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장 이등병’사라진다
  • 소성민 기자 ()
  • 승인 199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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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군인 신분보장ㆍ사기에 도움…일부서 “완전 폐지는 반대”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하기 위해 최근 국방부가 만든 군인사법 개정안에 한 가지 이색적인 조항이 들어 있었다. 임용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현역ㆍ예비역 직업 군인을 보충역 이등병으로 강등하던 제도를 없애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군이 제시하는 개정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법적 처벌과 강등이라는 이중 처벌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국방부에서 법제를 담당하고 있는 성광현 중령은 “사실 이중 처벌이 아니라 사중 오중 처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감옥 생활에 면직까지 당하고도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연금조차 못받는다. 게다가 죽은 뒤 국립묘지에도 못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연금은 지급해 오지 않다가 지난해 개정된 군인연금법에 의해 올해 7월1일부터는 이등병 강등자에 대해서도 반액을 지원한다. 연금의 충원이 절반은 국가 보조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당사자가 재직할 때 봉급에서 낸 돈이므로 자기가 낸 돈은 최소한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개정한 것이다.

  둘째는, 20년 이상 복무한 후 전역하는 군인들이 예비역을 기피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방부 제도연구위원인 방승무 중령은 “20년 넘게 군대 생활한 사람들은 전역하기 전에 퇴역이나 예비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대개 예비역을 기피한다. 가령 교통사고를 내 실형을 받아도 이등병으로 강등 처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비역을 기피함으로써 전시에 대비한 군 자체 인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낳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군인의 신분보장 및 사기에 관한 것이다. 성광현 중령은 “사람은 명예를 중시한다. 군인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등병 강등이란 어쩌면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일일 것이다. 명예란 연금 같은 돈과는 비교할 수 없다”라며 개정안의 취지를 강조했다.

불명예 강등된 장성은 모두 8명
  이등병 처분 제도에 따라 지금까지 불명예를 당한 사람은 많지만 일반 국민에게 알려진 인물은 몇 명 안된다. 정치적 의혹이 짙은 사건에 연루된 장성급 장교들이 주로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이등병 처분된 장군은 73년 공금횡령 및 월권행위 등으로 육군보통 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육사 8기)이었다. 이때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이던 손영길 준장(육사 11기)와 제3 사관학교 학생대장이었던 김성배 준장(갑종 6기)도 함께 이등병 처분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이등병 처분을 받은 장성은 대략 8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가장 가까이 우리 뇌리에 남아 있는 장성으로는 79년 12ㆍ12사태 때 내란방조죄로 구속돼 계엄사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당시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육사 8기)이 있다. 육군 최고 지휘관으로서 하나도 달기 힘들다는 별을 4개씩이나 어깨에 달았다가 작대기 하나인 이등병 신세로 전락한 정씨는 “재판 받을 때만 해도 내가 이등병으로 강등된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참담했던 상황을 술회했다.

  이들을 포함해 이등병으로 강등됐던 장성들 대부분, 또 직업 군인들 다수가 지금은 자기의 원래 계급을 회복했다. 88년 12월 병역법에 ‘계급 회복 제도’가 신설돼, 복권 신청을 해서 대부분 복권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전직 장성 출신인 한 군사 평론가는 “공금을 횡령하거나 진급 때 뇌물을 준 것이 발각돼 처벌된 자들까지도 모두 복권시킨 조처는 잘못됐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결격 사유에 부합되어 강등된 자들이 이등병이면 어떠냐. 과거 군사 정권이 아무리 독재를 했더라고 강등 조처를 할 때 그만한 근거도 없이 마구 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해 이등병 처분 제도를 폐지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위계 질서와 명예를 어떤 조직 못지 않게 중시하는 군인에게 세계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등병 강등 처분 제도는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蘇成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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