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분단 상태 무너지게 마련
  • 편집국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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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은 유럽의 질서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통독 앞길에 청신호를 보낸 고르바초프의 의도는 무엇인가.

유럽에서의 미국 역할은 끝났는가. 독일의 통일이 유럽의 장래와 아시아에 끼칠 영향을 타진하기 위해 본지 泰哲洙유럽지국장은 지난 7월 28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독의 시사주간신문<디 차이트>의 외교문제 전문가인 크리스토프 버트람씨와 대담했다.

 

 秦哲洙지국장 : 경제통합 후의 동·서독 실정을 알아보고자 동베를린을 방문했더니 통합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느니, 실업자가 늘 것이 두렵다느니 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시민들을 흔히 만날 수 있었다. 동독의 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서독의 지원과 투자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토프 버트람 :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처럼 동독의 경제를 인플레, 디플레, 점진적 회복 등 단계적으로 변화시킨다면, 아마 서독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와버리는 사람의 수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을 시도하면,변화에 저항하려는 세력이 커져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방식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진 : 변화를 반기는 의견, 예컨대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으며 모든 자유가 있어서 좋다는 등 긍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러나 탁아소 시설, 실업자 해소 등 동독의 사회제도 중에도 장점이 있는데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바라에 모두 무시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부분적으로 동독 제도를 살리자는 요구는 무리일 것도 같은데 실정은 어떤가.

 버트람 : 경제 통합 조치가 취해지자 동독사람은 오히려 “내가 동독 사람이구나”하는 느낌을 전보다 더 강하게 받게 되었으며 서독 사람 역시 “내가 서독사람이구나”라고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사실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동독이 서독에 비해 경제생활이 빈약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서독 역시 가난한 친척이 찾아와서 재산을 나눠달라는 상황 같은 것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선거를 실시한다거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는 문제보다는, 심리상태나 정신적 자세를 바꾸는 문제가 더 어렵다.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지려면 오랜 조정기간이 필요할 것이며, 그 시기를 거쳐야 통일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동독 제도와 관련, 나도 한때 다른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처럼 동독에도 좋은 점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종일 봐주는 탁아소라 하지만 직원이 태부족하다는 사실, 직업안정이라지만 일을 하는둥 마는둥 하는 직장이므로 사실상 ‘취업’이라고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건질 만한 장점이 사실은 없다고 본다. 상황이 급변하니까 일종의 ‘노스탤지아’ 심리에서 그런 말들이 나온다고 봐야 될 것이다.

 진 : 통일외교를 추진하면서 보여준 콜 총리의 외교 수완과 적극성에 대한 칭찬이 들려오고 있다. 12월 총선거에서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승리하리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는데…

 버트람 : 서독 선거제도에는 비례대표제가 가미되어 있으므로 영국 선거(최다득표자 당선)처럼 급격한 변화는 없는 법이다. 현재의 연립 집권세력(기민당·사회동맹·자유민주당)이 이길 것이다. 콜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번 통일외교에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진 : 영국의 니콜라스 리들리 통상장관은 유럽통합 조치가 자칫 독일의 유럽 지배라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면서 과격한 의견을 공포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여론의 지탄을 받고 사직했지만, 그러한 의견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유럽통합 추진에 있어 하나의 문제점이다. 독일이 유럽의 강국으로 다시 등장하는 데 대한 거부반응을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버트람 : 나는 독일문제는 벌써 없어졌으며, 남은 문제는 유럽문제라고 본다. 서유럽 국가들이 힘을 합쳐 국제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형성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서독은 서유럽을 공고히 하는 데 열성을 가지고 임해왔다. 통일독일이 똑같은 열성으로 임할 것인가. 또 독일의 파트너들이 독일의 분단시기에 서유럽을 위해 열성을 가졌듯이 이제는 강해진 통일독일이 들어낮게 된 마당에도 서유럽 결속에 열성을 가질 것이냐에 문제는 달려 있다. 마음을 놓기 힘든 상황이다. 독일인들은 두 개의 이질적 사회의 통합에 따른 적응 작업에 온 신경을 쏟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웃나라 사람들은 독일이라는 막강한 존재를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되었다. 동독이 서독과 합치게 되었다 해서 GNP나 인구는 크게 늘지 않는다. 서독은 이미 막강한 존재였으나 통일 교섭 과정에서 서독의 무게와 힘이 두드러지게 드러남으로써 사람들은 서독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독일이 강국은 강국이되 유럽통합에 있어 통합 대상이 되는 데 하등의 지장이 없는 그러한 강국이 될 정도로 지혜로울 것이냐가 문제이다. 한편 이웃나라들도 이러한 독일과 더불어 유럽통합의 일원이 되어도 좋다고 할 정도로 지혜로울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진 : 리들리 파문은 영국에서 일어났지만, 프랑스 등 다른 이웃나라에도 독일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다. 폴란드처럼 독일에게 점령당하고 독·소합작에 희생당한 나라의 경우는 경계심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2차대전 후 서독사람들이 보여준 나치시대에 대한 반성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많지만, 앞으로의 독일의 처신이 쉽지 않을 것은 틀림없다.

 버트람 : 서독에서는 나치 역사에 대한 토론을 의식적으로 널리 실시해왔다. 우리 신문(디 차이트)만 해도 직접·간접으로 나치에 언급하는 기사가 적어도 한건은 언제나 살리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과거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해왔다. 그 결과, 독일인들은 자기네 과거를 파악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성숙한’ 국민이 되었다. 일본같은 나라는 그러한 철저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진 : 고르바초프가 독일통일에 협조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콜 총리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소련 자체가 새유럽질서에서 격리되기를 원치 않으며 ‘우럽과 통하는 창’을 뚫고자 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유럽 공동의 집’을 주창해왔으며, 3백년 전 표트르 황제가 서구문명과 기술의 도입을 시도했던 전통을 이어 유럽의 일원으로 자리잡기를 원하는 눈치이다. 고르바초프가 과거의 소련 지도자들과 다른 점은 서방측 기술과 자본만 취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는 못들어오게 막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는 점일 것이다. 서방세계의 생각이나 영향을 막는 담을 헐어버리지 않고서는 서방국가들과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현 소련 지도자들은 깨달았다고 볼 수 있다.

