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타협 해야 한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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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의원 의식성향 / 이념은‘중도 보수' 의회주의 입장 견지…시민의 정치참여엔 부정적

 “도대체 국회는 왜 존재하는가." 13대 국회만큼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은 국회도 드물다. 이런 질타의 목소리는 지난해 여름 야당의원 전원이 여당의 법안 날치기 통과에 항의, 사퇴서를 제출하고 국회를 비운 1백28일 동안 끊임없이 나왔다. 의원민주주의의 가능성에 의원들 스스로가 절망적인 몸짓을 보였기 때문이다. 금년 5월 강경대군 장례식 때 야당 국회의원 대부분이 거리로 몰려나왔을 때도 역시 꼭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의사봉을 감춰놓고 법안통과를 강행하고, 여기에 고함과 욕설로 맞서다 육탄전과 격투기까지 불사하는가 하면 뇌물외유와 수서특혜 관련 비리로 줄줄이 연루돼 급기야‘국회무용론??과 정치인 혐오증을 불러일으킨 13대 선량들. 과연 이들은 의회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와 자유, 정당의 기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국회의원 평점과 함께 실시했던 '국회의원 의식구조 조사'를 통해 한 나라 정치와 정책방향의 가늠자인 선량들의 의식구조를 짐작해 본다.

 정치는‘최적의 합의점을 찾는 일종의 예술'로 일컬어진다. 의원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은 매우 이상적인 것으로 나타났다.??정치는 원대한 이상이나 장기적 계획보다는 단기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찬성한 응답자는 23.8%에 불과했다. 10명 중 여덟 명에 가까운 의원들이 단기적인 문제를 놓고 합의점을 도출하는 정치의 '실용성' 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예술성' 쪽에 비중을 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갈등이나 대립을 조정하고 해결하도록 끊임없이 요구당하는 게 정치현실이다. 다행히도 상당수 의원들은 정치적 갈등의 해결방식인 타협에 대해 상당히‘열린의식'을 보였다. '타협은 곧 자기편을 배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스러운 행위'라는 항목에 95.9%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물론 의식의 반영에 불과한 이 응답결과가 허구일 수도 있고, 현실상황에서 반드시 반영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절차적 원리 중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타협과 협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은 대립과 반목, 그리고 강행과 파행이 없어질 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매우 희망적인 징후이다.

 이런 조짐은 올 국정감사에서 민자당의 증인 불출석 방침에 맞서 민주당이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장시간 숙의를 거듭한 민주당 의총 결과 당론은 남은 국정검사 일정을 거부하는 쪽으로 매듭지어졌지만, 일단 국정감사에는 참여하면서 대응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민주당 한 고위당직자는 이에 대해“따가운 국민여론을 감안, 극한처방과 대응은 피해야 한다는 의식이 의원들 사이에 팽배해진 건 사실??이라며 의원들의 의식변화를 인정했다.

 정치적 논쟁을 하는 데 있어서도 좌나 우의 이념적 편향성보다는 중간에 위치하는 성향이 압도적(“극단적인 입장 피해야??89.3%)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결과는 13대 의원들이 이념적 차원에서 중도 보수성향이라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현실적으로 국회 내에서 이뤄지는 극한 대립과 날치기 형태와는 구분되는 별개의 이념적 차원의 특성이다.

