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벌판에 녹색혁명
  • 삼강평원 · 박상기차장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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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중 삼강평원 개발…고구려 옛땅 진출 눈앞에

 드넓은 만주벌판에 한국인이 녹색혁명의 불을 당기고 있다. 만주 동북부에 펼쳐있는 흑룡강성의 三江平原에 대규모 한 · 중합작 농업개발 계획이 구체적으로 진척되고 있어 머지 않아 결실을 맺을 조짐이다.

  삼강평원은 단순히 ‘넓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지프를 타고 7시간을 달려도 한결같이 일망무제의 지평선만 나타나 차도 사람도 줄곧 대평원의 중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자그마한 언덕조차 없는데다 잡초와 갈대가 우거진 단조로운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거리감각이 아둔해질 지경이었다.

  삼강평원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 소흥안령 산맥에서 흘러온 흑룡강,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연해주지방을 관통하는 우수리강이 하나로 합해지면서 펼쳐놓은 대유역으로, 그 면적이 남한보다 넓은 10만9천㎢에 이르는 세계적인 대평원이다.

  흑룡강과 우수리강을 경계로 하여 소련과 마주보고 있는 이 지역은 8 · 15후 중 · 소 국경분쟁으로 전운이 감돌아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되어왔다. 만주국 시대에는 일제가 만척(滿拓)을 설립하여 개발에 나섰으나 항일군과 대한독립군의 게릴라 활동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이곳은 북쪽의 대황무지라는 뜻의‘北大荒’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12억 인구의 항구적인 식량공급기지로 바꿀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며, 88년 4월에는 농업개발특정지역으로 지정하여 외국의 자금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개방하였다. 뿐만 아니라 매년 2억달러씩의 농업개발비를 지원하고 흑룡강성 정부 산하에‘삼강평원농업개발건설총공사’를 설립, 평원개발에 대한 기획 · 운영 · 관리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개발 성공하면 1백년동안 ‘농장경영’ 가능

  이러한 변화를 지켜보면 중국측 관계자들과 긴밀한 접촉을 가져왔던 대륙연구소측은 지난 4월27일 우리의 농학자 · 기술자 등 농업관련 전문가 15명으로 이뤄진 농업투자 타당성조사단(단장 張德鎭 대륙연구소 회장)을 파견하여 2개월간에 걸친 정밀한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다. 토양 · 수문 · 관개 및 배수 · 농지조성 · 농기계 · 식품가공 · 무역 · 재배작물 등 9개 분야에서 중국측 조사단(단장 楊德祥 삼강평원개발공사 총경리) 20여명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이번 조사활동으로 우리측은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중국측이 제시한 한 · 중합작 지역은 위도상으로 소련의 우크라이나 곡창지대, 미국의 미네소타주와 같은 북위 47도선에 해당하는 삼강평원의 중심부다. 행정구역으로는 흑룡강성 부금시 두림진 및 흥륭진 관내의 땅으로 ‘두흥지구’라 불리는 3만8천ha(약 1억1천5백만평 · 1ha는 3천25평). 이 지역내에는 현재 西林 · 二林 · 東林 · 高台 등 소규모 자연부락이 몇십리씩 떨어져 들어서 있고 중국인 농부들이 1천7백ha의 땅을 경작하고 있다. 중국측은 한국기업의 참여로 ‘두흥지구’의 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2단계에는 개발면적을 더 넓혀 제주도 면적의 3분의 2쯤 되는 총 11만ha의 합작농장 경영을 제의하고 있다. 또한 합작기간 50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측이 원할 경우 다시 50년을 연장한다는 우호적인 조건을 내놓고 있다. 중국의 국가계획위원회는 최근 한 · 중합작 예정사업으로는 처음으로 삼강평원 개발을 ‘국가사업’으로 선정 승인, 앞으로 한국의 삼강평원 합작개발에 중국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력이 이뤄질 전망이다.

  한국측 조사단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1차 개발지역인 3만8천ha의 두흥지구는 공사가 끝나면 밭 2만5천여ha, 논 5천ha, 목축 및 양어장 3천2백ha, 기타(나무숲 ·  도로 · 건물) 2천5백ha로 구획 정리될 예정이다. 이 일대의 기후조건을 조사한 金基駿 건국대 농과대학 학장은 “콩 · 밀 · 옥수수는 물론 벼재배도 가능하다”고 밝히면서 유기화합물이 10% 함유된 비옥한 토질이여서 개발 후 5년간 비료를 주지 않아도 경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두흥지구 서쪽에 인접해 있는 국영 友誼농장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모범농장으로서 우리 조사단의 좋은 모델이 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을 바퀴로 굴러다니며 물을 뿜어내고 있는 거대한 스프링클러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管井에서 지하수를 뽑아올려 밀밭에 살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의농장 농장장인 우흥파씨는 “삼강평원은 관개와 배수관리만 잘하면 천하에 둘도 없는 땅”이라고 자랑했다.

 

3년전 내린 빗물이 빠지지 않을 정도

  삼강평원은 1만m당 1m내외의 표고 차이가 날까말까 할 정도로 편편한 땅이라 토지조성 · 경지정리 · 대규모기계농업 등에서는 편리한 이점이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배수 및 관개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편편한 만큼 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10여년 동안 삼강평원의 수리청장 일을 맡아오다가 정년퇴직한 尹弘善(71)씨는 “어떤 곳은 3년 전에 내린 빗물이 아직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배수 속도가 느리다”며 평원 곳곳에 산재해 있는 늪지대를 예로 들었다.

