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 쫓는 大邱
  • 조륜증 기자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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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와 첨단산업 접목 시도… 교통·자금난 해결이 과제

섬유산업의 본거지 대구에서는 첨단산업 기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대구직할시 동남쪽 끝, 경상북도와 맞닿은 곳에 자리잡은 城西공업단지가 그 전진기지. 취약한 산업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지난 84년부터 시작한 성서공업단지 조성사업에 대한 대구시의 기대감은 첨단업종을 유치하기로 한 2차단지의 완공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성서1단지 한구석에 자리잡은 주식회사 아신의 계열사인 아신정밀은 국내 대형 아파트 단지 건물의 잠금장치의 약 4할을 생산·공급하는 업체이다. 3년 전에 성서 1차단지에 입주한 아신정밀의 全殷烈사장은 “2, 3차단지가 완공되어 첨단산업이 입주할 경우, 그에 따른 기술이전 효과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한다. 전사장은 첨단산업에 거는 기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인 열쇠를 만들 때, 열쇠의 골(pin)이 6개일 경우 골의 높낮이를 골고루 조합하면 모두 1백만 종류의 열쇠를 만들 수 있다. 이 가운데 가능한 조합을 꾸며 실제로 제품화할 수 있는 것은 약 60만 종류라고 한다. 아신정밀의 연간 생산규모는 약 1밷50만개, 지난 20년간 만들어낸 각기 다른 모양의 열쇠 숫자는 어림잡아 3천만개.

 골이 많아지면 골과 골사이의 거리인 단차가 줄어들어 열쇠의 정교함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교한 여로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좀더 치밀한 설계·금형·절삭·가공이 뒤다라야 하고, 이르 위해 신소재 개발이나 정고한 금형절삭기계의 개발 및 공급이 필요하다. 그는 “앞으로 3단지에 아신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플라스틱 열쇠나 전자시스템을 도입한 첨단제품을 생산하면서 이 분야의 특화를 꾸준히 꾀해나갈 것”이라고 사업계획의 일부를 밝힌다. 전사장은 경북·대구지역의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해 “5, 6년 전만해도 섬유 일변도였는데 구미지역 등에 대기업의 생산라인이 옮겨오면서 이를 배경으로 서서히 변화가 진행되어왔다”라고 말한다.

 한여름의 뙤약볕아래 건설작업이 하창 진행중인 대구시 달서구 갈원동과 월암동 일원의 3백32만평에 들어설 성서공업단지는 지난 84년에 착공하여 오는 96년 완공될 때까지 총 6천1백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곳이 완공되면 성서공업단지는 국내 최대의 공업단지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1차단지 88만평은 조성이 끝나 4백81개 업체가 현재 가동중에 있고, 2차단지 1지구 64만평에는 모두2백16개 업체가 입주할 예정이다. 특히 대구시는 ‘첨단산업유치단’을 구성하여 2차단지 2지구에 1백50개의 첨단업종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초대형 공단은 포항 구미 창원 울산 등 대규모 공업단지와 함께 공업벨트를 형성하고 있으며 경부, 구마, 88,  중앙고속도로가 연결된 내륙교통의 요충이다. 이와 함께 낙동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공업용수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구시의 성서공단 조성은 80년대부터 후발개발도상국의 추격에 쫓겨 사양산업으로 퇴조하고 있는 대구의 섬유산업을 개편,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고도화’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돌파구이다. 대구시는 특히 2차단지 2지구 68만평에는 신금속·컴퓨터·반도체·로봇·통신기기·고분자신소재·정밀화학·생명공학·자동차부품업체 등 첨단산업체를 입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년 동안 이어져온 산업구조개편 논의

 현재 성서 1단지에 입주한 4백81개 업체의 내역을 보면 섬유가 2백15개, 기계가 1백59개, 화학이 48개 업체 등이다. 그러나 모두 2백16개 업체가 입주할 예정인 2차단지에는 섬유 비중이 83개 업체로 떨어지고 기계가 1백21개 업체로 늘어나는 등 몇 년 사이에 ‘?섬유’의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단지 입구에 자리잡은 대구은행 성서지점 관계자는 “우리 지점의 경우 입주업체의 활발한 시설투자로 50여억원 정도의 여신 초과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혀 성서공단에 투자 열풍이 불고 있을을 입증했다.

 대구시는 성서첨단공단이 모두 들어서는 90년대 중반에는 대구의 섬유산업 비중이 89년말의 56%에서 47%로 낮아지고, 기계공업은 21%에서 35%로 높아지는 등,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구시의 복안대로 된다면 90년대 후반의 대구경제는 주종산업의 탈바꿈으로 인해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을 것이다.

