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明勳은 역시 ‘큰 음악’
  • 이성남 문화부차장 대우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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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빛 갚겠다”…9월초 두 누이와 함께 북한공연 추진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의 첫 연주는 ‘애국가’로 시작됐다. 鄭明勳의 지휘에 맞춰 1백20여명의 프랑스 단원이 연주한 ‘애국가’는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메운 한국의 청중들에게 ‘바스티유’와의 행복한 만남을 예견케 했다.

  바스티유 오케스트라는 프랑스가 자존심을 걸고 있는 악단이다. 그 악단의 지휘자인 정명훈의 첫 번째 과제는 프랑스 음악정신을 세계에 떨치고 싶어하는 프랑스인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일일 터이다. 바스티유극장 개관공연작품을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5시간짜리 대작 <트로이 사람들>로 결정한 사실이나, 한국에서의 첫날 연주를 메시앙, 라벨 , 베를리오즈 등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으로만 구성한 것 등에서 그런 의중을 읽을 수 잇다. 심지어 청중의 뜨거운 호응 속에 연주된 두 곡의 앵콜곡조차 프랑스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던 청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정명훈이 지휘하는 이 악단에 매혹되어 프랑스 음악에 열광적 호응과 갈채를 보냈다. 이날 청중들은 베를린 필이나 런던 필을 능가하는 연주를 바라고 있었다.

  첫날의 연주를 지켜본 음악 평론가 李建庸교수는 “정명훈은 능력이 있고, 바스티유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어 머잖아 세계 일류악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첫곡인 메시앙의<잊혀진 헌정>은 표정이 풍부한 곡이 아닌데도 “변화없는 감정을 놀라울 만큼 정확한 계산으로 집요하게 끌고가는” 데에 성공했고, 섬세한 표현력이 요구되는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도 “표정을 잘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또한 19~20일 이틀간 협연 무대를 가진 소프라노 金英美씨는 “오페라 연주 전문악단답게 성악가의 호흡을 매우 잘 맞춰주어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부를 수 있었다”고 밝힌다. 그는 이어 인간의 감정을 때로는 웅장하게, 때로는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정씨의 깊고 넓은 음악성은 결코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 못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칭찬했다.

 

메시앙 “정명훈을 위해 오페라 작곡할 터”

  한 음악애호가는 “프랑스인들에 의해 가장 잘 소화되었던 프랑스 음악이 정명훈이라는 한국인에 의해 완결된 느낌”이라고 기뻐하며 세계인으로 우뚝 선‘그가 있어 기분 좋은 날’이라며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반면, 정명훈의 쾌거는 그 개인의 것일 뿐 우리 음악문화가 그만큼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또 18일부터 21일까지 4일 동안 계속된 연주회에 한국 작곡가의 관현악곡이 한곡쯤 들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의 소리도 있다. 아울러 우리 음악문화와 정명훈 음악 사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도 제기되고 있다.

  정명훈은 자신과 바스티유와의 관계를 이제 갓 결혼식을 올린 부부에 비유했다. 그는 개관공연을 앞두고 ‘바스티유 항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한가닥 불안한 심경을 토로한 적도 있다. 이윽고 ‘운명의 날’인 3월 17일. 바스티유 오페라좌를 가득 메운 2천7백명의 청중은 20여분간 기립박수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자크 랑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이 현란한 밤은 그에 의해 이루어졌다. 장엄하기 그지 없다. 그에게, 그리고 한국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현대음악의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는 82살의 메시앙은 ”여력이 허용된다면 그를 위해 꼭 오페라를 작곡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개관공연의 성공을 이렇게 풀이했다. “그것은 거의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느님이 도우셔서 된 일이지…. 막 오르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무대에 올리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드레스 리허설을 할 때까지 조명이 안 들어왔고 공연 중간에도 무대장치를 한 벽이 무너졌어요.“

  평소 그는 ”돈 많은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듯이 공부 많이 한 음악가가 이제 시작하는 젊은 사람을 도와주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그 ‘빚’을 조국의 젊은 음악인이나 교향악단에 갚겠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그 계획은 이번 내한 기간 중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21일 오후 3시에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를 연 일이나, 23일에 3명의 피아노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예음홀에서 가진 무료 마스터클래스, 그리고 장애자를 돕기 위한 정트리오 특별연주회 개최등이 그런 의지의 발현인 셈이다.

 

정 트리오 16년 만에 내한공연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그의 초청 여부가 또다시 논의되고 있다. 그도 오페라단의 운영 및 조직이 체계화되어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자신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겠다”고 말한다.  비록 그가 미국에서 20년 동안 음악수업을 받은 ‘국제 음악인’일망정 “세계 어디를 가나 한시도 조국을 잊어본 적이 없고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투철했다”는 말을 이제 차근차근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이상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트리오 연주회는 8월2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울산· 부산 등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저마다 바쁜 연주 스케줄 때문에 함께 모이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이 들이 국내에서 콘서트를 여는 것은 16년만의 일이다.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얼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노의 정명훈이 협연할 곡은 슈베르트 트리오 내림 B장조, 드보르자크 트리오 F단조 등이다.

  알려진 바대로 북한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정트리오 공연을 추진해 왔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4월에 평양에서 열린 ‘4월의 봄 예술축전’에 참가했던 재미 음악인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정씨 가족도 최근 2~3년 동안 간접적으로 몇 차례 북한측의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히고 “전 세계가 냉전체제를 불식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남북 화합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정트리오의 북한연주는 첫째 양쪽 정부의 승인이, 둘째 세 사람의 연주 스케줄이 비어 있어야 가능하다.  만일 이 두 조건이 맞아떨어질 경우, “8월말의 서울 연주가 끝난 뒤 9월1일, 2일쯤에 청소년 음악회 형태로 열고 싶다”고 정씨 가족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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