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구조 악화의 책임
  • 유한수 (투자금융경제연구소 소장)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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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상반기의 성장률이 9.8%에 달한다는 뉴스에 밀려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우리나라의 분배구조가 약간 악화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경제기획원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1/4분기 중 상위 20%의 소득계층이 전체소득에서 점유하는 비중이 39.8%로서 전년동기에 비해 볼 때 0.4%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비교를 해보면 우리의 분배구조는 상당히 양호한 편에 속한다. 최근 노동분배율이 높아지는 등 소득분배가 개선되는 조짐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의 분배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을 가진 계층이 많다. 그 이유는 토지나 금융자산 등 자산소득의 분배구조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경제구조가 고도화될수록 개인의 소득 중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몇 년전 미국의 《포춘》지가 미국내 1백대부자의 치부원인을 분석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반수 이상이 상속에 의해 갑부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극소수 부유층의 경우라 일반적으로 소득분배가 상속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富나 貧困이 세습화하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경향이 고착화되면 권력의 정통성이 도전받게 된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그래서 전임 경제팀에서는 분배제도를 개선하고자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를 들고 나왔지만 결국 관철시키지 못했다. 소득재분배보다 자산재분배가 더 긴요한 것이라고 본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으나 우리 사회의 현실적 장벽을 과소 평가한 것이다.

 
富 · 賓困 세습화되면 권력 정통성 도전받아

  토지의 과점문제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도 17세기에 벌써 토지과점이 사회문제화됐었다. 사상가인 星湖 李瀷은 “나라 안의 田地가 세력가에 의해 점유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개탄했었다. 또 요즘 논의되고 있는 택지보유상한제 같은 것도 이미 18세기에 燕巖 朴趾源에 의해 제창된 바 있다. 그는 토지의 과점을 억제하기 위해 토지소유의 상한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것을 限田論이라 부른다.

  이조 때의 토지제도 개혁은 소작제도를 개선하겠다는데 목적이 있었으므로 오늘날과는 문제의 인식부터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경제력 집중과 그에 대한 해결책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그리고 뒤끝이 흐지부지된 것도 상당히 닮은 데가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한편 조세제도로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가진 자들의 의욕감퇴 등 여러 이유가 열거되기도 한다. 근로소득만으로 분배구조를 개선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금융소득의 경우 실명제와 종합소득세제에 의해 상당부분 분배구조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 분위기는 실명제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토지정책이나 조세정책에 의해 소득분배를 개선시키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빈부격차의 개인적 · 사회적 원인을 찾아내 국가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어디가 잘못돼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도대체 왜 빈부의 격차 생기는가. 개인의 능력, 운, 교육정도, 유산여부 등 다양한 요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인적 차이를 미국의 철학자인 롤즈는 자연적 불평등이라고 부르고 있다. 롤즈는 사회적 정의란 그러한 자연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교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자연적 불평등이 존재하므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조건을 주더라도 곧 빈부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그 예로 2차대전 당시 포로수용소내에서 理財에 밝은 몇몇 포로들이 경제력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보고서가 있다. 간수와 짜고 외부에서 물품을 반입해 동료포로들에게 차익을 남기고 파는가 하면 담배를 독과점하는 등 일반 사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양상이 벌어지더라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이런 차이까지 모두 바로 잡아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은 자연적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흡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자연적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더욱 조장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직도 재벌이나 대기업 위주로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로 하여금 정책적 전환을 주저케 하는 요인도 많다. 분배구조가 왜곡되었다는 주장과는 상반되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은 힘든 일을 기피하고 있고 현장에서 사람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또 계층을 가릴 것 없이 과소비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 근로자들도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 노사분규가 줄어들고 타협에 의한 해결이 정착되는 것을 보면 현재의 분배체제에 만족한다는 증거로도 해석된다. 그런가 하면 절대빈곤층이 전인구의 7%나 된다는 통계가 불쑥 나오기도 한다.

  누가 잘못하고 있는지 어디가 잘못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래서 서로 책임전가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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