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망가지지 않을 때
  • 박중희(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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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조선왕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왕 자리에 오르면서 조선과 일본이 한 나라가 되었다는 격이다. 또는 거꾸로 일본왕이 서울에 와 조선왕 자리에 오르면서 “이제 일본도 조선땅이다”라고 한 거라 해도 좋다. 그러니까 합방을 해도 그 방법이 기기묘묘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되면 속된 말로 누가 누굴 먹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니 어느 한쪽이 손해봤다고 분통을 터뜨릴 것도 없다.

 하여간 그러헥 이루어진 게 ‘영·소합방’이었다. 영·소합방이라 써놓으면 고르바초프와 대처가 드디어 하나가 되기로 했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의 영·소란 영국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두고 하는 애기다. 한자로는 스코틀랜드를 ‘蘇格蘭’이라고 표기하는 게 보통이고 쓰기에도 편해 그렇게 써내려온 게 ‘영·소합방’이다.

 

 ◆… 때는 1603년. 영국의 ‘아남방’이라고 해도 괜찮을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1세가 죽자 스코틀랜드(영국의 이북방이라해도 좋고)의 제임스 6세가 남쪽으로 내려와 엘리자베스여왕의 뒤를 이으면서 양쪽의 두 나라가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면서 나라 이름도 ‘연합국‘이라고 새로 지었고 왕의 칭호고 제임스 6세에서 제임스 1세로 바꾸었다. 두게였던 나라가 하나가 되었으니 이는 어엿한 합방이요 남북통일리기도 했다, 거창한 일이 싱거울 정도로 쉽게 되기도 한 것이고.

 거기엔 물론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나라랄는 국가개념보다 어느 왕족의 피냐 하는 혈연 위주의 시대였고, ’이북땅‘의 제임스왕이 죽은 ’이남방‘ 여왕의 아저씨뻘이고 보면 두 나라가 합치는 것이 누구 뼈꼴 뺄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다분히 중세라는 특수한 상황이 낳은 우연이거니와 행운의 덕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영. 소합을 ’재주이기보다는 재수‘라고 해버리긴 좀 어렵다. 앞에서 ’이북방‘ ’이남방‘이란 말을 썼지만 지금도 남북으로 갈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의 경계는 국경이라는 뜻으로도 통하는 ’보더‘(Border)이라 불린다. 더 단적인 예로 지난번 월드콥축구대회에도 잉글란드와 스코틀랜드는 언제나처럼 따로 출전했다. 지페도 스코틀랜드 것은 따로 찍어낸다. 그만큼 다른 민족이고 딴 ’나라‘(nation)다.합방 당시엔 더 확실한 딴 나라였던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간의 관계는 한.일합방 당시의 조선과 일본, 또는 지금의 남북한 사이보다 더 나빴다. 그런 그들간의 합방이 지금까지 4백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그것이 재수가 좋이서 그랬다고만 할 일은 아니다. 한.일간의 합방이 40년도 못가 결단난것에 비하더라도 그렇다.

 “어째서냐”하는 점을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주 간단히는 “한.일합방이 강제에 의한 주종의 관계였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서간의 그것은 나의에 의한 대등의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해도 된다. 그게 “누가 누굴 먹은 지 몰랐다”는 합방 당시만의 얘기도 아니다.

 합방 후의 산업혁명, 그리고 “해가 지는 일이 없는 대영제국”을 이루면서 그들이 똑같은 주역으로서 누릴 수 있었던 ’영광‘이나 혜택은 그들간의 분열이나 분규를 막는 결합체 역할을 했다. 돌아오는 ’반대급부‘가 클 때 사람들은 웬만한 ’지출‘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 이런데서 보는 ‘성공적인 결합’의 조건은 싱겁도록 산단하다. 성공적 결합은 자발성 평등성 호혜성이 보장되면 되는 것이다. 그건 나라간의 연합이나 동맹에서도 그렇고, 부부간의 결혼에서도 그렇고, 무수한 이익.세력집단간에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역사가 그렇지 못해온건 힘있는 강자일수록 상식적이기보다는 폭력적이기 일쑤여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강자들의 질서’였던 동.서냉전체제가 흔들거리면서 그동안 숨을 죽야온 약세 민족, 종족 등이 집단이주권을 주장해 세계가 시끄럽다. 소련이나 동유럽은 물론이고 통합을 주장하는 서유럽에서도 주권과 통합이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문제들이 다른 동맹권이나 국제관계 또는 세력집단들간에도 퍼져나갈 건 뻔하다. 그럴 때, 누구나 염두에 두어야 할 한가지 핵심이 있다. 그건 어떠한 연합이나 결합이건 그것이 호혜적인 것이면 오래 가고 어느 쪽이 종속적일 때거나 불만일 때면 조만간 망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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