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들면 못놓는 모형 만들기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1.11.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동차 · 배 등 내부구조 알 수 있어 자녀교육에 도움… 값비싼 게 흠

자녀들이 전차나 비행기 등 모형 장난감을 조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또는 어느 가정집의 장식장에 보기 좋게 놓인 모형 자동차나 범선을 보면서 “나도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조금은 주책맞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근 성인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모형물 만들기, 이른바 ‘프라모델’(플라스틱 모델의 속칭)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관심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여 공동작품을 만들거나 프라모델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디오라마’에 심취하는 경우도 있다. 청소년의 전유물로만 여겨져온 모형물 만들기가 어른의 취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 합정동에서 사출공장을 경영하는 金亨泰씨(32)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모형 만들기만을 즐겨온 프라모델광이다. 김씨는 “바쁜 공장일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요즘에도 가끔 공장 한구석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새벽 1~2시까지 제작에 열중한다”고 밝힌다. 김씨가 그동안 수집해 만든 작품은 줄잡아 4백여개. 대개 1만원 안팎의 전차 전투기 등 전쟁무기가 대부분이지만 ‘로얄’이라는 이름의 범선과 ‘부가티’ 등 자통차 모형도 여러 종류가 잇다. 소장한 모형물 가운데는 10만원이 넘는 고가품도 있다.

프라모델과 디오라마는 도대체 무엇인가. 프라모델과 디오라마는 플라스틱 모형물과 정경 모형물을 각각 구분한 말이지만 모형물을 조립하거나 가공해서 만드는 점이 같아 흔히 프라모델로 불리기도 한다.

2천여 부품 조립해야 범선 1척 완성
프라모델은 주로 플라스틱을 재료로 해서 실물과 다름없이 정밀하게 만들어진 부품을 조립해 완성한다. 프라모델의 소재는 무수히 많지만 이제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것으로는 전차 전투기 항공모함 잠수함 등 ‘밀리터리’라고 불리는 전쟁무기의 축소모형과 각종 공상과학물 등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프라모델을 찾는 성인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클래식카 스포츠카 올드카 등 각종 자동차 시리즈와 범선 여객선 등의 선박 시리즈도 시판되고 있다. 프라모델은 대개 축소율이 작을수록 가격이 비싸고 구조도 복잡해질 뿐 아니라 부품 수도 많아진다. 예를 들면 제작이 가장 어렵다는 범선의 경우 배 1척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무려 2천여 가지에 이른다. 실물 크기의 9분의 1로 축소된 이탈리아제 포코라는 자동차는 시중 가격이 40만~50만원에 이르며 엔진의 경우 금속으로 된 피스톤 등을 조립해야 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제품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제 아무리 프라모델 경력이 많아도 진땀을 빼게 된다.

성인들이 프라모델에 재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축소율 96분의 1 크기의 범선을 꼬박 7개월 걸려 완성한 김형태씨는 “돛을 달기 위해 수백 가닥의 로프를 연결하거나 수백 가지 부품을 일일이 조립해야 하는 등 제작이 무척 어렵지만 매우 재미 있다”고 밝힌다.

사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도 프라모델을 즐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대개의 모형물이 겉모양에서 부품에 이르기까지 실물을 그대로 본뜬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빠지다 보면 자연히 자동차 구조나 선박의 구조를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프라모델 전문 취급점을 경영하는 金政郁씨(29)의 말이다.

프라모델과 비슷하지만 또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취미도 있다. 디오라마라는 이름의 정경 모형이 바로 그것이다. 영어의 ‘다이오라마’가 우리식 발음으로 굳어진 디오라마는 머릿속에 그려놓은 하나의 정경을 작은 모형물로 재현해놓은 것으로 프라모델과는 달리 일정한 상황을 설정하게 된다.

디오라마는 원래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진열해놓은 소형 야생동물 모형, 축소판 발전소 등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을 중심으로 일반인을 겨냥하여 상품화되면서 점차 취미거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크게 인기를 얻어 미국의 셰퍼드 페인과 같은 대가를 배출하고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온 가족 함께 즐길 수 있는 ‘디오라마’
디오라마 역시 프라모델과 마찬가지로 시가전이나 사막전을 벌이는 장면, 공군기지에서 비행기를 정비하는 장면 등 전쟁물이 많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이 분야도 차츰 변모하고 있다. 프라모델 생산 전문업체 (주)아카데미과학의 주최로 매년 열리는 디오라마 콘테스트도 출품작이 전쟁물 일색이던 과거와 달리 일반 가정의 생활 모습, 주차장 풍경을 다룬 작품 등으로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다. 아카데미과학의 김흥선 주임은 “콘테스트에는 치과의사 교사 등 성인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고 말한다.

프라모델이 사물의 구조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면 디오라마는 고향의 산, 기억에 남는 광경 등 머릿속에 그리는 정경을 마음 먹은 대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프라모델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상식을 얻거나 역사와 자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도 디오라마의 장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건물 양식, 인물의 복장은 물론 온갖 사물의 모양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우선 그 사물의 모양과 구조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모형만들기는 자녀교육에도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흥선 주임은 “자녀와 함께 작품을 만듦으로써 자녀들에게 사물에 대한 흥미도 일깨워줄 수 있으니 디오라마는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거리로 권장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관심있는 사람은 가까운 과학사를 찾거나 아카데미과학(908-7000~5)으로 연락하면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