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도난’ 여파로 몸살 앓는 인사동
  • 이성남 문화부차장대우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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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물 흘러들 땐 곤욕… ‘밀실거래’ 탈피 움직임

인사동은 明과 暗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지난  몇십년 동안 귀중한 고서적 도자기 고서화 서예 등을 학계에 제공해온 ‘국학의 보급창’ 겸 ‘거리의 박물관’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그런가 하면 문화재급 골동품 수집을 둘러싼 위법 행위가 묵인 또는 조장되어온 곳이며, 때로는 문화재 해외 밀반출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인사동의 이같은 부정적 측면은 3월에 보도된 ‘국내 최고 미인도 日 반출 기도’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고미술협회 孔昌鎬회장 등 4명이 문화재 전문 절도범이 훔친 보물급 문화재인 공재 윤두서의 ‘미인도’를 헐값에 구입해 일본에 밀반출해 팔려고 했다는 혐의(장물 취득 및 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됐으며, 여기에는 문화재 관리국 직원과 수사관까지 연루되었다는 것이 사건의 개요이다.

 성동구치소에 66일간 수감되었다가 지난 5월말 병보석으로 나온 공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네에서 믿을 마한 원로를 통해 소개받은 사람에게 미인도를 1천2백만원에 샀다. 그 그림은 보존상태가 아주 나빴기 때문에 공제의 작품인 줄은 전혀 몰랐으며 단순한 민화로만 알았다. 그것을 다시 부산의 진화랑 대표에게 같은 값으로 팔았다. 그즈음 문화재관리국 직원이 정기룡 장군의 요대를 훔친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고 그때 제보한 내용이 단서가 되어 범인이 검거되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미인도를 팔았던 사람이었다.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미인도가 공제의 작품임이 밝혀지자 나는 장물을 취득한 꼴이 되어 지난 1월에 벌금 20만원을 물었다. 그후 ‘고미술협회장이라고 하여 수사관이 뇌물 먹고 봐준 것’이라는 내용의 투서로 인해 동부지청에 소환되어 갔다. ” 그것이 윤선도기념관에서 나온 장물인 줄 알았으면 왜 샀겠느냐고 반문하는 그는 “투서로 인해 누명을 쓴 것이므로 곧 흑백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현재 1심계류중이다.

 

호라꾼이 털어놓는 ‘귀신같은 솜씨’

 그런가 하면 지난 2월에는 윤보선 전대통령집에서 이조백자 등 골동품 38점을 훔쳐낸 도둑이 인사동 골동상에 물건을 팔려다 상인의 신고로 체포된 일도 있다.

 이 두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도둑질한 고미술은 대개 ‘판로’를 따라 인사동으로 흘러들게 마련이어서 이곳 골동상은 자칫하면 장물취득이라는 덫에 걸리게 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 64조에 명시된 문화재매매업자의 준수사항은 다음과 같다. 곧 매매·교환 등에 관한 장부를 비치하고 그 거래내용을 기록할 것, 매매 또는 위탁받은 물건이 도굴된 매장 문화재 또는 장물이라 인정될때는 지체없이 그 사실을 시장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그 지시에 따라야 할 것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골동상들은 밀실거래를 하고 있어 골동품의 거래가격이나 전체 매출 규모는 좀처럼 노출되지 않는다.

 골동품의 수집은 땅을 파서 물건을 끄집어 내는 방법과 시골의 가가호호를 뒤져 물건을 사오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전문으로 하는 이를 ‘호리다시’ 곧 ‘굴출’이라 하고 후자를 전문으로 하는 이를 ‘가이다시’ 곧 ‘매출’이라 한다. 한때 전국의 야산을 돌며 물건을 캔 적이 있다는 호리꾼 o씨가 굴출의 방법을 털어 놓았다.