 대구시가 산업구조개편을 서두르는 이유는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이어져온 이 지역의 산업구조개편에 관한 관심과 위기감 때문이다. 대구은행 조사부의 朴泰稙과장은 “산업구조조정에 대한 대구 시민의 인식은 그동안 꾸준히 성숙되어 왔다. 대구의 70년대 산업구조개편은 생산품목의 다변화에 치중했지만, 80년대말부터는 섬유 등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한 기존 산업과 전자 등 첨단부문과의 접목을 추진한다는 맥락에서 구조의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영세 중소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대구지역의 산업이 자생적으로 첨단부문으로 고도화되기는 불가능하다”라고 산업구조 조정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의 말처럼 이러한 산업구조 조정이 쉬울 수는 없다.

 대구지역은 다른 지방보다 여건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산업구조 조정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통망을 보면, 대구는 육상교통의 요충지이긴 하지만, 국제공항이 없고 해상교통이 불편한 내륙도시이다. 포항은 항구로서의 기능이 미약하다. 이러한 여건은 지역 기업들의 수출활동을 저해하고 있다. 그리고 대구에 섬유, 구미에 전자, 포항에 철강산업이 편중되어 있어 경기변화의 영향을 쉽게 받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 기술, 정보관리 기능의 수도권 집중 때문에 모든 ‘지방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점에서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실물경제에 비해 금융산업이 크게 낙후되어 있는 점도 종종 지적된다. 이곳 금융계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 소재 제1,2금융권의 예금이 서울을 비롯한 역외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역내자금의 유출액은 3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은 50년대의 면방직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입대체 산업으로 출발하여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수출둔화와 수출대상국의 수입 규제 강화,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후발개도국의 추격 등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전국 섬유산업에서 차지하는 이 지역 섬유산업 비중은 87년말 현재, 사업체수 기준으로 40%, 생산액으로는 26%를 점하고 있다.

 이곳의 섬유산업은 최근 대내외적 경영여건이 더욱 악화되면서 재고가 늘어나는 등 극심한 침체를 보이고 있고, 구조적 불황의 성격마저 나타내고 있다. 이는 80년에서 86년 사이에 주요 개도국의 급격한 섬유수출 신장세와 비교된다. 이 기간 동안 태국은 연평균 18%, 인도네시아 34%, 터키 25%, 중국 14%(1975~85년)의 증가율을 보여 우리나라의 10% 수준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첨단산업 유치 반대론도 만만찮아

 이 지역 섬유산업의 큰 취약점은 직물과 염색 등 중간소재 부문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최종제품 부문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의류제품 등 포은 부가가치 창출은 서울 등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섬유업체의 80%이상이 단순하청임직업체이다. 따라서 기술을 바탕으로 한 대기업과의 상호보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밖에도 유통구조의 취약성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78년대초만 해도 전국 판매액에서 대구지역 섬유도매업의 판매액은 50%를 상회했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10%이하로 낮아졌다. 이러한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부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일부 섬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이미 ‘섬유산업 구조개선 7개년계획’을 확정, 연도별 실천계획을 수립해 업계의 자조력을 유도하고 있다.

 대구은행의 千海光조사역은 “이 지역의 섬유산업 비중이 여전히 높고 직물, 특히 화학섬유는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섬유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제품의 고급화등에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위 첨단산업 유치를 모든 생산업체가 반기는 거은 아니다. 이 지역의 일부 섬유업체는 요란스런첨단산업 유치계획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아신정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大埈纖維의 朴魯和사장은 “대구 전체를 보아서는 이른바 첨단산업의 육성이 바람직하겠지만 생각처럼 쉽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대구경제가 나아갈 방향은 바이오테크나 반도체 등의 첨단산업일 수도 있지만, 섬유산업 자체의 첨단화가 더 확실하고 중요한 길이다”라고 역설한다. 텐트나 등산용 배낭의 원단인 나일론 옥스퍼드를 생산하고 있는 박사장은 “이 업종은 아직까지 태국이나 중국 등 후발개발도상국으로부터 위협받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지난 15년간 섬유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사장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을 소개하면서 현재의 기계설비를 갖추는 데 1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생산 수준도 10배로 커졌으며 지금 2단지에 짓고 있는 제2공장을 본격 가동하여 자동화시설이 확충되면 생산 수준은 과거에 비해 20배 정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기술수준이 한단계씩 향상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또한 만만치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첨단산업의 유치를 환영하는 아신정밀의 전사장이나 이를 의문시하는 대준섬유의 박사장 모두 대구가 하루빨리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경제가 활성화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대구시는 섬유산업과 첨단산업의 공존과 접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섬유업종의 경쟁력 제고와 첨단업종을 육성하기 위한 대기업 유치 등 실제적인 노력의 성과가 주목된다. 이는 대구 시민들만의 관심일 수는 없고 산업구조 고도화의 숙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모든 지역경제의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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