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탱크 녹여 쟁기 생산
  • 본 · 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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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산업의 민수산업화 박차… 4백20개 기업 전환시킬 예정

 소련은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착실히 진척시키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작년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경제개혁의 범위내에서 군수산업 전환계획을 작성, 발표할 의향이 있음을 밝힌 후 소련 정부는 작년말에 ‘군수산업 전환을 위한 국가계획’을 통과시켰다. 이 계획에 따르면 소련은 군수산업체들이 생산하는 민수품과 군수품의 비율을 현재의 40 : 60에서 91년에는 50 : 50으로, 그리고 95년까지는 60 : 40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금년에 1백개의 군수업체를 전환시키는 것을 비롯해 모두 4백20개의 기업을 민수품 생산기업으로 전환시킬 예정이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이들 기업의 민수품 생산비율은 5%에서 1백%까지 이르게 된다. 소련의 많은 군수산업체들은 이미 부분적으로는 생활필수품도 생산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재봉틀은 1백%, 냉장고는 97%, 진공청소기와 세탁기는 약 70%, 오토바이는 50% 이상을 군수산업체에서 생산하고 있다.

 

SS 23미사일 부품 대기관측에 사용

  소련은 T 55형 탱크를 소방차로 개조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미 수년전부터 개별적으로나마 군수공장을 민수공장으로 전환시켜왔다. 군축협약에 따라 폐기된 SS 23미사일의 일부 부품은 대기관측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 4월말 서독 뮌헨에서는 소련 기업이 군사기술을 응용해서 생산한 민수품 전시회인 ‘컨버젼 90’이 열려 소련의 전환사업의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참가업체의 대부분은 항공우주산업체와 조선업체였다. 세계 최초로 열린 이 전시회에서 약 3백개의 소련 군수업체는 탱크, 전함, 전투기 대신에 다른 것도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전시회는 소련이 군수산업의 평화산업으로의 전환을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음을 증명해준 기회로 평가받았는데 소련기업들은 탱크를 개조한 소방차 및 견인차, 테니스 라켓에 이르기까지 1천2백 가지의 제품을 선보였다. 가장 주목받은 제품의 하나는 추진 로킷과 인공위성이었다. 소련은 그것들을 평화적인 목적을 위해 판매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바다 깊숙이 6천m까지 들어갈 수 있는 원격조정 잠수정, 암진단과 치료에 쓰이는 의료기기, 티탄으로 만든 각종 수술도구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군수산업을 평화산업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얻는 국민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소련내에서는 ‘노동자에서부터 담당 장관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성과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도되었다. 소련 공산당중앙위원회 2월 확대회의에서 전기기기 생산연합 ‘사라토프’(Saratow)의 샤바노프 부장은 “군수산업체의 민수산업체로의 전환이 좀더 철저하게 숙고되고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자리에서 군수산업장관인 벨루소프는 “소련 군수산업 분야의 전환에 관한 법안을 작성, 토의해서 통과시킬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부 학자들은 전환계획이 너무 성급하게 실행되고 있으며 개별기업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시사주간지《신시대》는 이에 관해 “전환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해당 기업의 특수성은 고려하지 않은 일반적인 것일 뿐”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그동안 군수산업을 평화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모든 자원의 분배에서 특권을 누려온 군수산업체는 아무런 특권이 없는 민수산업체로 전환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전환업체. 마케팅 개념 몰라 당황

  또한 무기 대신 민수품을 생산할 경우, 국가라는 안정된 수요자 대신에 미지의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은 마케팅 개념을 알지 못하는 군수산업체로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군수산업체가 정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기업소장들은 정부의 관료주의적 지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탱크를 생산하는 기업연합의 한 기업소장은 기업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경제적인 대체생산 지시를 내린 정부를 겨냥해서 “우리가 적은 비용으로, 무엇보다도 사회적 동요를 가급적 초래하지 않으면서 대체생산에 관한 자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1, 2년만 달라. 우리 말고는 아무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군축에 관해 참신한 견해를 가진 새로운 전문가들이 전환계획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 전환 군수산업시설은 주로 소비재 생산시설로 대체되고 있다. 이는 소련 경제가 처해 있는 전반적인 소비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전환사업의 일방성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군수산업을 민수 첨단사업으로 전환시켜야 소련의 국제경쟁력을 장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대체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소련의 군수산업체들은 소련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술협력을 구하고 있다. 서방 기업들도 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대공산권 수출통제 조정위원회(COCOM)라는 장애물 때문에 별다른 성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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