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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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 日아류 아닌 독창적 문화로… 대영박물관에 한국관, 소더비 단독 경매도

한국문화에 대해 세계가 눈을 뜨고 있다. 그동안 중국이나 일본문화의 아류로 취급돼왔던 한국문화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세계의 중심부에서부터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한국관을 개설하기 위해 시대별로 부족한 작품구입에 착수하여 이미 몇몇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세계적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사는 10월22일 뉴욕 본사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미술품 단독경매’를 실시하여 한국미술품의 상업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더비사의 ‘한국예술부’ 신설에 때맞추어 이뤄진 이번 경매에서는 특히 고려시대 불화인 <水月觀音圖>가 1백76만달러(약 13억원 · 수수료 10% 포함, 낙찰가 1백60만 달러)에 거래됐는데 내정가를 무려 10배나 뛰어넘은 이 가격은 한국미술품경매사상 최고가이다. 소더비사는 크리스티사와 함께 세계 미술품 경매회사의 양대산맥으로 지난해 한국지부를 개설한 바 있으나 그동안 한국미술품경매는 중국 · 일본 미술품경매의 더부살이식으로 진행해왔었다. 경매에 참석했던 수잔 미첼씨(소더비사 일본 · 한국예술 수석전문위원)는 “경매장의 분위기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출품된 22개중 18개가 거래되었는데 대부분 비싼 값으로 팔려나갔다”고 전했다. 금강산화첩 <풍옥권>이 내정가의 20배인 25만 3천달러에 거래된 것을 비롯, 조선백자(9만9천 달러) 소형신라불상(3만8백달러) 조선조인체해부도(2만9천달러) 등 7개 작품이 내정가보다 3~4배 높은 값으로 거래됐다는 것이다(총거래액 2백80만달러).

1753년 런던에 세워진 대영박물관에는 약 5백만점을 헤아리는 유물이 있다. 약탈해온 유물들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해도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인 까닭에 연간 5백만명이 관람하는 세계최대의 종합박물관이다. 유물은 그리스 · 로마, 서아시아, 이집트, 기원전 영국, 영국 중세, 화폐와 메달, 서양의 판화와 드로잉, 인류, 동양부 등 9개부문으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는데 동양부의 경우 중국 인도 일본 이슬람권이 각각 독립관으로 전시되어 온 반면, 한국유물은 중국이나 일본 전시관에 함께 보관돼 왔었다.

이곳의 한국관 개설은 해외 유수 박물관에 한국실 설치를 추진해온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3월 공식서한을 보내자 대영박물관측이 “이전계획중인 현재의 도서관 자리에 한국관을 개설하겠다”고 회신해옴으로써 구체화되었다. 한국관은 중국실과 일본실 사이에 3백 50㎡ 크기로 마련되어 삼국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화 도자기 금속공예 민예품 등 5백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섭외교류과 박정순사무관은 “한국관 개설을 위해 대영박물관장 데이비드 윌슨씨와 큐레이터 제인 포탈씨가 지난 6월 다녀갔다. 바르면 93년, 늦어도 96년까지는 개설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큐레이터 제인 포탈씨는 한국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아낼 계획으로 내한기간중 한국화가 서양화가 매듭연구가 도예가 서예가 등을 폭넓게 만났다고 한다. 실제로 서양화가 尹亨根씨(63)는 “포탈씨가 화실을 방문하여 86~87년에 그린 작품 두 점을 사갔다”고 햇으며 宋榮邦 鄭晫永씨도 요청을 받아 지난달 영국으로 작품을 보냈다고 한다.

위의 사례는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安輝濬씨(서울대 박물관장)는 이것이 경매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실 이번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水月觀音圖>는 1백50만달러까지 경쟁한 한국인을 제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대리인에게 낙찰되었고, 그외 주요작품의 상당수는 재미한인이나 서울에서 건너간 미술상들이 구입했다고 알려졌다.

안교수는 전시를 위한 박물관으로 흡수되지 않을 바에야 대부분의 한국유물이 한국인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을 ‘해외유출문화재 반입’이라는 점에서 다행한 일로 평가한다. 그러나 국내미술상의 구입이 자칫 이윤을 챙긴 뒤 외국에 빼돌리는 ‘문화재 유출’로 변질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교수는 또 대영박물관의 한국관 개설에 앞서 영국인들이 판단하는 ‘한국문화’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로써 국내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발족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문화의 재평가가 한국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부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국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이 심어지리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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