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지옥 200시간
  • 정리.김 당 기자 ()
  • 승인 1994.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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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신고한 이선영씨(가명) 독점 인터뷰

9월22일 성남의 한 호텔에서 <시사저널> 취재반은 이른바 지존파의 '살인 공장'에서 막 빠져나온 여자를 기다렸다. 어렵게 인터뷰 약속을 받아냈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도 반신반의했다. 약속 시간이 조금 넘어 검정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이선영씨(가명)가 들어왔다. 그는 목격자이며 피해자이며 증인이며, 또 용의자이며 신고자였다. 그가 나타난 것은 자의반 타의반이었다. 타의란 물론 <시사저널>의 부탁이다. 그가 말한 대로 실어줄 것을 약속하고, 중요한 것은 서로를 믿는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그는 좀처럼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막상 말문이 트이자 그는 놀라우리만큼 정확한 기억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여느 사람 같으면 숨겨도 될 것까지,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가쁜 숨을 죽이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2백시간 동안 겪은 악몽

을 5시간 동안(원고지 5백장 분량) 털어놓았다. 죽음의 늪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이 내용들은 그뒤로 계속된 현장검증과 수사발표에서 다 사실로 밝혀지고 연일 언론 보도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그것은 또 주먹구구식 경찰수사를 반증하는 것이었다. 그는 살인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될 찰나에 백화점 고객 1천2백여명의 '예약자'와 러브 호텔 투숙객과 오렌지족이라는 불특정 다수를 구한 셈이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그들의 1차 목표는 경찰'이었다. 다행히 경찰은 한명도 희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번도 검문검색을 안한 탓이기도 했다. 신고 이후 그가 겪은 불안감은 "차라리 육체적으로는 '그 집'이 더 편했다"라는 그의 말 속에서 드러난다. 그는 언론이 지존파 일당에게 몰아붙인 증오의 언사를 구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사람을 안믿겠다고 했다. 그것은 이 사회를 안믿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의 고백을 육성대로 중계한다. <편집자>


 나(이선영.27.가명)는 그날 몸이 아파 혼자서 자취방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같은 업소(서울 역삼동ㅍ카페)에서 밴드 마스터로 일하는 이종원씨 (36)가 전화를 했다.

 "몸은 좀 어떠냐. 일 끝나고 새벽 3시에 양평 양수리에서 효진이 (ㅍ카페 동료)와 만나기로 했는데 강  바람 좀 쐬고 오자." 나는 내키지 않았으나 따라 나섰다.

 약속 장소에서 시간을 보니 새벽 3시23분이었다. 효진이가 오지 않은 것 같아 우리는 강 바람이나 쐬고 가려고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흰색 르망 승용차가 앞을 가로막았다. 불과 몇 미터 간격이었고 뒤에는 어느새 타이탄 트럭이 막고 있어 차를 뺄 수도, 돌릴 수도 없었다. 우리가 당황해 있는데 청년 2명이 열린 창문 안으로 가스총을 쐈다. 그들 중 한 명은 종원씨 얼굴을 때렸고 한 명은 내 옆구리에 칼을 들이대고 눈을 가렸다.

"우리는 언제 죽여요?"
 잠시후 손발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내가 먼저 타이탄으로 옮겨졌다. 이어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만져보니 종원씨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청색 덮개가 씌워진 현대 포터였는데, 그들은 우리를 짐칸의 맨 안쪽에 밀어넣고 종이 박스로 위장했다. 그 안에서 2명이 감시했다. 맨 앞에서 그랜저(종원씨 차)가 선도했는데 우리를 감시하는 청년과 무전 교신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앞에 검문소가 있다. 조심해라. 걔는 잘처리했냐?" "형, 걱정없어." "기절시켜 놔." 이런 소리가 들리곤 했다. 가는 도중 나는 종원씨 허벅지가 칼에 찔린 것을 알았다. 또 세 번쯤 지지직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자쇼크봉으로 종원씨를 기절시키는 소리였다. 얼마를 달렸는지 모르겠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거쳐 비포장도로로 나온 것 같았다. 밖을 볼 수 없어 도착 지점이나 시간은 알 수 없었다. 눈이 가려진 채로 우리는 지하실로 업혀 갔다. 눈을 뜨니 철창이 보였다. 한쪽 구석에 총.칼.전자봉 같은 텔레비전에서나 본 무기들이 보였다.

