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서둘지 말고 차분하게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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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통일이 실속있게 진행되고 있다. 7월1일부터 통화단일화가 이루어져 동독경제가 사실상 서독경제에 흡수되었고, 다소의 잡음은 있었으나 빠르면 연내에 정치적통합이 총선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통일독일의 나토잔류 문제도 소련측의 양해를 얻어 별 탈없이 이루어진다는 소식이다. 미·영·불·소 등 45년간 독일을 동·서로 갈라놓은 전승 4대연합국 중 어느 한 국가도 마음속으로부터 독일통일을 원치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독일은 동·서 냉전구조가 무너지는 역사적인 시기를 놓치지 않고, 평화 자주 민주 및 민족자결의 원칙 아래 신속 과감하게 통일의 대업을 이룩했다. 4대전승국도 어쩔 수 없이 이를 승인하는 ‘2+4’의 역사적 기적이 일어났다.

 같은 기적이 한반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희망·염원·기대는 비단 한국사람들뿐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선의의 외국사람들간에도 팽배해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독일에서 일어난 기적이 한반도에서 가까운 시일에 실현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관찰할 수 있겠으나, 그 개연성은 희박하다는 것, 그것이 냉엄한 현실이고 보면, 민족문제의 해결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서서히 그러나 전향적으로 다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통일도 善’이라는 논리의 위험성

 왜? 답변은 바로 독일의 체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70년대초에 ‘동방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대담한 상호안정·상호교류 원칙에 합의하였다. 지난 20년간 분단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상대방의 존재를 솔직하게 존중하고 ,그럼으로써 분단으로 인한 인간적 고통을 덜어주고 민족의 동질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다하였다. 적어도 ,전쟁이나 파괴행위로 상대방을 흡수하려는 그런 수법을 씻고 잠정적으로 ‘1민족2국가’의 현실을 받아들였다. 분단의 인정, 그것은 물론,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이질적인 두 체제가 통일을 급하게 서두르고 ‘어떤 통일도 善’이라는 논리를 전개할 때, 그것은 평화적으로 통일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괴 내지 전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나아가 인적·경제적 접근으로 평화적인 통일에의 길을 모색하였다. 마침내 소련과 동유럽권에서 스탈린주의 체제가 자체내의 하중과 모순으로 무너지자, 재빨리 평화·자주·민주 및 민족자결의 원칙으로 통일대업을 이룬 것이다. 독일민족의 자제와 지혜와 그리고 순발력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여기서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은 서독의 강한 국력이었다. 인구에 있어서 서독은 동독의 4배나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경제력에 있어 유럽 제일의 나라로 성장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철저한 사회정의가 이루어지고, 자유와 더불어 평등의 가치가 넘쳐흐르는 天下無比의 체제를 구성하였다.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살고 빈곤의 흔적은 눈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적어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을 원망하고 시샘하는 일이 없는 이상향을 구축하였다. 바로, 자유와 평등과 번영의 서독체제가 평등하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번영할 수 없는 동독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 것, 그것이 바로 독일통일의 기적을 창출한 잠재력이었다.

 우리의 경우, 분단국가라는 점에서, 동·서 두 진영의 전초기지라는 점에서 독일과 닮은 데도 있지만, 처해 있는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우선 북한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스탈린체제하에 있다. 소련 등 공산권에서 일어난 개방화·자유화의 바람이 아직 미치지 않고 있다. 우리 朝野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조선노동당이 결정한 공식적인 노선에 ‘이설과 반대’가 전무한 체제라는 것을. 다시말해 북한은 정부입장과 다른 차원의 비판적 의견이나 움직임은 전혀 있을 수 없는 폐쇄된 사회이다.

 

취약체질의 ‘불신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우리 남한의 경우, 서독처럼, 자유와 더불어 평등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안정된 체제가 아닌, 아직도 대단히 취약체질임을 인정해야 한다.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극복 못한 채, 계층간·지역간·세대간의 반목·대립이 극심한 ‘불신의 공화국’이 아닌가.

 지금, ‘화해’라는 세계적 역사적 물결 속에 남북교류가 시도되고 정부 고위급 교섭이 실현돼가고 있다. 그것은 올바른 일이고 바람직스럽고 착실히 추진해야 할 민족적 과제다. 최소한 교류와 물꼬를 터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남북한을 동서독과 동렬로 놓고, 안이하고 성급하게 통일한국이 가까운 시일에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식의 착각은 금물이다. 지극히 초복적 남북교류를 에워싼 부질없는 입씨름이 무엇을 뜻하는 건인지,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북의 金日成은 신년사에서 남북한 사회의 전면개방을 선언하였다. 단, 보안법과 콘크리트장벽을 제거해야 한다느 전제조건을 붙이면서, 할뜻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남의 경우, 남북문제로 국론이 사분오열되어 있다. 이번 ‘범민족대회’를 놓고 보여준 우왕좌왕한 정부 방침, 그리고 정부와 재야간의 비우호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7·14날치기파동으로 말미암아 여야간 內政에 대한 대화의 끈마저 끊기고 말았다. 북에게 남의 내부혼란을 부채질하고 ‘남조선혁명’의 꿈을 더욱 키우게 할 소지를 제공한 것이다. 이판에 어떻게 건설적이고 의미있는 남북대화가 진전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정부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남북문제에 대한 대내적 국론통일을 진지하게 서두를 순간이 아닐까. 참된 의회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와 경제번영을 다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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