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폐지해야 하는가
  • 여운정 차장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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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적 가치관이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간통죄는 여권신장관 맞물려 오랫동안 논란이 돼왔다. 지난해 1월에는 법무부가 간통죄 폐지안을 포함한 형법개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법조 · 여성계 관계자의 주장을 들어본다.

찬성

신기남 변호사. 1952년 서울대학교 법대졸업. 해군대학교교수 역임
● 간통죄 폐지를 찬성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윤리적인 문제, 특히 개인의 성생활 문제에 법이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혼은 윤리에서 보면 天命이겠지만 법에서 보면 하나의 계약에 불과하다. 계약 위반에 대하여 형벌이라는 처분을 내리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형벌은 국가가 행사하는 합법적인 폭력으로서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만큼만 행사돼야 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은밀한 부분에까지 그 그림자를 드리워서는 안된다. 비록 결혼했다고 해도 애정의 자유는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자유를 누리는데 대한 대가를 치르는 방법은 얼마든지 따로 있다.

  현행 형법이 53년에 제정될 당시, 국회본회의에서 간통죄 삭제안과 존속안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때 재석의원 1백12인 중 57인이 찬성해 가까스로 존속안이 채택되었다. 그때부터 논란이 많았던 이 문제는 국회 통과 이후에도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서울변호사회는 64년에 간통죄 폐지를 관계요로에 주장한 적이 있고, 금년 정기국회에 상정될 법무부의 형법개정안에도 간통죄는 삭제되어 있다. 40년이 흐른 지금, 이 낙후한 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 최근의 한 조사(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조사대상 주부 중 88.4%가 간통죄는 존속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간통죄가 폐지될 경우 남성위주사회. 남성의 외도는 허용하는 우리의 성윤리 풍토에서 경제적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 여성의 불이익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겠는가?

  그 여론조사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난 84년 간통죄 관련논문을 쓰면서 실시해 본 본인의 여론조사로는 여성의 56%가 간통죄 처벌을 주장했고 (남성은 44%가 처벌을 주장), 89년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여성의 60%가 처벌을 주장했다(남성은 42%). 여성들이 비교적 처벌쪽을 두둔하는 것은 뒤떨어진 여성의 지위를 보호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성의 지위보호라는 시각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좀더 넓게 인간의 존엄이라는 차원에서 성찰해야 한다. 여성의 지위보호는 사생활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방법을 통해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유치한 방식으로 지위보호를 주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자기모독에 불과하다. 현행법으로도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다. 이혼시의 위자료제도뿐만이 아니라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민법의 재산분할청구권제도가 그 강력한 예이다.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는 개정 가족법이 정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어떤 고상한 이유보다도 실제로는 위자료를 더 많이 타내려는 목적으로 이용되어온 간통죄제도는 개정민법에서 재산분할창구권이 신설됨으로써 존립의 근거를 잃어버렸다. 이 재산분할청구권은 매우 강력한 것으로서 비슷한 시기에 시행할 채무자의 재산공개의무제도, 채무불이행죄제도와 결합하여 실행할 때, 그 누구도 법이 미비하여 경제적 구제를 받지 못하였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의 권익을 대폭 향상시키는 쪽으로 민법을 개정한 이 시점은 오랫동안 망설여온 간통죄 폐지를 단행해야 할 적기라고 본다. 지금 안하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며 이것은 시간낭비이다. 현대의 10년은 과거의 1백년에 해당한다.

●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이나 신체자유권을 이유로 간통죄를 폐지하면, 배우자와의 계약관계를 위반함으로써 결혼질서를 문란케 하는 일을 조장하지 않겠는가?

  혼인의 순결이나 성도덕을 형벌로 유지하는 것은 부적당하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해결할 문제이다. 결혼질서를 지키기 위해 간통을 처벌한다면, 부모에게 불효하고 이웃간에 불목하는 사람은 무슨 죄목으로 처벌해야 할 것인가? 오늘날 부부간의 정조의무를 어겼다고 해서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나라는 거의 없다.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우리나라 아닌가. 대만 정도를 빼놓고는….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의 명성은 법적 윤리주의를 통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형벌로써 예의를 강요하는 고립적 태도가 그 명성을 좀먹을 뿐이다.

● 간통죄 존속은 후진성을 띤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서구와 다른 배경을 갖고 있지 않은가?

  간통죄 폐지는 서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세계의 공통현상이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주의 국가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우리의 간통죄는 기독교사상에 기초한 서유럽의 법제도를 모범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세계의 추세가 간통죄 폐지로 기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옳은 것을 따르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사대주의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폐쇄주의를 걱정해야 한다.