“정당이  정치적 갈등 심화시킨다??
 급속한 산업화과정을 짧은 시간에 거쳐온 우리 사회는 빈과 부, 중산층과 서민, 자본가와 노동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기성세대와 젊은이, 도시와 농촌 등 계층간·세대간의 심각한 갈등으로 진통하고 있다. 이런 갈등을 파악하는 의원들의 관점은 어떠한가. 응답 의원들은“한 계층이나 개인의 이득은 곧 다른 계층의 손해??라는 관점에 44%가 동의하는가 하면,??사회적 분열과 충돌은 오히려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사회갈등론적 시각에 47.9%가 동의했다. 이는 응답자들의 절반 정도가 사회적 이해관계를 상호보완성보다는 제로섬(Zero Sum) 게임으로 파악하는 한편, 그러한 갈등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의원들은 시민의 시민권 내지 참정권에 대해 그다지 관대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일반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킬 법률의 제정을 위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권리??에 69.1%만이 찬성하고, 나머지 30.9%가 반대했다. 3분의 2 정도의 찬성비율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1은 법률제정을 의원 고유 권한으로 여기며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반의회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정책에 평범한 일반시민의 강력한 영향력 행사는 무리??라는 데 57.7%의 응답자가 동의한 데서도 확인된다. 비단 법률 제정에서뿐만 아니라 정책형성에서도 일반 시민이 간여할 수 없는 경계선을 그어 놓은 셈이다. 물론 42.3%라는 숫자가 시민의 정책 영향력을 긍정하는??열린 의식??을 보이고 있는 점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정당에 대한 의원들의 인식은 비교적 솔직하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그다지 밝거나 긍정적이지는 못한다. 먼저 정당의 역할에 대해“정당은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키기도 한다??(86.4%)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물론 정당간의 갈등이 정책을 둘러싼??생산적 갈등??이라면, 계층간 갈등처럼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생산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정당은 국민 전체의 복지보다 소속정당의 이익을 앞세운다??라는 응답(41.3%)과 결부시킨다면, 정당간의 갈등은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측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정책에 대한 의원들의 인식은 매우 규범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들 상당수가 정책결정의 기준은‘정치적 기준??보다는??전문성과 합리성??에 두어져야 한다(82.1%)고 대답한 것이다. 극히 교과서적인 답변이다. 야당의 한 초선의원은 이에 대해??실제로는 민생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나 정책조차 정치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답변은 규범적인 기대가 다분히 섞인, 실제와는 거리가 있는??희망사항??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의원들이 이런 의식구조를 갖는 한, 정책 결정의 어느 차원까지는 이러한 원칙과 기대가 지켜지리라는 희망도 가져봄직하다.??의원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입법기관??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의 개입과 간섭은 필요??
 응답의원들의 국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정치선전의 자유 제한??에 대한 10명 중 6명의 의원이 찬성(61.2%) 의견을 밝혔다. 본질적으로 국가의 개입과 간섭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기본적으로 사회의 다양한 욕구는 정당이나 의회가 아니라 관료기구를 통해 충족된다??는 견해에는 79.8%가 반대의견을 나타냄으로써, 근본적으로 의회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3대 국회는 여러 대형비리 사건으로 어느 국회보다도 많은 구속 의원들을 배출했고, 이 과정에서??국회 무용론??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의원들 자신은 관료기구를 통해서만은 사회의 다양한 욕구가 충족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선택한 사람들??인 선량들의 엘리트관을 알아보았다. 그 대답은 자못 흥미롭다.

 우선 의원들은 스스로 엘리트이면서도 엘리트주의를 부인하고 있다.“좋은 가문이나 경력을 지닌 사람이 나라를 더 잘 이끌어갈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에 대해 10명 중 7명 이상(74.2%)이 반대했다.??정치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수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데에는 절반(53.5%) 가량이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권위주의의 청산과 관련, 일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도 오도되지 않은 진정한 엘리트의식은 한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간주된다.??엘리트는 엘리트다워야??하는데도 자질면에서나 능력면에서 자신감 부족으로 엘리트의식을 갖지 못한 채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결코 소망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의회의 협소한 위상과 제약조건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국정에 참여하는 의원들의 의식과 생각 그리고 이념적 가치성향은 국정의 방향과 정책적 내용을 좌우하는‘주요 인자??라 할 수 있다.《시사저널》이 13대 국회의원들의 정치의식과 이념성향과 알아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여기에 따르면 우리 의원들의 의식구조는 대체적으로 중도우파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사회갈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타협에 대해 열려 있으며, 의회주의를 견지하고 있지만 시민 개개인의 정치참여와 압력에 대해서는 다소 폐쇄적인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의식의 다양성도 특기할 만하다.

 물론 이런 의식이 실제 의원들의 활동양성이나 행동양태와 일치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13대 국회를 지켜본 국민들의 경험에 비추면 그 괴리감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 원인은 생각과 행동이 다른 의원 개개인과 우리 정치 상황 양쪽 모두에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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