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남산은 귀화 식물의 ‘식민지’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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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1백80종 번식 중… 토박이 식물 밀어내

의정부 · 동두천 · 포천 · 홍천 등 휴전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8~9월을 조심해야 한다. 간첩 때문이 아니라 꽃가루 때문이다. 미세한 먼지 같은 이 꽃가루는 알레르기성비염 · 결막염 · 기관지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꽃가루 속에 들어 있는 폴리펩티드가 문제의 출발점이다.

 다른 꽃가루보다 알레르기성 질병을 일으키는 효력이 천배쯤 더 강하다는 이 ‘강적’은 돼지풀에서 나온다. 얼핏 보아 쑥과 비슷한 이 한해살이 풀이 바람에 실어 보내는 꽃가루는 그 양이 워낙 많은 데다 입자 크기 또한 작아서 사방 2~3㎞까지 퍼진다. 그만큼 세력을 넓히는 속도가 빠르다. 마침내 지난달 환경처가 서울시에 돼지풀 뽑기 운동을 벌이자고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선 연구자들은 그 효과에 회의적이다.

 귀화 식물을 연구하는 金義植씨(한국식물 연구회 회장)는 “차라리 돼지풀을 뽑아 퇴비로 쓰라고 권장하는 운동을 벌이면 모를까, 하도 많아서 그냥 뽑아내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돼지풀은 이미 웬만한 길가나 개울가, 담장가, 철로변을 장악했다. 돼지풀을 코스모스로 착각한 주민이 재미로 심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돼지풀’이라는 이름은 그 생김새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원산인 미국의 이름 ‘hog weed’를 직역한 데서 생겨났다. 이 국화과 식물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인지, 최근 김정일은 ‘전국적으로 누데기풀을 다 없애야 하겠다’고 교시까지 내렸다. 누데기풀은 돼지풀의 북한식 이름이다. 경기 이북 사람들은 이 풀을 ‘양키풀’이라고 즐겨 부르는데, 이는 돼지풀이 50년대 미국 군수물자에 묻어 들어왔다는 데에서 유래한 듯하다.

도시의 빈터는 ‘귀화 식물의 예약석’
 요즘 들어 귀화 식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게 된 것은, 지난해 유해성 여부를 놓고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미국 자리공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그동안 소리 소문 없이 세력을 불려온 외국산 식물의 규모가 어느새 국내 자생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리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자연보존협회 李銀馥 전문위원은 “외국산 식물의 개체 수가 급증한 데다 최근 발견된 귀화 식물들의 번식력이 기존 귀화종보다 월등히 강하고 인체에  해로워 갑자기 관심을 끌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모든 귀화 식물은 외래 식물로 볼 수 있지만, 모든 외래 식물이 귀화 식물은 아니다. 채송화나 무궁화처럼 외국에서 들어왔어도 사람이 부러 관리해 주어야만 번식할 수 있는 것은 귀화 식물에 포함하지 않는다.

 환경연구원이 내린 귀화 식물의 정의는 이렇다. ‘우리나라 토착종이 아닌 것으로서 인위적 · 자연적 방법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야생 상태에서 스스로 번식하며 생존할 수 있는 종’.

 지금까지 밝혀진 국내의 귀화 식물은 1백80여 종을 헤아린다. 이 수치는 지난 3월 朴壽現씨(서울 인창고 교사)가 2년여 답사한 끝에 발표한 논문 <한국의 귀화 식물에 관한 연구>를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귀화 식물에 관한 연구가 걸음마 단계라는 점이 문제다.

 박씨에 따르면, 61년 귀화 식물 관련 논문이 처음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 보고서는 모두 20종을 넘지 못한다. 그나마도 일선 초중고 교사들이 혼자서 조사 · 연구해 제출한 단편적인 보고서가 대부분이다.

 귀화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시나 공사장의 빈터처럼 토박이 식물이 쫓겨난 황무지나 나지(裸地)를 ‘귀화 식물의 예약석’이라고 부른다. 식물 서식지가 파괴된 지역에 가장 먼저 진출하는 일종의 ‘선구 식물’인 셈이다. 따라서 귀화 식물의 많고 적음을 그 지역의 자연 파괴도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전의식씨는 “그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구밀도가 높은 곳일수록, 대도시일수록 귀화 식물의 분포도가 높았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결과를 토대로 ‘도시화 지수(UI : Urbanization Index)’를 고안했다 (UI=S/N ×100). 한국에 있는 귀화 식물의 총 종수(N)에 대한 해당 지방 귀화 식물 종수(S)의 백분율로 나타내는 이 지수는, 달리 말해 그 지역의 ‘자연 파괴도’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어느 지방의 귀화 식물이 총 72종이라고 한다면, 그곳의 도시화 지수는 40%(72/180×100=40)이다. 이로부터 자연이 꽤 파괴되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가장 많은 종이 발견되는 곳은 서울 지역이지만(50종 이상), 아직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도시화 지수를 산출하기는 곤란하다.

정밀 실태조사 시급
 환경연구원 서민환 연구원(환경생물과)은 “국내 자생종이 자라던 자리에 귀화 식물이 들어오면 자생종은 제대로 번식하지 못한다. 여러 번에 걸친 육종 · 교배를 통해 번식력이 강해진 귀화 식물과 경쟁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산이다. 서양등골나무이라는 신종 귀화 식물이 남산 팔각정 주변, 도서관 뒷담과 계단길, 장충동 도로변을 뒤덮었다. 이 침입자가 아니라면 애기나리 · 남산제비꽃 · 둥글레 · 맥문동 같은 토박이 풀이 자랄 자리이다. 9~10월부터 흰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서양등골나물은 다른 귀화 식물과 달리 소나무나 아카시아나무 그늘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어린 나무의 생장을 가로막을 염려가 있다.

이러한 추세로 나간다면 토박이 식물이 발을 붙일 공간은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늘어나는 외국과의 교역, 도시와에 따른 국토 개발, 더욱 현대화하는 산업 시설 …. 박수현씨는 “외래 식물의 귀화 시기를 3단계로 나눠볼 때, 귀화 식물의 절반 가까이가 3기(64년~현재)에 들어왔다. 원산지에서 직송되는 경우 못지 않게 일본을 거쳐 들어오는 사례가 많다는 특징도 최근의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내년까지 논문을 완성할 요량으로 1년 넘게 전국을 답사하고 있는 전의식씨는, 80년에 조사한 결과에 비교해 30~40종쯤 더 귀화 식물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귀화 식물을 발견할 때마다 그만큼 우리 산천이 황폐해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물론 모든 귀화 식물이 박멸해야 할 적은 아니다. 삼엽국화나 달맞이꽃처럼 자원 식물로 사랑받는 종류도 많다. 최근 환경처 · 임업연구원 · 한국자연보존협회가 시작한 귀화 식물 실태 조사는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환경연구원 고강석 환경생물과장은 “올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뒤 95년부터 전국 각 지역을 돌면서 귀화 식물의 종류 · 특성 · 분포 · 서식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金相顯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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