 범인 중 1명이 종원씨를 먼저 심문했다. ‘뭐하는 사람이냐, 여자랑 언제부터 사귀었느냐, 왜 거기를 갔느냐, 돈은 얼마나 있느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에서 따로 심문 받았다. 한 명은 칼을 들고, 다른 한 명은 노트에 적으면서 인적사항, 남자와의 관계를 꼬치꼬치 물었다. 우린 숨길 것도 가진 것도 없었다. 한 시간도 체 안돼 그들은 우리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족쳐 봐야 돈 나올 것 같지 않다. 어차피 재수 없어 걸린 거고 우리도 재수 없게 얘들은 잡았으니 빨리 처리하자.”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야, 포기하자”하더니 한 명만 남고 모두 1층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지하실에서는 전혀 밖이 보이지 않았으나 저녁때쯤인 것 같았다. 한 명이 라면을 끓여 와 먹으라고 했다. 안 먹고 있으니 가지 않고 지켜보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했다. 단순 강도면 그 자리에서 지갑만 빼앗지 여기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종원씨한테도 부탁했었다. 내가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 그런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라고.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그는 문상록(23)이라는 남자였다.

"언제 죽여요?"
"그것 때문에 지금 의논중입니다. "
"부탁인데, 같이 죽여 주세요."
"아마, 그렇게는 안할 겁니다. "
"나한테 용건 있어요?"
"한번 할려고 왔다. "
"그러면 하고 가세요."

 그 남자가 나가고 김현양(22)이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두 분이 안됐다. 살려고 노력하십시요" 했다. 그냥 하기가 뭐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들 다섯은 나한테 얘기를 많이 붙였다. 나는 내가 살려고 해도 살려 줄 것 같지 않은데 뭐하러 그러느냐고 했고, 그들은 여기 잡혀온 사람치고 죽을 때 하는 말이 다들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했는데 아가씨는 참 이상한 여자라고 했다. 그들은 또 돈 있는 사모님 고통 주면서 죽이는 게 자기들 낙인데, 두 사람은 운이 나쁘다고 했다. 거기서 그렇게 첫날 밤을 지샜다.   새벽인지 아침인지, 현양이 다시 내려왔다. 나는 다시 "언제 죽여요?" 하고 물었다. 그는 "내일쯤 될 것 같다. 선영씨는 좀 있어야 될 겁니다" 했다. 그는 또 "칼자루는 내게 있으니 선영씨는 죽여도 내가 죽일 겁니다" 이랬다. 그는 사람 죽인 얘기를 다 해주었다. 회도 뜨고, 토막내서 죽이기도 했다고 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지만 나는 그냥 웃었다. 그는 어떤 여자는 고통스럽게 어떤 여자는 인간적으로 죽였다면서, 자기는 회를 떠서 먹기도 했다고 했다. 나는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그러마고 약속했다.

"경찰 죽이는 것이 소원이다"