  사실 연간 5백㎜ 내외에 불과한 이 지역의 강우량은 우리나라의 지형이라면 홍수나 범람을 일으킬 수 없는 양이다. 그러나 자연하천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물의 흐름이 극도로 완만한 삼강평원은 사람의 발목이 잠기는 저습지와 소택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수천년 동안 갈대와 일년생 잡초로 뒤덮인 채 사람에게 좀처럼 맨살을 열지 않은 평원의 비밀은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땅은 비옥하고 기후도 알맞지만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지 않는 한 물을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버섯모양으로 생긴 부흥지구 개발예정지는 新七星河를 경계로 하북과 하남으로 나뉜다. 신칠성하는 폭 1㎞의 하천으로, 삼강평원농업개발총공사는 중앙정부에서 지원받는 연 2억달러의 예산 중 상당액수를 신칠성하 및 다른 배수 하천의 굴착에 쓰고 있다. 개발 예정지의 북단에는 富錦之河를 새로 뚫는데, 부금지하와 신칠성하는 개발지의 물을 우수리강으로 흘려보내는 중추동맥이 될 것이다. 앞으로 개발이 본격화되면 이 두 하천에 연결된 배수로는 가로세로로 그물망처럼 엮어질 것이다. 여름철의 집중호우에 대비하여 두흥지구의 북쪽과 남쪽에 홍수조절용 저수지를 파고, 하천 양안은 물론 개발지구 전체에 제방을 쌓으면 배수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것이다.

  갈수기의 농업용수 공급은 밭작물의 경우 개발구역내에 3백21개의 관정을 뚫어서 땅밑의 풍부한 지하수를 퍼올린 다음 4백m 길이의 대형 스프링클러를 회전시켜 물을 주는 ‘센트럴 피버트 관개법’을 사용할 계획이다. 5천ha의 논에 10ha당 1개씩의 관정을 뚫으면 가뭄 때에도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삼강평원 일대는 10m만 파면 자갈과 모래층에 풍부한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우의농장 등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개발이 완료되면 이곳의 농경지에서는 1ha당 벼 4천5백kg, 콩 2천2백50kg, 밀 4천2백kg을 생산해내게 된다.

  두흥지구의 농업개발사업에는 총 3천9백만달러가 소요되는데 우리나라는 이중 약 2천9백만달러(2백10억원)를 조달해야 한다. 농업투자는 일반적으로 다른 분야에 비해 수익성이 낮고 투자자본금의 회임기간이 긴 단점이 있다. 그러나 삼강평원 개발지는 연리 3% 5년거치 15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투자했을 경우 매년 1백만~2백만달러의 이익이 생길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밭1평을 개간하는 데 드는 평균개발비가 6천5백여원인 데 비해, 두흥지구의 평당개발비는 3백10원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더욱 빛 복 ‘긍지의 사업’

  그러나 삼강평원의 개발은 단순히 농장경영이라는 측면만으로 볼 사안이 아니다. 한 · 중 합작기간인 50년 동안 우리가 만주 진출의 거점을 확보하고 농작물의 가공은 물론 흑룡강성의 풍부한 부존자원인 석유 · 석탄 · 목재 등을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를 연다는 측면에도 무시못할 비중이 있는 것이다.

  “두흥지구 개발은 동북아의 자원보고로 등장한 동북3성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앞으로 무역 · 공업 · 광업 · 축산업 등 다방면에서 경협을 촉발시킬 발판을 마련한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더구나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부금시 인접지역은 고구려 · 발해의 옛땅이라 더욱 뜻이 있다고 본다. 장차 남북한이 통일될 날을 상정할 때 우리 국토와 인접한 만주지방에 우리의 활약무대를 미리 확보해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측 조사단 張德鎭단장의 말이다. 그는 삼강평원 개발 접촉과정에서 중국정부 요인과 흑룡강성 인사들로부터 다방면에 걸친 한 · 중 경협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독 이탈리아 미국은 물론 대만 홍콩 일본 등이 이미 삼강평원 개발에 뛰어들었거나 참여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어 자칫하면 만주 진출의 꿈이 무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한국측에 제공된 두흥지구는 삼강평원내에서도 개발 여건이 가장 양호한 지역으로 손꼽혀 지금도 한국을 젖히고 합작파트너로 손잡으려는 외국 기업의 로비가 심한 곳이다. 현재 국내의 합작선으로는 진로그룹이 거의 혹정되고 있는데, 정부의 사업승인을 받는 대로 올 가을쯤 한 · 중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내년 봄부터 간척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1 · 2차 개발이 순조롭게 진척되면 우리는 조상의 옛땅인 만주에 제주도 면적의 3분의 2쯤 되는 대농장을 경영하게 되고 이를 거점으로 동북3성과 소련 시베리아 지역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흑룡강성은 우리의 근대사와도 밀접한 곳이다. 수도인 하얼빈은 安重根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곳이며, 현재 흑룡강성에는 약 43만명의 교포들이 살고 있다. 이중 약 12만명이 삼강평원내에 분포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일제시대에 망국의 한을 품고 떠나온 남한 출신의 교포들이며 ‘한 집 건너 열사 한명’씩 낳았다고 할 만큼 항일독립운동에 열성적이었던 동포의 후예들이다. 삼강평원의 개발참여는 이들을 포함한 동북3성의 2백만 재중교포들에게도 큰 기쁨을 주는 ‘긍지의 사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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