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자동차 ‘가격’의 비밀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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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비율 높고 누진세 적용으로 ‘값 2배’…관세는 큰 영향 못줘

자동차 시장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분쟁에는 많은 ‘신화’가 개입돼 있다. ‘미국산 승용차에 대한 관세를 유럽연합(EU) 수준인 8%로 낮췄다’는 것은 우리 쪽의 신화다. 한국은 자동차의 수입 관세 10%를 내년부터 8%로 낮춤으로써 무역 장벽을 유럽 수준으로 낮췄다는 주장이다. 이 조초로 상용차의 경우는 미국(25%)이 우리의 세 배에 가깝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자국산 승용차가 한국에만 들어가면 두배 값에 팔린다’는 것이 미국 협상 대표단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자료 제공 거부하는 수입상의 ‘속사정’
  사실을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잠재적인 외제차 구매자라고 밝힌 한 주한 외국인의 제안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바클레이즈은행 서울본부장인 알란 팀 블릭씨는 8월 12일 한 영자 신문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단순한 소비자이자 잠재적인 외제차 구매자로서 나는 왜 똑같은 수입 차가 한국에서 그렇게 비싸게 팔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현지에서는 평균 샐러리맨의 봉급을 기초로 한 예산 범위 내에 드는 아주 평범한 가족용 차가 왜 한국의 항구만 통과하면 그렇게 많은 비용이 추가되는가. 왜 한국산 차는 소박한 마이카이고 외제차는 호화 사치품인가’.

  그는 이 글에서, 한국 언론들이 미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 압력에 대해 정서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한국에서 팔리는 외제차와 생산국 현지 모델 사이의 가격 차이를 명쾌하게 밝혀 달라고 주장했다.

  여기 그 해답이 있다.〈시사저널〉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외제차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된 세이블 LS 모델과 가장 비싼 차로 밝혀진 벤츠 NEW 600 SEL 모델의 미국 현지 판매 가격과 한국내 한매 가격의 차이를 추적해 보았다.

  다만 이 차액의 일부분은 불분명해서 실제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정부나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관련 자료가 개방 압력의 빌미가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혹은 조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자료 제공하기를 거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외제차 수입상들도 그 차액을 밝히려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 내에서 팔리는 차의 선택사양(옵션) 때문에 가격을 비교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었으나, 현지가와 차이가 크다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계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수입상 마진은 순전히 추정에 의존했다. 즉 수입 가격에 각종 세금이 붙은 가격과 판매가와의 차이를 수입상 마진으로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주장의 중간 정도가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측 주장처럼 외차에 단지 관세류만 붙은 수입 가격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각종 국세가 붙으면 판매 가격은 현지가의 두배가 넘거나 두배 가까이 되었다. 이미 한국측이 여러 번 소명한 바 있듯이 국세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자동차에 부과되기 때문에 미국이 트집을 잡을 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특별소비세ㆍ교육세ㆍ부가가치세의 세율은 누진 구조를 가지고 있어 배기량이 큰 외제차가 불리하다. 예를 들어 배기량 1천4백95cc인 액센트 1.5CS는 세전 가격이 4백89만원이고 판매가가 6백8만원으로, 각종 세금이 1백19만원이다. 그러나 벤츠에 붙는 각종 세금은 8천만원에 육박한다. 벤츠보다 세이블의 수입상 마진이 크게 나타난 것도 이같은 누진적인 세율 구조와 관련이 깊다.

  판매가에는 등록 과정에서 부과되는 취득세(판매가격의 2%) 등록세(5%) 교육세(등록세의 20%) 지하철 공채(배기량에 따라 차등부과) 등이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실제 외제차를 사서 타려면 도표에 표시된 판매가에 등록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한다. 세이블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면, 판매 가격이 3천40만원에다 등록 과정에서 취득세 61만원, 등록세 1백52만원, 교육세 30만원, 지하철 공채 6백8만원, 도합 8백51만원이 추가로 든다.

  결국 국내 재정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관련 세제와 누진적인 세율 구조가 한ㆍ미간 분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세제와 세율 구조는 정부의 정책 의지뿐만 아니라 문화 요소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분쟁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이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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