 사흘째 되는 날, 그날 따라 그들은 분주해 보였다. "몇시부터 시작할까, 여자는 어떡하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끼리 얘기를 하는데 여자랑 같이 죽이면 증거가 많이 남는다. 남자는 음주 사고로 처리하고, 여자는 실종 처리하면 된다. 여자는 나중에 토막내 소각 실험하자'. 이런 식으로 의견이 모아진 듯했다.   그들은 나한테 "남자가 네 손에 죽고 싶다는데 어떡할래" 물었다. 난 못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사람 죽는 것 못보았을 테니 나와서 보라"고 했다. "12시부터 시작하자"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은 가 보니 검정 비닐봉지를 네 겹으로 싸서는 내게 들고 있으라고 주었다. 강제로 소주를 먹인 종원씨 눈은 초점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내게 비닐을 씌우게 했다. 내가 못하겠다고 울면서 비닐을 떨어뜨리자 누군가 '너 죽고 싶어, 울면 너도 회 떠버려" 했다. 그러자 현양이 "이러면 죽습니다. 흉내만 내십시요" 했다. 나는 울면서 비닐봉지가 씌워진 종원씨의 입에 손을 댔다. 순간 내 손에 그의 숨결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서 손을 때자 누군가 "저 년도 같이 회쳐 버려" 했다. 현양이 "잘하고 있잖아" 하면서 다시 내 손을 종원씨 입에다 갖다 댔다. 내가 겁에 질러 고개를 돌린 채 입에 손만 대고 있자 현양은 내 손을 치우며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종원씨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했다. 세번이고 네번이고 살았는지 확인을 했다. 나는 속으로 제발 살아 있기만을 기도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종원씨는 그때 죽은 척하고 있었다. 이들의 리더인 강동은 (21)은 그날 종원씨를 죽이기 전에 음주 운전 사고로 위장할 만한 장소를 사전 답사해 두었다. 그러나 의견이 엇갈렸다. 자기들끼리 "양수리로 가자, 성남에서 술 먹고 전라도까지 와서 죽은 것은 이상하지 않냐" '뭘 귀찮게 거기까지 가냐. 며칠 찾다가 말텐데. 매스컴에서 때려줄 사람도 아닌데" 하기도 했다. 그런데 종원씨를 침낭에 담아 포터에 싣고 가 그랜저에 옮겨 싣는 과정에서 꿈틀거렸던 모양이다. 그들은 장수군 수분재 (나한테는 무주 구천동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근처에서 종원씨를 유기하고 돌아와서 '거봐 임마, 확인 안했으면 큰일날 뻔했잖아' 했다. 현양에게 물어보니 살아 있길래 전자충격봉으로 확인해 차를 굴리고 왔다고 했다.

 나는 차가 어떻게 굴렀는지, 낭떠러지가 몇 미터나 되는지도 물었다. 그래도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들은 또 위장 처리하고 돌아오는 국도상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경찰이 차를 세우길래 여차하면 한판 붙으려고 섰는데, 경광봉을 좀 들고 흔들어 달라기에 흔들어 줬더니 나중에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어느날 (9월13일) 자기들끼리 서울을 가야 하는데 내 문제가 남아 있었다(그날 범행을 앞두고 날 어떻게 할지 의견이 엇갈렸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그들은 지하실에 있는 나를 세번쯤 찾았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저 애 또라이 같다, 맛이 간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태연할 수 있냐, 어떻게 하지'하는 말도 들렸다. 상록이라는 애는 처음부터 날 싫어했다. 상록은 "어차피 둬 봐야 시한폭탄이다. 죽이고 가자"라고 했고, 현양은 "우리는 어차피 같이 죽기로 했다. 오늘 수원가는데 죽여 봐야 시간도 많이 걸리니 모험을 걸자. 어차피 죽을 여자고 실종 명단이 나오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다"고 막았다. (이 둘은 내 문제로 다음날 맥주병을 들고 싸우다 현양의 머리가 찢어지기도 했다).

 어쨌건 나는 살았고 그래서 그날 일당 5명은 내 눈을 가린 채 르망 조수석에 태워 모자를 깊이 눌러쓰게 하고 성남으로 갔다. 그들은 가면서도 나에게 '탈출하고 싶으면 해라, 우리는 파출소도 습격할 계획이고 경찰 죽이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면서 일부러 검문소나 파출소 앞을 지나치기도 했다. 뒷자리에는 두 명이 탔는데 모두 칼을 차 바닥에 숨기고서, 경찰이 잡으면 언제든지 찌를 수 있게 해두었다.

 어느 당구장 앞에서 차를 세운 채 자기들 끼리 얘기하는데 "공원 묘지 가서 얘기합시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말 얘기하러 가는 줄 알았지 그렇게(그랜저 사냥) 하러 갈 줄은 몰랐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그랜저가 한 대 보이자 무전으로 얘기하는 게 "사냥감이 있다. 회쳐 버립시다. 한번 합시다." 딱 그 몇 마디였다. 그러고서 한 명이 내려 확인한 뒤 "경남 넘버인데 3천인 것 같다. 돈 좀 있을 것 같은데" 했다. 그들은 트렁크에서 가스총을 꺼내 벌초하는 두 사람(소윤오.박미자씨 부부)에게 올라갔다. 나는 차 옆에서 기다리게 했다.

