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고 얼떨떨한 거인
  • 워싱턴·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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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부시 대통령 재임중 최대 위기 맞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10만 대군을 동원하여 이웃 작은 나라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점령하기 불과 이틀 전에 美 국무부 근동·남아시아 담당 차관보 존 켈리는 의회에서 “이라크는 중동의 맹주이고 후세인은 절대로 무모한 짓을 할 인물이 아니다. 우리와 대화가 가능한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막상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자 의회는 부시 행정부의 오판을 규탄하고 나섰고 행정부는 사후대책을 세우기에 부심하면서도 한편으로 정보부족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지고 있다.

 얼마나 준비없는 상태에서 허를 찔렸던지 급보에 접한 부시 대통령이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우린 지금 속수무책이다. 가능한 대책을 세워 우방과 협의하여 적절히 대처해나가겠다”고 맥빠진 모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선 부시 대통령이 말한 적절한 대책이란 이라크의 행위를 ‘명백한 침략’으로 규정. 미국내 이라크의 재산을 동결하고 동시에 이라크로부터의 모든 상품의 수입을 금지시킨 것이다.

 미국은 다른 우방들은 물론 소련도 미국과 보조를 같이 하여 이라크에 대한 제재에 동조해주도록 요청, 많은 나라들이 이에 응했다. 주말 하루 동안 캠프 데이비드의 대통령 별장에서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한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이라크의 침략에 대비해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할 방침”이라고 밝혀 군사개입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 일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선을 넘어 약탈행위를 했다는 정보와 하께 의회 여론은 미국의 군사개입을 강력히 요구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자원전쟁이 드디어 시작됐다. 중동의 히틀러를 때려잡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전쟁의 불똥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튈 때는 미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은 일단 ‘강건너 간 일’로 기저사실이 된 셈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지만 이라크의 막강한 군사력을 상대로 과연 어떤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그 해답은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으로 숨통을 조여보자는 것이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동원, 페르시아만을 완전 봉쇄하여 모든 교통을 차단하는 일과 이라크의 송유관이 지나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기로 하여금 송유관을 차단시키는 일이 거론되고 있는데 90% 원유를 이 송유관을 통해 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이라크로서는 만약 두 이웃나라가 송유관을 막아버린다면 돈줄이 끊기는 결과가 된다.

 미국은 인디펜던트 항모와 다른 군함들을 인도양에서 페르시아만으로 급파한 데 이어 최신형 스텔스 F-117 전투기와 B-52 폭격기들을 이 지역으로 출동시키고 일부 특수부대와 델타부대 등 인질구출작전기동타격대를 파견했다.

 美 국방부는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첩보 인공위성이 촬영한 이라크군 동향을 찍은 사진들을 함께 검토하고 유사시에 양국이 합동작전을 펼칠 체비를 갖추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의 공격을 받아 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했을 때 미국이 전투에 참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송유관 차단 문제는 이라크에 침공의 기회와 구실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그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국제적으로 단합된 힘을 무기로 이라크의 고립화를 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고 있지만 막상 한목소리를 내야 할 아랍권이 손발이 맞지 않는 실정이고 보면 이것도 크게 기대할 것이 못된다.

 중동문제에서 지금까지 온건노선을 걸어온 요르단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정당한 일”이라고 옹호한 뒤 국왕이 바그다드로 찾아가 사담 후세인을 만나 치하한 일은 아랍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랍권의 작은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아랍나라를 치기만 하면 당장 박살을 내고 말겠다”는 후세인을 ‘영웅’으로 우러러 보고 있는 형편이다.

 사담 후세인의 도박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냉전이 막을 내린 뒤 최초로 발생한 지역분쟁이 초강대국 거인들이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주먹을 먼저 쓴 ‘깡패’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면 이제부터의 국제질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에 미국이, 아니 모든 문명국들이 속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는 파나마나 그라나다가 아니라 1백만 병력에 6천대의 탱크와 수백대의 전투기, 미사일로 무장한 군사대국이고 또 독가스를 만들어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자국내 소수민족을 대량 학살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독재자가 판을 치는 무서운 곳이다.L 이 가공할 상대를 어떻게 꺾느냐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대의 시련에 부닥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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