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에 ‘검은 갈매기’ 울음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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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앞바다 ‘油魔와의 싸움’ 현장 취재

 안개가 짙게 깔린 7월15일 일요일 아침 9시42분 인천 앞바다. 시계는 0.3마일(480m). 안전운항을 위한 시야가 확보되지 못한 악천후 속에서 2척의 대형유조선이 6노트(시속 11km)의 다소 위험한 속도로 마주 달려가고 있었다. 약 1천1백m의 거리를 두었을 때 양 선장은 무선교신을 통해 “저속 상태에서 서로 왼쪽으로 비켜갈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대재난은 이들의 안전한 교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9시43분, 유조선 코리아 써니힐호(1만6천8백13톤, 대한유조선(주) 소속) 선장 김연환씨의 육안에 마주오던 같은 회사 소속 유조선 코리아 호프호(1만2천6백44톤, 선장 이장식)가 잡힐 즈음 한척의 바지선(긴급출동용 선박)이 갑자기 배의 코앞을 횡단하려고 접근하고 있었다. 김선장은 너무 급해 항법상 피할 때는 右舷으로 변침한다는 규칙을 위반하고 船首를 왼쪽으로 돌렸다.

  호프호의 이선장은 긴급상황이 발생하자 규칙대로 우현全舵(타를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림)를 시도했으나 속도를 못이긴 두 배는 굉음을 내며 부딪치고 말았다. 자동차와 달리 급회전이 불가능한 대형선박에게 濃霧 속의 6노트는 충돌을 면하기 어려운, 너무나 무모한 속도여서 불과 2분 후인 9시45분에 충돌하고 만 것이다. 작약도가 바라보이는 인천항 호남정유 저유소 앞 3백30m 해상에서였다.

 

시시각각 바다는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

  사고 10분 전 호남정유 부두를 출항, 빈배로 여수항을 향해 가던 써니힐호의 뱃머리에 왼쪽 옆구리를 정통으로 찔린 호프호는 시꺼먼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5일전 전남 광양항에서 총 33개 탱크중 25개에 벙커C유 1만6천4백70톤을 적재하고 오다가 하역을 목전에 두고 가로 27m 세로 6m의 넓이로 난자당한 호프호. 모두 12개 탱크가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부서져 순식간에 1천5백톤(7천5백드럼, 해경 추정치)의 기름이 쏟아져나오면서 바다는 시시각각 험상궂은 얼굴로 변해갔다. 30리터씩 채운 소형승용차 3만대분의 연료량에 해당하는 대량의 기름이 제멋대로 퍼져나가 연안부두 앞바다는 한 장의 먹물번지기 그림, ‘죽음의 마아블’을 이루고 있었다.

  호프호 이선장은 즉각 인천해운항만청에 사고발생신고를 하는 한편 밸브를 조작, 부분파공된 탱크 안의 기름을 빈 탱크에 옮기는 작업을 벌였다. 현장 防除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해양경찰대 인천지구대가 항만청으로부터 사고발생 신고를 접수한 것은 10시. 마침 12일의 경인호 기름유출사고로 부근에서 작업중이던 방제선 2정과 보안부두에 비상대기하고 있던 P-12 경비정 등 6척을 동원, 긴급 방제 지시를 내렸다.

  10시30분 민간 해상청소업체에 연락, 12척의 배를 합류시키고 방제대책협의회 구성을 위한 소집령을 각 유관기관과 단체에 전통(전언 통신문)으로 타전했다. 11시, 유출유 확산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경기도경에 헬기 지원요청을 했고 유출이 시작된 지 1시간15분후, 해경과 민간청소업체는 사고선박 주위에 전장 2천m의 3중 오일펜스(확산방지를 위한 스티로폴 또는 공기주머니와 얇은 플라스틱막으로 만들어진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러나 확산은 계속됐다. 파도는 없었지만 워낙 많은 양의 기름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고 유속이 빨라 펜스가 뒤로 젖혀지면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불도에선 실성한 어부 2명이 바닷가 헤매

  오후 1시, 방제대책협의회 소집. 시 해경항만청 정유 · 급유회사 등 인천의 해양오염방제 관련 39개 기관 · 단체가 모인 이 협의회는 우선 경인에너지 유공 호남정유 쌍용정유 등 정유회사 보유 방제기자재를 전량 동원, 작업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경찰 헬기로 관찰한 인천 근해는 기름덩어리가 사고현장에서 직선거리로 5km인 팔미도 앞까지 이르고 있었다. 호프호의 심장에서 분출된 ‘검은 피’는 해상을 맴돌다 인근 도서의 해안과 양식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16일부터는 해군이 동원되고 청소업체 참가도 늘어나고 놀잇배와 어선까지 참여하여 방제에 안간힘을 다했으나 油魔는 결국 주민들 생계의 터전을 덮치고 말았다. 사고해역과 가장 가까운 작약도 유원지는 첫 번째 희생자. 물이 빠지면서 섬의 밑동아리는 콜타르를 칠해놓은 것처럼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고 섬 전체는 기름냄새로 뒤덮였다.