 언덕에서 말 소리가 들렸다. "저 차가 아저씨 찹니까?" 남자가 그렇다고 하자 이번에는 "펑크가 났네요" 했다. 그러자 벌초하는 남자가 서서 언덕 밑을 보며 "펑크가 왜 납니까" 하는 순간 그들은 남자의 얼굴에 가스총을 쏘았다. 순간 남자가 얼굴을 잡고 언덕 밑으로 피하는 모습이 보였고 "여보, 피해" 하는 화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씨 부부를 납치해 밤 12시쯤 영광에 도착했다. 그들은 같은 방법으로 부부를 심문했

다. 소윤오씨는 무척 부인을 아끼는 듯했다. 자기는 괜찮지만 아내는 기관지천식 환자인데 이틀 안에 병원 안가면 죽는다, 돈은 다 줄테니 피해를 주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태연하게 "우리가 원하는 건 돈이지 사람 목숨이 아닙니다. 1억만 주십시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소씨가 8천만원을 얘기한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8천밖에 안 나올 것 같아, 8천이라도 뜯어내자' 하는 말이 들렸다. 그들은 심문이 순조롭게 진행

된 듯, 돈 가져오는 방법을 소씨에게 지시했다. 내용은 회사로 전화를 해서 아저씨가 산소 갔다가 음주 운전하고 오다가 사람을 치었다. 젊은이들인데 8천만원을 주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한다. 광주로 8천만원 가져오면 해결하고 3일 안에 돌아가겠다, 이런 거였다.

 다음날 아침 그들은 소씨를 태우고 사전답사차 광주를 다녀온 듯했다. 다녀와서는 "회사측과 통화했어, 약속 시간에 맞춰 가면 돼"라고 했다. 나는 그날 다이너마이트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무기 챙기고 다이너마이트 꺼내 와라" 그러더니 마루에 열 몇 개쯤을 펼쳐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용법을 잘 모르는 듯했다. 소씨가 옆에서 연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4시쯤엔가 나를 르망 조수석에, 소씨를 뒷자리 가운데 앉히고 두 명이 양옆에서 감시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차 안에 연기가 가득찼다. 뒤에서 한 명이 "나 손 나갔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양이 좌석 밑에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점검하다 뇌관이 터진 모양이었다. 근처에는 농가도 있었고 아주머니들 몇 명이 있었으나 무슨 일인지 물끄러

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준비를 다시해 갔다. 계획을 바꿔 부상한 현양은 남아서 소씨

부인을 지키기로 했다. 약속 장소가 육교 근처였는데 광주에서는 우리를 본 목격자가 꽤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차 안에서 돈을 가져오기로 한 소씨 회사 직원 (심성수 부장)을 기다리는 동안 강동은은 "여기서 죽으면 다같이 죽게 되겠지만 살아나가면 폭로하십시요" 했다. 그

래서 "나도 살 가망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문상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존(김기환.26)이 그랬지, 여자 믿지 말라고. 난 이런 것 정말 맘에 안들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칼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동은은 내

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탈출하게 되면 이 전화번호 갖고서 신고하라"고 했다. 나는 그냥 "알았어요" 했는데 강은 진짜로 전화번호를 적어서 내 지갑 안에 넣어줬다.

 아내를 사랑했던지 소씨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러나 돈을 건네받으면서 피랍 사실을 알린 모양이었다. 물론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았지만. 8천만원을 받아 집에 도착하자 현양은 마루에 다이너마이트.

부탄가스통.칼 들을 옆에 두고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 경찰이 오면 그걸 켤려고 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도착하자 소씨 부인은 현양의 어깨를 두들기며 "거봐, 우리 아저씨는 거짓말할 사람 아니라고 했잖아" 했다. 소씨 부부는 서로 안고 얘들이 살려준다고 했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그날 두 사람은 술을 먹여 죽이게 돼 있었다. 다만 거금을 쥔 성취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날 맥주며 양주를 많이 마신 탓인지 다소 의견이 엇갈린 듯했다. 한때 살려주자는 의견이 반반까지 갔으나 상록이 "난 이런 거 맘에 안드니 내려보내"라고 못박았다. 그러자 동생 둘(백병옥과 강문섭)이 "두 분이서 내려가 주무십시요, 내일이면 아파트 앞에 가 있을 겁니다" 하면서 부부를 지하로 내려보냈다.

