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선거풍토 “여성들을 잡아라”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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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표 몰아오는 극성조직원도 부녀자

 이번 총선을 준비하는 출마 후보자들 사이에 “여성들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오간다. 지난 기초ㆍ광역의회 선거에서 위력을 떨쳤던 ‘여성 바람??이 이번 총선에서는 더 거세게 불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여성의 위력이 가장 큰 곳으로 꼽히는 지역은 단연 서울 강남지역이다. 이곳의 한 현역의원은 “여자만 많고 남자는 볼 수 없는 곳이 강남이다. 여성을 잡지 않고서는 선거고 뭐고 치를 수 없는 지경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9월 남한강으로 당원 단합대회 겸 수련회를 다녀온 강남 모지역 민자당지구당의 경우, 참가인원 2백80명 가운데 2백50명이 여성이어서 “여성이 선거판을 지배하는 현실”을 유감없이 반영했다. 강남을구 출마설이 나도는 기업인 ㅇ씨의 부인이 이 지역 대학동창과 대규모 모임을 갖는다는 소문이 나돌아, 이곳 출마 희망자들이 한때 바짝 긴장했던 것도 그만큼 ‘여성파워??를 잘 알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강남 현상??을 “학력이 높고 경제력이 높은 지역일수록 집안일에 매달리지 않는 여유있는 전업주부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강남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여성들의 선거참여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 야당 현역의원은 “지난번 기초ㆍ광역의회에서 민자당의 승리는 여성들이 가져다 준 것이나 다름없다. 조직원으로, 홍보요원으로 대거 등장한 40~50대 여성 운동원들이 야유회나 관광 등으로 여성들을 끌어들여 여당에 표를 안겨준 것이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지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여권의 기간 선거조직으로 활용되는 통반장 비율을 보면 여성들의 선거운동 참여율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90년 말 현재 서울시 전체의 통장 1만5천1백95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전체의 17.3%인 2천6백33명. 아직은 남성비율이 훨씬 높지만 예전에 비해 여성통장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행정단위의 가장 기초조직인 반장의 경우 서울시에서는 이미 여성이 과반수를 넘어섰다. 서울시의 반장 11만6천5백명 가운데 60%가 여성으로 채워져 있다.

민자당 ‘밤줍기 대회??참가자 90%가 여성
 여기에 각 지역마다 조지4된 부녀회 새마을 여성회 경로회 새마음봉사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준여권 조직을 움직이는 세력이 대부분 여성들이다. 야권에서는 최근 향응, 선심관광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통반 단위의 집단관광이 대부분 여성 통반장과 이들 여성 조직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0월 초 서울 모지역 민자당 지구당이 1천5백여명을 동원한 ‘밤줍기 대회??, 3천여명을 동원한 ??무공해 논 메뚜기 잡기??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90%가 여성이었고, 이들을 동원한 조직도 여성조직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성조직을 통한 대 여성 ‘선심공세??는 야권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지난 9~10월 국회회기 동안 이른바 ??국회 집단견학??이 극성을 부려 국회를 드나드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 국회 견학단들도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지나달 16일 오전 11시께 국회를 견학하던 ㄱ동 부녀회 회원 50여명은 “국회견학 후 63빌딩 관광과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라며 즐거워 했다. 이들을 국회로 초청한 사람은 서울에 지역구를 가진 야당의원이었다.

 이렇듯 선거를 앞둔 여성동원이 성행하면서 각 지역 정당 사무실에는 “아파트 부녀회표를 몰아주겠다” “우리 친목계만 해도 50표는 넘는다”며 자신이 거느린 조직을 과시하는, 이른바 여성 ‘선거 브로커??들이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광역의회 선거 당시 서울 ㅈ구에서 사무장으로 뛰었던 ㅁ씨는 “기초ㆍ광역선거에서 무명의 후보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여성 홍보요원들을 집중적으로 기용하면서 여성들의 선거참여가 늘어났다. 이번 총선 때 일당 좀 톡톡히 벌어야겠다는 여성들이 벌써부터 찾아온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활발한 정치마당 참여와 정치인들의 여성표 공세는 “여성들이 사회 다원화와 개방화추세로 자신의 표를 자신의 판단대로 행사하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그 결과 정치인들도 여성표를 소홀히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일면 긍정적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여성세력이 오히려 금권과 타락선거가 가장 잘 먹혀드는 ‘취약한 고리??가 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金東吉 전 연세대 교수는 여성들이 금권에 취약한 이유를 “여성들이 워낙 오랜 시간 동안 정치활동에서 소외됐던 만큼 방향감각 정치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모처럼 폭발하는 여성의 에너지가 정치인의 금권정치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방향만 잘 잡으면 한국 정치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한편 일부 지역구에서는 선거에 임박한 “향응ㆍ관광ㆍ표”의 원시적 형태를 떠나, 그 지역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간접적으로 정치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세련된 새 전략을  구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8일 강남 서초구 서초동 건축사회관에서는 ‘제1회 서초주부가요제??가 열렸다. 서초동 주부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가요제에는 예심에 1백11명이 지원했고, 본선에만도 15명이 진출해 기성가수 못지 않은 노래 솜씨를 겨뤘다. 6백여명에 이르는 청중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만 빼놓으면 그저 평범한 동네 노래자랑으로 보일 만한 행사였다.

실용문화 강좌 등 달라진 선거전략
 그러나 대상을 수여하는 자리에는 이 지역 현역의원인 金德龍씨가 나타났다. 이 가요제를 주최한 서초문화원 이사장 자격으로서였다. 정치적인 인사말 한마디 안했지만 모처럼의 가요제를 즐긴 6백여명의 동네 주부들과 자연스레 수인사를 나눈 것이다. 이틀 뒤인 30일 서초문화원은 이 지역 주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자녀 진학문제를 겨냥, “대학에서 만납시다”라는 대학입시 학부모를 위한 공개설명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민중당 이재오 사무총장(은평을 지구당)도 여성표 관리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3월 결성된 여성조직 ‘은맥회??산하 여성교실은 지역여성들에게 노래마당 꽃꽃이 뜨개질 지점토 홈패션 등 실용문화 강좌를 하고 있는데, 6개월 만에 1천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이 여성교실의 가장 특이한 프로그램은 이 지역 여건을 감안한 한글교실이다. 여성교실 대표 유제향 씨는 “처음 개설할 때만 해도 요즈음 교육수준이 높은 만큼 노인층이 대부분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주부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지역여성 교육기관이나 자녀교육상담ㆍ법률상담 등을 대행하는 여성상담소를 운영하는 여야 의원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선거철을 맞아 이런 기관을 새로이 만들려고 하는 정치지망생들도 많다. 물론 이런 움직임을 ‘세련된 형태의 또다른 사전선거운동??으로 보는 정치권 일각의 따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검찰도 최근 주부 상대 강좌가 사전선거운동의 일환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여성정치연구소 孫鳳淑 소장(정치학 박사)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가가 채 하지 못하는 평생교육의 기회를 여성들에게 제공하고 여성 사회화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표를 얻으려는 것은 단순한 향응이나 매표로 여성표를 공략하는 구태에 비한다면 훨씬 바람직한 변화로 볼 수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최근 자기 표에 대한 여성들의 완전한 권리 행사는 ‘남자는 두 표??라는 과거의 선거전략에 완전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또 선거조직에의 왕성한 참여도 ??정치판은 남자판??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문화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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