반대

양정자 한국가정법률상담소부소장. 1944년. 이화여대법대 · 동대학원 졸업.
● 지난 53넌 간통죄를 형법으로 제정한 이후 끊임없이 존폐론이 대두되어 왔다. 존속을 주장하는 까닭은?

  우선 간통죄를 제정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53년 이전의 구형법은 남자에겐 관대하고 아내의 간통만 처벌하는 ‘불평등법’이었다. 그후 민주헌법을 제정하면서 혼인의 순결은 부부쌍방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하였다. 쌍벌주의에 입각한 간통죄를 형법상 성문화하지 않을 경우, 처 일방에게만 정조의무를 요구해온 습관과 법으로 인해 남성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부정행위를 자행할 가능성이 많다. 사회적 · 경제적 · 가정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는 여성은 불평등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혼인의 순결을 채택한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과연 지금 존폐론이 거론될 만큼 사회여건이 갖춰졌다고 보는가. 남성에게는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죄악시하는 성윤리 풍토에서 선진국처럼 부부가 똑같이 정조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성윤리의식이 자리잡혔는가. 과연 그렇다면, 남편이 아내가 간통했다고 농약을 먹여 아내를 죽도록 강요했는데 동네주민 10여명이 그냥 보고만 있었던 최근의 한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 국가가 개인의 애정이나 윤리문제에 형사법으로 개입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배우자에 대한 성적순결의무를 법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선진국처럼 개인의 존엄이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결혼 후 부부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의식이 결여돼 있다. 국가가 개입해 지켜주지 않으면 한 사람은 부부로서의 성적 의무를 지키고, 한 사람은 이를 지키지 않을 때 부부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정에서부터 성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그것을 배울 것이다. 힘있는 자는 누구나 외도를 해도 된다는 못된 풍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 간통죄가 있으므로 해서 결혼생활이 억지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애정이 없는 의무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히여 더 비인간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부관계를 갖게 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통계를 보면 아직까지 우리나라 부부의 70% 이상이 중매로 결혼하고 있다. 부부가 결혼할 때 과연 애정으로 결합했느냐가 문제이다. 법도, 체면, 자녀 때문에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애정이 넘치는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부부간의 최소한의 ‘도’와 ‘예의’, 부모로서, 웃어른을 모시는 사람으로서의 도와 예의가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한복을 입었을 때와 작업복을 입었을 때 행동이 달라진다. 법은 바로 옷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간통해위가 일어날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예방의 역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간통죄 반대론자들은 민사로 해결하면 될 것을 굳이 형법적 규제를 해야 하는가 하고 반박한다. 그러나 간통죄로 고소당하면 부인에게 위자료를 주기 싫어서 산다고 하는 남자들도 있다. 부인에게 솔직히 헤어질 것을 요구하며 대책을 세워주면 될 것을 안 줘서 고소당하는 사람이 비인간적인가, 억지로 사는 사람이 비인간적인가 묻고 싶다.

● 실제로 간통죄로 고발당해도 피해를 보는 쪽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이 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이중적인 성도덕은 남성의 성적 방종은 인정하고 여성의 행동은 반사회적 행위로 보기 때문에 여성이 더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결혼한 여성의 간통은 미미하며 간통행위로 인해서 처벌당하는 수는 극히 적다고 본다. 그런 소수의 여성보다 성실하게 가정을 지키는 여성이 훨씬 많다. 간통죄는 보호막이 되고 건전한 성윤리를 심어주는 역할, 즉 예방의 역할을 한다.

● 간통죄가 사실상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아이러니지만 간통죄가 위자료를 받는 수단으로 쓰여지는 한, 간통죄는 있어야 한다. 선진국은 모든 제도가 공정하게 돼 있다. 예를 들어 20년간 부부생활을 했을 경우, 여성이 가정에만 있었다면 그만큼 사회활동능력이 저하됐기 때문에 이혼 후 10년 동안 배우자로서 부양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런 모든 제도를 민사적으로 규정, 보완할 때 간통죄는 없어져도 된다. 아직은 고소해야만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는 현실이고, 그러한 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간통죄는 있어야 한다.

● 간통죄 존속이 후진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동성동본간엔 결혼할 수 없으며 호주제도에 연연하고, 결혼하면 부인은 당연히 남편호적에 입적되는 등 후진적 여건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인간평등이 이루어지고 평등한 법적용이 이루어질 때 간통죄는 업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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