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신화와 ‘말’의 진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8.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따이한중앙회, ‘양민학살’ 보도에 <말> 사무실 포위농성… 경찰 대응 소극적

 베트남전이 종식된 지 16년째인 지금 아직까지 그 ‘정글 속의 신화’가 살아있는 것일까.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모임인 사회단체 따이한중앙회(회장 황문길) 회원들이 진보적 시사종합지를 표방하는 월간 <말>에 퍼붓는 ‘파상공격’은 아직도 베트남전의 신화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25일부터 <말>을 상대로 ‘작전’을 개시한 따이한용사들은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부설한 (주)월간·말(대표이사 최장학·서울 마포구 공덕동 79-13)사무실로 몰려가 10여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말> 7월호에 실린 金民雄(재미언론인·34)씨의 기고문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 그 역사적 진실’이 사실을 왜곡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7면 분량의 기고문에서 특히 이들이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 월남전 참전 주요지휘관 세대의 80년 광주민중항쟁 진압 관련설 △ 미군의 초토화작전에 동원된 한국군이 민간인들까지 잔인하게 학살했다는 주장 등이다.

 필자 김씨는 주로 <우방이라고 부린 한국- 베트남 현지보고>에 실린 증언을 인용해 한국군의 잔학상을 고발했는데, 그 보고서는 퀘이커교도로서 베트남 현지에 찾아가 한국군의 작전현황에 대한 증언을 수집한 미국인 마이클 존스 부부가 기록한 것이다. 주요 부분을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66년 11월 푸옥 빈 마을에 일단의 한국군이 들어섰다. 마을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여자, 노인 그리고 아이들뿐이었다. 이들이 마을에서 나서기 전 기관총 소리가 하늘을 찢는 듯했고 그러고 나서 마을 한가운데에는 1백40구 가량의 시체가 즐비했다. 아이들의 입에는 케익이나 캔디가 물려 있었고 노인들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다. 아마도 안심시키면서 마을 사람들을 모으려고 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증언자들은 한국군이 민족해방전선(NLF) 게릴라와 직접 교전하려 하기보다는 양민학살로 공포를 주어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도 문제이나 이들을 불러들인 미국이 더욱 문제이며 이들이 악역을 맡는 바람에 미군들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개선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것도 미국이 노린 바가 아니었겠는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참전용사 아닌 폭력배 끼어 있다” 제보도

 지난 65년부터 73년까지 한국군 5천명이 전사하고 9천명이 부상했다는 이 전쟁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참전용사들이 위 글을 읽고서 ‘열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치른 전쟁이 떳떳하고 명예로운 것이었기를 바라는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 이재형 차장에 따르면 농성 첫날인 지난 7월25일 아침 따이한용사회 지부에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사람들 좀 보내겠다는 심상찮은 전화가 걸려오더니 오후에 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20여명을 포함해서 따이한중앙회 회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60명쯤이 몰려와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폭언을 하면서 월간 <말> 7월호 전량회수 및 4대 일간지에 사과광고 게재, 기사 관련 의문점 7개하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26일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되었으며 27일에는 난입에 대비한 직원들이 안에서 출입문을 걸어잠그자 일부가 “따이한중에서 내가 희생자가 되겠다.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버리겠다”고 폭언을 일삼으면서 망치와 해머로 출입문을 부수는 등 직원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정상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대화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7월28일에는 따이한중앙회 회장을 포함한 대표 3인과 <말> 발행인을 포함한 대표 3인 등 양쪽은 서울시내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가졌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는 서로의 입장만 확인했을 뿐 더 이상 진전을 못보고 있다. 7월 30일에는 따이한전주지부 회원 60여명이 관광버스 2대를 대절하여 집단으로 상경, 사무실 앞에서 공개사과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해산했으며 7월 31일에는 성북지부 회원 30여명이 몰려와 한바탕 농성을 하고 되돌아갔다. 그러다 8월1일 오후 3시께는 ‘따이한 강동지부’ 차를 타고온 20여명 중 일부가 <말> 8월호 발송업무차 사무실을 나서던 이인수(영업부장)씨와 권오선(영업부직원)씨를 주먹과 발길로 폭행, 잡지 8월호 2백여권을 빼앗는 사태도 있었다. 이재형 차장은 ”당시 폭행장면을 지켜본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과 전경들은 한참 지나서야 이를 저지해 빼앗긴 책을 받아 되돌려주었으나 집단 폭행한 현행범들을 연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면서 현재 <말>측과 따이한측은 일촉즉발의 감정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형편이다. 따이한중앙회 최민종(사업본부장)씨에 따르면 8월1일 가진 회장단 회의에서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8월8일 회원들을 동원, 대규모 규탄대회를 갖고 회장단 삭발식과 <말>화형식을 갖기로 결정했는데 ”그럴 경우 회원 몇사람이 자진할 것이 우려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 김형식(조직부 차장)씨는 <한겨례신문> 8월3일자 국민기자석에 실린 한 독자의 편지를 예로 들면서 ”주소지인 광주시 두암동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은 살지도 않더라“면서 그 신문이 자신들의 폭력성을 과장해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말>측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말>의 한 관계자는 ”사건 첫날 몇몇 회원이 군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 <한겨례신문>에 실리고 나서 한 독자로부터 제보가 왔는데 그중 한명이 참전 경험이 없는 서울시 마장동의 폭력배라고 알려왔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이 확인되면 따이한회 조직이 와해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언론·보수우익 갈등으로 확대될 조짐

 이런 가운데 재야 및 언론단체들의 따이한회 규탄성명“ 발표가 잇따라 이번 사태는 ‘자유언론 대 보수우익’의 갈등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지난 7월 27일 한겨례신문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전민련(7월28일), 언노련과 민청련(7월30일), 기자협회(8월1일), 동아·조선투위·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8월2일) 등은 성며을 통해 “난동행위 즉각 중지와 폭력행위자 즉각 의법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재야 일부에서는 “최근 부쩍 늘고 있는 극우반통일 반민주세력들의 신문광고와 플래카드를 동원한 선전전은 정부의 대리전으로써 통일운동과 반민자당투쟁을 희석시키려는 음모가 담겨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 북한의 북측 공동경비구역 개방선언을 ‘환영한다’고 논평한 평민당 김대중총재에게 “김일성과의 관계를 밝히라”고 요구한 반공애국단체총연합회 이름의 신문광고 △ 겉으로는 “온겨례가 고루 참여하는 범민족대회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걸고 있지만 실은 ‘물귀신 작전’으로 보이는 이른바 범민족대회참가단체협의회(58개 사회단체)의 신문광고 △ 지난해부터 시내 곳곳에 나불기 시작한 “미군철수 운운하는 자는 민족의 반역자이다” 따위의 플래카드 등은 변혁세력에 대항하려는 당국의 이른바 대응세력의 논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시말해 현정권은 의사보혁구도를 창출, 과거처럼 직접 나???지 않고서 극우세력에게 ‘이에는 이빨’로 맞서게 하는 전술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극으세력은 신문광고를 통해 “우리는 취근 학원가, 언론계 및 노사분규의 배후에는 북에서 밀파된 간첩조직이 개입되어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으며 공권력의 미온적 조치에 대하여 울분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주장, 안기부의 ‘무능ㅇ’을 비난하면서 공권력의 ‘강경조처’를 요구하고 아울러 여차하면 직접 ‘나설 뜻’이 있음을 강하게 재비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우리가 냉전시대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아직도 우리가 냉전시대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빨갱이=나쁜 놈’이라는 지난 시대의 이데올로기, 반인간적 신화는 깨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더럽혀진 명예’와 역사의 진실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