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비르너 동독지역 경제개발추진단장
  • 남유철 기자 ()
  • 승인 1994.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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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통일 준비 빠를수록 좋다“

오는 10월3일 독일은 통일 4주년을 맞는다. 옛 동독은 이제 독일연방공화국의 신연방 주로 분할 편입되어 없다. 신연방 주는 행정구역상 맥클렌부르크-플포멘 주, 브란덴부르크 주,  작센-안할트 주, 튀링겐주. 작센 주, 베를린 주로 나뉜다. 이 신연방 주, 즉 동독 지역의 경제 개발이라는 막중한 '통일사업'을 이끌고 있는 베르너 비르너 신연방 주 경제개발 추진단장은 시작이 정말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모든 공산국가에서 그렇듯 이 동독 지역의 생산성은 낮고, 설비는 노후해 있었으며, 사회간접자본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다. 통일 4주년을 맞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겨우 숨을 돌린 지경이라고 말한다. 동독 지역에는 올해에만도 약 1천억달러가 투자될 예정이다. 비르너 국장은 이같이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선진 여러 나라를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다. 최근 서울에 들른 비르너 국장에게 통일 경험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국은 독일의 통일 경험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합니다. 어떤 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요?
완전한 통일 이전에 경제적으로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남북한간 산업 구조의 차이나 북한의 실제적인 경제상황을 깊이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 점을 미처 준비할 수 없었던 독일에 비교하면 한국은 유리합니다. 독일은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제 통합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물론 동유럽 지역의 체제 전환 과정을 한국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는 남북한이 점진적으로 통합해 가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독일도 점진적 통합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갑작스런 통합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점진적 통합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독일과는 당연히 모든 상황이 다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겠지요.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우선 남북한의 산업 구조와 실질적 경제 여건을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최대한 늘려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경제 통합에서 오는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통일이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통일에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쟁력 없는 산업 구조를 가진 지역과 통합했을 경우, 전체 경제력의 하향 평준화를 막으려면, 낙후한 지역의 산업 경쟁력을 하루빨리 높여야 합니다. 여기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이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독일 정부는 지금 동독 지역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이 됩니다.

많은 독일인이 통일을 후회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일 국민의 90% 이상이 통일을 지지하고 기대한다고 확신합니다. 통일로 인한 경제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이나 복지가 최고의 가치는 아닙니다. 통일을 경제 측면에서만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미입니다.

독일인에게 통일의 정치적 의미란 무엇입니까?
독일인에게 통일이란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냉전의 깊은 상처를 마침내 치유해 냈다는 뜻입니다.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동서독은 한 민족 한 국가였습니다. 이제 40년 분단이 끝났고, 또 그 분단이 가져온 군사적 긴장도 해소되었습니다. 이웃인 동유럽과의 외교 관계도 안정돼 가고 있으며, 경계 교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국 군대가 독일에 주둔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남북한에 비해 동서독은 통일하기전에도 많이 교류했습니다. 그런데도 서독이 동독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동독 경제는 정치 선전과 과장된 통계 숫자에 의해 상당히 부풀려져 있었습니다. 동독은 당시 공산권에서는 가장 경제가 앞서 있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통일 후 우리가 실제 들어가 보니까 경제가 엉망이었습니다. 한 예로 동독의 생산성은 서독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통계에 드러나지
않은 실질적인 실업자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제대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공장 설비는 대부분 노후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시장경제 체계로 편입시키기에는 경쟁력이 너무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동독 경제의 낙후가 통일 직후 어떤 문제로 나타났습니까?
동독 지역의 취약한 경제는 통일 직후 대량 실업 사태로 나타났습니다. 동독 지역 경제는 이윤 발생을 통해 새로운 투자를 진행하는 그런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동독 지역에서 우리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현재 독일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하려 합니까?
새로운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독일 혼자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일연방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동독 지역에 대한 투자가 가능하도록 주변 여건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즉, 사회간접자본을 갖추어 주는 것이지요. 현재 4년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 덕분에 동독 지역은 올해 8-10%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일 전망입니다. 신규 투자가 계속되고 있어 동독 지역의 경제는 매우 활력이 넘칩니다.

통일 후 통일 후유증이 나타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통일 후유증은 동독 경제가 워낙 나쁜 상태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서독 기준으로 보자면 동독 경제는 한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현재 독일에 주어진 과제도 동독 지역 경제를 수선하고 보완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재건해야 합니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전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동독 지역에 투자하려고 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국적에 관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합니다. 투자자가 서독 출신이든 한국 기업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세제나 정책상의 배려는 물론이고 자금 지원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현재 신연방 주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 수는 약 1천6백개에 달합니다. 동독 지역에는 아주 잘 훈련된 노동력이 많습니다. 새로 개방되는 동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최적지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연합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유럽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동독 지역은 매력적인 곳입니다. 한국 기업에게도 매력 있는 투자 대상지라고 확신합니다. 이곳에 진출한 삼성그룹은 아주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분야에서 한국 기업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급 기술 분야와 자본집약적 산업입니다. 동독 지역의 임금은 서독에 비해 훨씬 싸지만 고급 기술 인력은 풍부합니다. 브란덴부르크 주에 진출한 삼성코닝주식회사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옛 동독의 국영 기업들을 최단 시일 내에 민영화한 것으로 압니다. 민영화 과정은 끝나갑니까?
지금까지 1만5천3백개가 넘는 및 동독의 국영 기업을 완전히 민영화했습니다. 사기업이나 투자자에게 판 것이지요. 올해 말쯤이면 이런 대규모 민영화 작업이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데 신속한 민영화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옛 동독 기업들은 자본주의식 경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무역도 주로 공산권 국가와만 해왔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투자와 경영 혁신을 위해 필요한 자본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국영 기업체를 개인이나 기업에게 파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은 꼭 달성되리라 믿습니다. 독일은 점진 통합을 원했지만 현실에서는 갑작스런 통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반도는 독일과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상황에 깊은 이해가 없는 제가 조언을 하기는 뭣하지만,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통일을 관리(manage)할 수 있는 준비는 서둘러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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