 호리꾼은 ‘창’을 가지고 다닌다. 옛날에는 자전거 안장 스프링으로 만들었는데 요즈음에는 ‘피아노 대킹’이나 ‘소총 꼬질대’로 창을 만든다. 한자씩 다섯 개를 이어서 1m50cm길이로 만드는데 보통때는 접어서 가지고 다닌다. 산야를 쏘다니며 육안으로 보아 무덤이 있을 만한 낮으막한 야산을 찾는다. 일단 심증이 가면 창으로 땅을 찔러 손에 느껴지는 촉감으로 ‘생땅’인지 ‘죽은 땅’인지를 가린다. 한번 팠다가 메웠던 ‘죽은 땅’을 발견하면 창을 길게 펴서 바닥까지 깊숙이 짚어넣는다. 창 끝에 물건이 닿아 소리가 나면 꽃삽으로 땅을 판다. 깊이 들어가면 땅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꽃삽에 구멍을 뚫어놓는다. 파낸 흙은 보자기나 비닐에 담아놨다가 물건을 꺼낸 뒤에 다시 메워준다. 전문가는 “흙 한줌 흘리지 않고” 메워놓기 때문에 사흘만 지나도 도굴한 표가 전혀 안난다.

 폐사원이나 묘소가 도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묘소는 낮에 비문에 적혀 있는 연대를 보아두었다가 밤에 몰래 작업한다. 철물을 찾을 때는 창 대신 금속 탐지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o씨는 자기가 캐낸 ‘월척’으로 강진요에서 캐낸 ‘청자매병’을 으뜸으로 꼽았다. 그 매병은 그 당시 집한체 값을 받고 골동상에게 팔았다.

 한편 매출꾼들은 방방곡곡을 누비며 산간벽지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골동품을 사러다닌다. 60~70년대만 해도 그 집 사람이 가보로 간직하던 귀물이건 장독대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은 항아리건 주인을 어르고 달래어서 물건을 손에 넣는 그들의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헌 장롱이나 고리짝·구유통·사기 그릇은 물론, 곰방대 놋쇠요강 따위를 ‘호마이카’ 가구나 플라스틱 집기 등속으로 바꿔주는 수법을 쓰곤 했다.

 

“물건만 좋으면 어떤 것이든…”

 굴출꾼이나 매출꾼은 수집한 물건을 손수레 행상, 곧 거간에게 넘기거나, 그보다 한단계 위인 좌상에게 직접 가져온다. 좌상이란 오늘의 골동상처럼 상점에서 거래하는 상인을 일컫는다. 거간이나 좌상은 예나 오늘이나 대개 서화나 골동에 매우 높은 안목을 갖추고 있으며 상술 또한 뛰어나다.

 굴출이나 매출이 한풀 꺾인 요즘에는 사찰·사당·박물관 등지에서 문화재 도난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 통계에 따르면 80년에 도난 4건, 도굴 9건이던 것이 85년에는 도난 7건, 도굴 5건으로 도난사건이 많아졌다. 88년에는 도난사건이 32건, 도굴 10건이고 89년에는 도난이 22건, 도굴이 3건으로 나타났다.

 7월30일에 고려대 본관 2층 회의실에 걸려 있던 대만 화가 장대천 화백의 ‘청록산수화’절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방법도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도난사건은 “사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없는” 고미술 품귀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들통만 나지 않는다면 어떤 물건이든간에 몰래 사겠다는 숱한 익명 수장가들의 검은 이기심이 도난사건을 부추긴다고 볼 수 있다.

 “물건이 좋으면 이성을 잃게 되지요. 며칠 동안 밤잠을 안자고 사채까지 얻어서 자신의 경제력에 당치도 않은 물건을 사게 되는 일도 있어요.” 한 수장가의 말마따나 골동 취미가 깊은 사람이면 으레 이런 병을 앓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일 뿐, 내각 가진 것만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있듯이 재력있는 수장가들이 저마다 문화재 제자리 지켜주기에 앞장서야 문화재 범죄 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

 때마침 인사동 골동상 사이에도 “밀실거래를 탈피해서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경매제도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고서화 전문상인 ‘학고재’에서는 벌써부터 가격표시제를 도입하여 거래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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