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산업'에 적자 큰 구멍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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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宗産복합’ 작년에만 6백70억원

 지난 9월초 文鮮明 통일교 교주의 육촌동생인 文成均씨(67)는 통일교 관련 기업체를 관리하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유지재단’(이하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문교주가 8월29일 “9월부터 통일교 관련 기관장들은 모두 해임됐다”는 ‘환고향선언’을 한 직후의 일이었다.

 문성균씨는 재단이 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을 한데 묶어 ‘통일그룹’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 위해서 재단 안에 대기업 기획조정실에 해당하는 ‘통일그룹경영관리본부’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경영관리본부는 30여명의 계열회사 직원들로 구성되었다. 또 그룹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작년 2백80억원의 적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누적적자가 2천5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주)일화의 본사공장과 용인공장을 처분하려고 했다. 10월초 이를 사들이려던 두산그룹과 일화쪽에서는 자산평가까지 끝냈다.

 하지만 이 부동산 처분계획은 문교주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처분하려던 본사공장은 경기도 구리시 주택동에 위치해 있다. 이 공장은 통일교가 돈을 직접 벌어들이기 위해 최초로 ‘예화산탄공기총제작소’를 설립한 유서 깊은 장소이다. 聖地를 몰라보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이후 통일교에서 잔뼈가 굵어온 문씨지만 통일교에서는 종교가 산업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 셈이다. 문씨는 지난 12일 재단 이사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났다. <세계일보> 사장을 역임했고 세계선교본부장으로 있던 문교주의 측근 郭錠煥씨가 뒤를 이어 취임했다. 그룹경영관리본부는 구성원의 3분의 2가 원래 계열사로 ‘원대복귀’했다.

 재단이 세일중공업과 함께 통일교의 주력기업의 하나인 일화를 팔려고 했던 일은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이 ‘宗産복합체’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를 잘 말해준다. 통일교가 국내에서 운영하는 기업체는 14개에 이른다. 이들 업체 말고도 여행사 보석공예사 조경회사 인쇄회사 등도 가지고 있으나 규모는 작은 편이다. 90회계년도에는 14개 기업 가운데 6개 기업이 적자를 냈다.

 적자기업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6백70억원을 웃돌고 있는 총 적자규모이다(17쪽 도표 참조). 이 적자폭의 상당부분은 ‘맥콜’이라는 상표로 잘 알려진 (주)일화와 88년말 창간된 <세계일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일화의 경우는 보리음료인 ‘맥콜’을 개발해서 시판했던 80년대 초반 한때 반짝하는 듯했으나 보리음료에 대한 수요가 우유탄산음료와 스포츠음료로 옮아간 데다 기독교계의 불매운동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기업예산·직원임금 2년째 동결
 <세계일보>는 보수적인 독자들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더구나 언론사업은 초기에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누적적자가 7백50억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올해 적자 폭도 4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급기야 최근 2년동안 통일교 관련기업의 예산과 그 직원들의 임금은 동결됐다.

통일그룹의 경영상태가 이토록 악화된 데에는 경영 외적인 요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 관련기업에 근무하는 많은 통일교신자가 직장에서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거나 심지어는 통일교 재산을 유용하는 것 같다. “통일산업이라든가 일화면 일화라는 것을 그거 우리(신도) 것이라고 그러잖아요. 선생님(문교주가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맡겨가지고 있는데 전부 도적질해가지 않았어요?”라고 통일교 신도들의 ‘참부모’는 8월29일 호통을 쳤다.

 취재진과 만난 곽정환 신임 이사장은 아직 관련기업의 영업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통일그룹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요즘 다른 기업들이 다 겪고 있는 자금난 이상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교주 스스로가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8월29일 그가 행한 ‘말씀’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지금 현재 빚지고  다  그래 가지고 부도나게 해가지고 은행에 맡겨버리면 좋겠지만 이게 문총재(자신을 지칭하는 말)가 얼굴이 있어서 그걸 못하고 있어요.“

 문교주가 측근 중의 측근인 곽씨를 재단 이사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은 그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통일그룹을 ‘직영’하겠다는 것으로 통일교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통일교의 한 관계자는 “선생님이 직접 손을 댄 이상 경영난을 타개하고 기업들을 더 확장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거기에 드는 자금은 어디서 충당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그는 “선생님이 사인만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사인하기만 하면되는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통일교의 자본축적 과정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교계 관계자의 말이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이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자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교가 신도로부터 현금을 거두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59년5월 예화산탄공기총제작소를 설립하면서부터였다. 교회에서 공기총을 생산하고 신도들이 판매하는 이 기이한 장사는 초기 통일교의 제2인자였던 유효원씨(사망)의 사촌동생 柳孝敏씨(71)의 아이디어였다. 70년대 초반 “밝힐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통일교를 나온 유씨는 아직도 서울 한남동에서 ‘예화총포산업사’라는 가내공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일본 성금도 한달 6백억에서 30억으로
 전국 통일교에 판매책임을 할당한 이 사업은 66년에서 70년까지 전국적으로 예화 산탄 공기총 붐을 일으켰고, 68년부터는 일본에 수출까지 하게 됐다. “15만정 정도를 팔았다. 한정에 1만원 정도했으니까 당시 돈으로 15억원 정도를 벌어들인 셈이다”라고 유씨는 말한다. 통일교는 이 자본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여러 사업에 손을 댔다. 이 공기총제작소는 뒤에 통일산업으로 바뀌었고 이 회사는 생산품목을 각종 총포류로 확대했다. 정부의 지시 없이 다연발포인 발칸포 개발에 성공해서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것은 73년의 일이다. 이 사업은 朴正熙 전 대통령의 방산업체육성계획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고, 오늘날 그룹내에서 제일 규모가 큰 세일중공업(구통일)이 되었다.

통일교의 자금은 해외, 주로 일본에서 흘러들어온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은 신도들이 한국에서 생산한 도자기 석탑 도장 등의 공예품을 聖物이라 하여 비싼 값에 팔고 구두닦이 모금 등을 통해서 벌어들인 것이다. 통일교 관계자들은 일본이 한국에 돈을 대줘야 하는 것은 한국이 아담국가이고 일본은 해와(이브)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들어서 각종 일간지에 네차례에 걸쳐 문선명 교주에게 ‘공개질의서’를 냈던 ‘문선명문제연구소’의 김명희 소장은 지난 63년부터 15년간 통일교에 몸담으면서 통일교의 재산에 관련된 문제를 처리했었다. 그는 “일본에서 문교주에게 송금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이기 때문에 유입 금액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문교주와 그 사람, 단 둘정도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문교주가 한달 동안 해외로부터 받는 금액은 한때 6백억원에 이를 정도였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사업이 각종 소송사건에 휘말리고 일본 통일교가 내분을 일으키면서 ‘해와국가’의 성금도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애기가 통일교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현재 일본으로부터 들어오는 돈은 “간신히 <세계일보>의 적자를 메울 정도”라고 통일교에 정통한 소식통은 말하고 있다. <세계일보>의 적자규모는 매달 30억원 가량 된다.

전 통일교신도 李大馥씨는 통일교가 보유한 국내 부동산이 7천8백37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게 바로 기울어가는 군수산업체와 관련회사들을 살려내기 위해 문교주가 ‘사인해야’ 할 돈의 출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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