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절제 돋보이는 秀作
  • 이세용 (영화평론가)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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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감독 : 임권택 
주연 : 박상민

 임권택 감독의 액션영화<장군의 아들>은 총이나 칼 대신 주먹의 힘을 담고 있어 홍콩의 액션물과 구별된다. 도한 힘의 행사가 소박한 울분에서 비롯됨으로써 미국제 폭력영화와도 구분된다. 한사람을 죽이기 위해 수없이 쏘아대는 총탄, 몇 드럼의 피를 흘려야 직성이 풀리는 홍콩산 폭력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장군의 아들>은 대단히 절제도니 힘의 미학을 보여준다.

 홍성유의 원작소설을 윤삼육이 각색한 이 작품은 일제가 한창 기세를 올리던 1930년대 초반부터 40년대 중반까지가 시대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낱 폭력배에 불과했던 소년 김두한이 자라나면서 어떻게 이웃의 어려움에 눈을 돌리게 되었으며, 핍박받는 종로통 상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는가를 흥미롭게 묘사한다.

 어두운 시대, 자신의 튼튼한 몸뚱이 하나가 유일한 밑천인 김두한. 그가 조선인 주먹패를 거느리고 숱한 대결에서 승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장군의 아들>의 뜻을 차츰 깨닫는 과정에서 임권택 감독은 ‘김두한의 힘을 통하여’ 남성 에너지를 표출한다. 이것은 점차 중성화로 치닫는 ‘사람꼴’이 못마땅한 기성세대가 보여주는 ‘그리움’의 형태마저 띠고 있다.

 힘겨루기에서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폭력집단이 난무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장군의 아들>에 등장하는 대결 장면이나 패배 후 무릎을 꿇고 승복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신사적’이기조차 하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풍물과 병약한 지식인의 에피소드를 삽입하여 <장군의 아들>은 ‘옛날 옛적 종로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주먹을 성공적으로 재현한다.

 30년대의 종로를 되살린 오픈 세트의 규모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부감촬영이 많은 느낌이 들지만 편집의 묘미에 의해 역동적인 화면을 창출한다. 재미에 치중하여 오락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임권택 영화 중 예술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연출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들어 있다. 즉 그가 여태까지 만들어온 영화의 기본적인 화면구성, 공간 속에서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솜씨있는 연출이 잘 만든 액션영화의 본보기가 될 만한 <장군의 아들>은 한마디로 재미있고 통쾌한 영화, 신인배우들만 기용하여 이만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보는 순간의 재미와 즐거움이 보고난 뒤에까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이 작품이 가진 리얼리티의 이율배반적 요소 때문이다. 그것은 시대와 배경이 비교적 리얼한 분위기를 살려내는 데 반해 등장하는 인물 특히 김두한과 그 주변인물에 대한 해석이 지나티게 극적으로 전개되는 탓이다. 따라서 눈의 즐거움에 비해 공감의 파장이 짧다.

 영화상영 중에 시계를 볼 틈이 없는 영화, 벌써 끝났나 싶게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재미 이외에 다른 의미를 담으려 했던 연출의 의도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그것은 ‘민족주먹’으로 그려진 김두한이 실제로는 주먹 이상도, 주먹 이하도 아닌데, 용모에서부터 갖가지 행위를 과도하게 미화시킨데서 연유한다. 액션의 재미를 위해 리얼리티를 조금씩 양보한 장면이 홍콩영화를 닮은 것도 이 작품의 속성상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무튼 몇가지 불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 중 하나이다. 라스트 신은 속편을 예고하고 있는데, 또 보고 싶다. 영화에서 재미가 전부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일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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