  작약도를 유린한 벙커C유는 영종도 용유도 대무의도를 차례로 샅샅이 뒤지면서 해안 방파제 어망 양식장 등 손에 닿는 대로 기름떡을 사정없이 처발라놓고 도망갔다. 하루아침에 ‘논밭’을 잃어버린 부녀자들이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통곡하는 소리가 어촌 곳곳으로 이어졌으며 남자들은 술만 마셔대 동네가게의 술이 바닥났다. 영종도에 인접한 신불도에서는 2명의 어부가 실성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지껄이며 바닷가를 헤맸다. 기름위로 잘못 내려 앉아 날개에 기름을 뒤집어쓴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퍼덕거려도 이성도 감정도 잃고만 주민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17일까지 3일간 매일 아침 6시부터 일몰 전까지 해상에서만 기름유출 확산방지와 수거작업을 벌여온 해경 등 방제작업반은 18일부터 어민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방제작업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자 해안청소를 시작했다. 선주측(오염행위자)과 계약을 맺은 청소업체들이 유처리제 등의 기자재를 공급하고 일당 2만5천원씩 주어서 주민들을 동원, 진척은 더디나 점차 희망을 되살리는 작업을 진행시켜나갔다.

  동네사람 90여명과 함계 영종 · 용유도간 연육교 바위 사이에 고인 기름을 퍼내고 있던 삼목도의 한 주민은 “일당을 받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뜯어 먹고 사는 바다를 살리기 위해 하루에 헌옷 한벌씩 버려가면서 일하러 나온다”고 말했다. 바위에 묻은 기름을 솔로 씻어내고 삽으로 기름이 스며든 갯벌을 파내 마대에 담는 작업을 하던 신불도의 한 어민은 “보상요구는 나중 문제고 우선 기름을 거두고 닦아내는 게 급하다는 마음에서 일을 하긴 해도 삽 한번 뜨고 바다 한번 바라보고 해서 한숨 반 일 반”이라며 “언론에서만 오지 말고 높은 사람들도 좀 내려와 이 처참한 실정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히 오염의 확산은 19일을 고비로 진정 추세로 접어들었다. 태안반도까지 번질 것이 우려됐으나 남쪽으로는 영흥도 북단, 서쪽으로는 무의도 남단에서 유출 4일만에 고삐가 잡힌 것이다. 해경과 취재팀이 확인한 바로는 사고발생 10일만인 24일로 해상의 덩어리 부유기름은 완전히 소멸하고 단지 해안 암벽 등에 들어붙은 기름의 청소작업이 늦어져 만조시 이 기름이 조금씩 흘러나와 얇은 유막상태로 바다에 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사고의 방제작업 완료는 해안 암벽 청소가 끝나는 한달 후 정도가 될 것으로 해경은 예상하고 있다.

  오염의 확산을 비교적 조기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신속한 방제작업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몇가지의 ‘불행 중 다행’한 조건들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첫째 사고당시는 물이 빠진 조금 때였다. 따라서 간만의 이동범위가 크지 않아 서해남단으로 오염이 확산되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상이 도왔다는 점. 폭풍이 불고 파도가 높았다면 기름이 더 멀리 확산됐을 것이고 방제정의 출항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제실무자들은 “언론에서 장비가 없다고 지적하지만 아무리 현대적인 장비를 갖고 있어도 해상상태가 나쁘면 결국 쓸모없는 것”이라며 “해상방제작업의 어려움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언론도 국민도 좀 알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바람은 때마침 남동풍이 불어 영흥도사람들을 안심시켰으며, 북쪽에서는 비가 많이 와 한강물이 불었기 때문에 기름에 오염된 바닷물이 강화도와 김포 사이로 흘러들어가지 못했다. 또 항내에서 사고가 나는 바람에 신속한 응급처치가 이뤄질 수 있었으며 다른 방제 작업 진행중에 사고가 일어나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체없이 바로 인력이 투입될 수 있었다. 이밖에 하역 직전 사고가 발생한 호프호는 당시 뭉쳐진 기름을 풀어 하역작업에 용이하도록 히팅을 하고 있던 중으로 유출된 기름이 섭씨 약 87도에 이르러 해면위에서 상당부분 증발, 이것도 방제작업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온 국민의 우려 속에 전례없이 신속하고도 대규모의 방제작업이 이뤄진 결과 油處理劑와 油吸着劑의 사용량이 기록적이었다는 점은 이번 사고과정에서 눈여겨 봐두어야 할 대목이다. 흡착제는 물리적 방제기자재로 단순히 비용면에서 문제가 될 뿐이지만(20면 별도기사 참조) 처리제는 화학적인 장제액으로 2차오염 측면에서 논란이 크게 일고 있다.