 버트람 : 작년 10월 동독 건국 40주년 행사 때 동베를린을 방문하 고르바초프가 동독 지도자들에게 한 말이 있다. “역사는 지각하는 자를 벌한다”고. 고르바초프는 지각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통독은 어차피 되는 것인데, 공연히 방해를 하지만 않는다면 소련이 독일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소련을 공업화된 현대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뜻에 그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계산했다고 본다.

 진 : 통일독일이 나토에 머물러도 좋다는 소련의 동의가 발표되는 장면에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합석하지 못한 것을 부시 대통령과 베이커 장관이 섭섭하게 여겼다는 보도가 있다. 그동안 통독을 위해 적지 않은 외교지원을 한 입장에서 생색을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장차 유럽에서 미국이 맡을 역할이 남아 있다고 보는가. 프랑스 등은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주장하고 나서는 폼이 미국의 역할이 끝나기를 바라는 눈치인데…

 버트람 : 미국이 유럽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미국이 유럽 일에 관계 안한다는 것은, 미국이 세계 문제에 관계 안한다느 소리가 되며, 고립주의에 빠진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유럽뿐 아니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또 중남미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둘째로는,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독특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유럽에 절대로 유리하다. 그것은 서로 신뢰도가 높고, 배울 점이 많고, 문제를 협의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관계였다. 만약 유럽이 미국으로 하여금 유럽에 닻을 내리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독일의 힘에 대한 우려도 더 크게 대두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어떤 기구를 통해 수용하느냐에 대해 유럽에서도 앞으로 더 신경을 써서 연구해야 될 것이다.

 진 : 동유럽과 소련내에서 민족주의 대두가 문제되고 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억압이 풀리면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서유럽 국가에서는 신우익 세력이 만만치 않게 활동하고 있다.

 버트람 : 동유럽의 경우는 이해가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방측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는 별개의 문제이면서 더 심각한 문제이다. 제3세계에서 들어오려는 이민을 처리할 묘책이 없는 상화에서 신우익 세력이 배타적인 감정을 자기네 정치세력 확장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유럽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제국에 대대적인 경제원조를 제공하여 경제발전을 돕거나, 이들 지역 사람들을 이민으로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로는, 지금까지 유럽과 미국의 관계는 독특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유럽에 절대로 유리하다. 그것은 서로 신뢰도가 높고, 배울 점이 많고, 문제를 협의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관계였다. 만약 유럽이 미국으로 하여금 유럽에 닻을 내리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독일의 힘에 대한 우려도 더 크게 대두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어떤 기구를 통해 수용하느냐에 대해 유럽에서도 앞으로 더 신경을 써서 연구해야 될 것이다.

 진 : 동유럽과 소련내에서 민족주의 대두가 문제되고 있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억압이 풀리면서 생기는 현상이지만, 서유럽 국가에서는 신우익 세력이 만만치 않게 활동하고 있다.

 버트람 : 동유럽의 경우는 이해가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방측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는 별개의 문제이면서 더 심각한 문제이다. 제3세계에서 들어오려는 이민을 처리할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신우익 세력이 배타적인 감정을 자기네 정치세력 확장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유럽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제국에 대대적인 경제 원조를 제공하여 경제발전을 돕거나, 이들 지역 사람들을 이민으로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진 : 미국이 이미 여러해 동안 멕시코인들의 불법 월경을 막지도 못하고 묵인하지도 못하며 고민해온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쉬운 해결책은 찾기 어렵다.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보면, 일본의 역할, 중국의 앞으로의 방향 등이 불투명하다. 당분간 유럽은 자기네 일이 바빠서 아사아와의 관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할 것도 같다. 버트람 : 89~90년은 유럽 역사상 매우 결정적인 시기이다. 상황이 급격하게 전개되는 것을 눈앞에 보면서 숨이 가빠질 지경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먼곳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어느 시기만 지나면 유럽 밖의 일에도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일본은 경제력은 막강하지만 정치제도가 그것을 소화할 만한 적응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발전을 조속히 기대할 수는 없다. 한가지 유럽의 변화와 관련해서 생각할 때, 유럽의 변화란 ‘비정상’이 ‘정상’으로 돌아간 것인데, 한반도의 분단이나 북한 정권의 존재도 ‘비정상’이므로 역시 ‘정상’을 찾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확실한 것은 일단 오기만 하면 ‘비정상’의 붕괴가 무서운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유럽에서 경험한 일이다. 비정상적인 것들의 생명에는 이제 한도가 보인다. 한때 우리(독일인들)도 ‘비정상’이 ‘정상’이 아닌가 생각해버린 때가 있었다. 그러나 ‘비정상’은 어디까지나 ‘비정상’임을 깨달았다.

 진 : 끝으로, 독일통일 때문에 유럽 단일 시장화 등 유럽통합 시간표에 차질이 생길 염려는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버트람 : 나도 한때 비관적인 생각을 했으나 요즘 통화문제, 시장 단일화를 위한 각종 제도와 장치에 관한 제안이 속속 나오는 것을 보면 희망을 갖게 된다. 영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에서 독일통일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식은 서유럽의 통일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니콜라스 리들리 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어붙이게 될 것이라고 낙관해 보고 싶다. 이러한 낙관론을 내세워도 상관없을 듯한 근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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