 다섯 명이 마루에서 술을 마시는데, 나도 죽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나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두 사람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아침이 되자 현양은 "오늘 일이 있으니 준비하십시요" 했다. 그들은 부부에게 술을 먹이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갔다. "남자는 총으로, 여자는 칼로 죽여. 누가 먼저 죽는지 내기하자"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올라와 "형, 뻗었어"라고 하자 "준비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칼.도마.도끼 같은 것을 담아서 지하로 내려가면서 나더러 들어오라고 했다. 나에게는 공기총을 주었다. 소씨 부인은 옷이 벗겨져 있었다.

 현양이 총을 달라고 해 주었다. 현양은 남자를, 문섭은 여자를 맡게 돼 있었다. 현양은 약한 모습 보이면 안된다, 여기서 모든 게 끝난다고 말했다. 문 밖에선 세 명이 소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양은 내 오른손을 내밀라고 하더니 내 손을 방아쇠를 당기는 모양으로 만들었다. 나는 쓴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총이 내 손이 닿자마자 탕 ! 하는 소리가 났다. 내가 악! 하고 소리치며 뛰쳐나오니 현양이 괜찮다며 "선영씨 잘했으니 이제 쳐다만 보세요"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내일 다시 먹을테니 냉장고에 넣어두라"
 두 시체를 해체하는 작업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 다라이가 들어갔다. 내가 고개를 외면한 채 벌벌 떨고 있으니 한 명이 칼을 대며 "쳐다봐, 안보면 너도 똑같이 죽인다" 하며 머리채를 끌고 들어갔다. 현양이 먼저 칼로 소씨의 팔을 내리쳤으나 잘 안되자 이번 에는 도끼로, 그래도 안되자 해부용 칼로 살을 잘라 벌어지게 했다. 그렇게 해서 도끼로 내려치곤 했다. 그 옆에서 문섭도 똑같은 방법으로 여자를 해체했다. 그렇게 해서 팔.다리를 모두 고무 다라이에 담게 했다. 지하실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걸 지켜보는 그들의 표정은 다들 초점이 없이 희죽회죽 웃는 모습이었다. 인육을 먹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현양은 내게 배신한 동생 (송봉우.18)을 죽일 때 지존이 시켜 처음으로 울면서 인육을 먹었다고 말했었다. 현양은 여자의 한쪽 가슴을 잘라서 "사람 고기 한번도 안먹어봤죠? 맛있어요" 하며 내 앞에 내밀었다. 그의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살점을 검정 비닐에 싸더니 동생들에게 "내일 다시 먹을 테니 냉장고에 넣어두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시체가 잘 안타 밤새 애를 먹었다. 동생들이 불이 자꾸 꺼진다고 하자, 강동은은 그러면 내일 연통을 새로 사다가 하자고 했다. 그날은 현양이 다친 손을 치료하러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내가 따라가도 되냐고 묻자 현양은 선뜻 "그러세요" 했다. 그러면서 현양은 어젯밤 일은 잊어버리라고 하면서, 오늘 1

차로 병원 가고 2차는 겨울 이불 사고 3차는 노래방 간다고 스케줄을 일러주었다. 난 나대로 탈출 계획을 생각했다.

 병원 가는 길에도 현양은 전에도 그랬듯 '탈출하고 싶으면 말해라, 그러면 칼을 줄테니 내 목에 칼을 꽂고 가라. 나는 형제들을 배반 못한다. 그러니 나를 죽이고 가라'는 식의 말을 되풀이했다. 영광 기독병원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거의 모든 아줌마들이 현양과 아는 체를 했고 현양은 이들에게 "교통사고로 다쳐서 왔다"고 했다.

 나는 현양이라는 이름을 부르면 탈출한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런데 현양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도 그가 일어나서 나를 한번 흘끔 보고는 진찰실로 들어갔다. 순간 나를 시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천천히 입구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현관을 벗어나자마자 병원 밖으로 뛰쳐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그러고는 그날 밤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함께 서초경찰서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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