  유처리제(유화제)가 가장 많이 사용된 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의 통투입량은 8백52드럼. 무려 17만4백리터로 작년 한해 전국 사용량 8만8천리터의 2배에 달하는데 최소 한달이 지나야 방제작업이 끝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뿌려질지 모를 일이다. 솔벤트 등이 주원료인 유처리제는 용제와 세제성분으로 구성돼 기름을 잘게 부숴 미세입자화하고 표면적을 늘려 물속에서 생분해(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기름의 분해와 산화는 바닷물 속의 세균(박테리아)이 맡아 해준다.

 


2차오염 우려되는 油처리제

  해양연구소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처리제 중 일부가 석유분해 세균의 생장을 막을 정도로 독성이 심하다고 발표, 관계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사고해역에 뿌려지고 있는 감마졸, 베콤 등 제품에 대한 맹독성 여부를 취재팀이 연구소측에 문의한 결과 남용할 경우 피해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보도된 내용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독성이 심하다는 조사결과는 “외국의 기준과 비교한 것”이라며 “언론이 필요한 부분만 인용, 보도한 내용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어민생계에 타격을 주는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문제가 역시 가장 첨예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인천수협이 접수한 어민들의 피해신고에 따르면 굴 바지락 가무락 등 양식장을 포함한 어장 피해면적이 5천4백여ha, 피해 어가가 3천2백여 가구에 달하고 있는데 피해액은 아직 추정도 못하고 있다. 어민들 사이에서는 수백억에 이를 것으로 얘기되고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추정 피해액수차가 크게 나타났던 지난 87년의 영흥도 기름 유출 피해사례(어민 주장 2백8억여원, 실제보상액 58억여원)에 비추어 마찰이 적지 않을 것이 예상되고 있다. 어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은 가해선주인 대한유조선(주)이 국내 굴지의 유조선해운회사이며 영국 로이드(P&I)에 5억불 상당의 큰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점이다.

  대한유조선(주)측은 당장 생계가 막연한 어민들의 전도금 요구를 받아들여 10억원 가량을 지급키로 하는 한편 작약도 송도 등의 유원지 · 해수욕장, 여객 · 유람선 업체의 피해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액 산출방법으로, 전문용역기관에 의뢰한 뒤 결과에 대해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양측이 승복하는 방식 대신 분쟁의 소지가 있는 보험회사측과 피해자측간의 합의 방식을 택할 의사를 비쳐 보상협상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상협상 순조롭지 않을 듯

  어장이 완전복구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은 보상기준은 물론 기름유출에 의한 해양환경오염의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불행히도 우리 환경처는 최근의 기름오염 어장에 대한 환경조사를 벌인 적도 없으며 따라서 복구 여부를 판정할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환경처 등 정부기관의 정밀조사는 아직 없지만, 주민 스스로 예정의 바다를 찾았다고 취재팀에게 서슴없이 말하고 있는 영흥도의 사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87년 3월 벙커C유와 디젤유 유출사고로 온 섬이 까맣게 뒤덮였지만 1년도 채 못돼 바다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영흥어촌계의 박영모(32)씨는 “당시 40~50일간에 걸쳐 주민들이 필사적인 방제작업을 벌인 결과 그해 11월부터 양식을 재개했으며 숭어 농어 낙지 놀래미 등 이 지역 어류가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며 “요즘은 전과 같이 날마다 바지락을 캐 한사람당 2만5천원씩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름유출에 의한 오염은 따라서 조기방제로 큰 줄기를 잡고 효과적으로 대처만 한다면 일반의 막연한 우려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많은 전문가와 실무자들도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주)한국해사감정의 金石祈씨는 “장비가 충분치 않고 잦은 인사로 전문방제요원이 확보되지 않은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인천과 같이 간만의 차가 매우 크고, 많은 선박이 출입하며, 해안선이 복잡한 지역적 특수성이 있으면 첨단장비가 도리어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있는 장비와 사람을 조기에 동원하고 과학적인 방제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체제를 시급히 마련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코스트가드(연안경비대), 일본은 해상보안청이 방제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여 행정적으로는 환경처 항만청 해경 수산청으로 4원화돼 있고, 실질적으로는 해경이 방제업무의 90%를 맡고 있는 현 제도를 개선하여 오염정보수집과 지휘감독은 물론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일원화된 전담기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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