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KN 아직도 치외법권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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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F채널 반환해도 안방침투 여전할듯…방송협회 가입시켜야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배가 영해를 침범해했다고 해서 연안국으로 끌려가는 예가 종종 있다. 땅에 국경선이 있듯 바다에도 경계선이 그러져 있음을 실감케 하는 일이다. 공중에서 오가는 전파도 국가의 재산이라는 점에서는 이와 다를 게 없다. 이런 뜻에서 지난달 18일 한ㆍ미 양국이 이룩한 ‘AFKN-TV채널 반환??합의는 ??전파재산의 회수??차원에서 뜻깊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은 이 합의 덕택에 해외주둔 미군에 VHF주파수를 제공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을 씻게 됐다. 그러나 실속을 차리지 못한 채 명분위주로 흐르고 말았다는 비판도 강도 높게 일고 있다.

자주권 확보에는 훨씬 못미쳐
 합의각서는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의 한정된 전파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주한미군이 사용중인 서울지역 AFKN-TV 채널을 한국측에 반환키로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오른쪽 박스 참조).

 방송학자들은 이 합의각서가 ‘전파관리의 자주권 확보??라는 선언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문제점들을 보완하기엔 미흡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미군방송이 여전히 국내방송법 적용을 받지 않는 치외법권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학교 元佑鉉교수(신문방송학)는 “AFKN-TV가 운영관리측면에서는 방송협회의 특별회원으로 가입하여 국내방송사와 같은 의무를 지고, 프로그램의 내용면에서는 국내방송과 같은 수준의 TA의 절차를 받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6ㆍ25전쟁을 치른 후 57년 첫 TV방송을 시작한 AFKN-TV는 모든 법적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 채 한반도 상공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통관검사도 면역주사도 안 받는 무차별 메시지??를 내보내왔다. 우리처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서독에서는 미군방송이 두 나라 간의 협정에 따라 서독방송공영기구의 직접규제를 받고 있다.

 둘째 ‘주파수 변경이 전파차단과는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합의각서에 의하면 채널반환 작업이 끝나는 92년말부터 AFKN은 현행 VHF채널 2를 우리에게 돌려주고 대신 UHF채널 34로 옮겨간다고 되어 있다. 얼핏 앞으로 일반 가정에서는 미군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대 康賢斗 교수(신문학과)는 “전파차단은 속임수일 뿐이다. 라디오를 AM에서 FM으로 바꾸거나 텔레비전을 흑백에서 컬러로 바꾸는 정도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삼성전자 연구실 전파담당 홍준기 과장도 “오래전부터 국내 거의 모든 텔레비전에는 VHF와 UHF 아테나가 모두 장치되게끔 만들어지고 있어 전파차단 효과가 없다”고 설명한다.

 VHF는 주파수가 30~300 MHz, UHF는 주파수가 300~3,000MHz이다. 전파는 그 성질상 주파수가 높을수록 장애물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주파수가 낮은 VHF가 장애물로부터 영향을 덜 받고 전파의 도달거리가 넓어 원거리 방송에 유리하며 저출력으로도 양질의 화면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VHF대의 채널은 어느 나라나 자기네 방송채널로 확보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전용으로 활용되는 것은 7개 채널(2,4,6,7,9,11,13)이다. 이중 채널 2는 주파수 편성상 방송이 가능한 마지막 채널이다(4는 군작전용 통신)

 UHF채널이 하필이면 ‘34냐??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송재극씨(전 KBS기술국장)는 “수도권의 UHF채널 상황으로 보아 AFKN-TV는 채널 25로 가고 채널 34는 KBS-1TV로 할당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공영방송의 기반을 우선 고려한 후에 여타 민방용 채널을 할당해야 하는데 방송정책 부재 탓으로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체신부 전파관리국 徐錫珍씨는 “인근 지역의 혼신을 막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답변한다.

 이같은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AFKN-TV가 시청자로부터 완전히 사라져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송학자들은 그동안 공정보도와 다원주의 문화를 전달하는 통로로서, 특히 ‘영어학습의 지름길??로서 AFKN-TV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언론통제가 극심했던 제 5공화국 시절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는 기능을 한 것은 국내 방송이 아닌 미군방송이었다. 사실 AFKN-TV는 57년 방송을 개시한 이후 77년에 컬러 방송, 83년에 위성 방송 등 국내 TV보다는 늘 한발 앞서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여과없이 방영된 일부 프로그램의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장면이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위락용 방송??임을 감안해야
 그러나 ‘저질문화 시비??의 화살을 주한미군방송에만 돌릴 사항인가에 대해서 방송학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金寓龍교수(신문학과장)는 “미군방송은 본질적으로 위락용”이라고 설명한다. 서울용산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는 미군방송국 한국지소 게리 엘 몰리 부대장 역시 “프로그램의 95%가 AFRTS(미군 라디오 텔레비전 서비스)에서 제작되어 위성통신을 통해 수신되고, 한국에서는 국내뉴스만 만든다”고 한다. AFRTS는 전세계 15개국에 있는 미군주둔지역의 군사방송을 총괄하는 본부로서 주로 미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을 골라 주둔지역의 시간대에 맞춰 재편성해 보내주고 있다. 따라서 AFKN-TV는 오락적 기능이 최대한 증폭된 특이한 방송인 셈이다. 김교수는 “저질문화 침투를 논할 게 아니라 AFKN을 원하는 사람에게만 보게 하는 유선방송으로 유도했어야 했다”고 지적하면서 터키 그리스 일본 등의 미군방송은 이미 케이블을 통한 제한방송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채널 환수는 서울지역에만 국한된 것으로 대전 회덕 광주 대구 부산 진해 등 6개 지역에서는 여전히 VHF채널이 사용되며 언제 주파수를 바꿀지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각서의 토대가 된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는 ‘전기 통신의 모든 문제는 두 나라 정부의 약정에 따라 최대의 조정과 협력 정신으로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제 3조2항의 나)??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합의각서가 과연 최대의 조정과 협력 정신으로 만들어졌는지 방송학자들은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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