문하고 있다.  캐나다와 서독에서는 매년 5만명씩 관광객이 찾아온다.

  카스트로 정권은 미국이 경제봉쇄를 해제하고 모든 제약을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쿠바를 미국 안보에 위험한 적성국가 명단에서 빼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 명단에는 북한 리비아 이란 베트남도 들어 있다.

  “카스트로는 소련 변화의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쿠바를 족쇄에서 풀어 줄 수 있는가.  그건 말도 안된다”고 아바나 주재 미국 외교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인 웨인 스미드 교수(존스홉킨스대학)는 말했다.  그는 미국이 카스트로에게 개방압력을 가하기 위한 협상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현재로서는 카스트로가 정치적 위기에 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카스트로의 위치가 확고부동한 편이다”라고 분석했다.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노래를 목청을 돋우어 부르고 있는 카스트로의 노랫가락 장단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덩달아 춤을 출지 좀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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