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分家에 재벌들 긴장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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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그룹 쪼개기??강요 우려…??형제간 재산분배 목적??비판

 삼성그룹은 지난 6일“신세계백화점과 전주제지는 이제 더 이상 같은 식구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두 회사와의 분리를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세계와 전주제지의 자회사인 대전민자역사와 고려흥진도 삼성그룹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룹에서 분리해 독립 경영토록 한다는 방침은 두 회사의 내부 동요을 불러왔다. 특히 젊은 직원들은“삼성그룹의 일원으로 입사한 것??임을 들어 반발했다. 대부분 그룹 공개채용 출신인 이들은 삼성이라는 거대한 보호막이 하루 아침에 벗겨지자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짙은 불안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룹측은??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여건??을 만들어 줄 것임을 약속하는 한편 두 회사가 독자경영으로 그룹의 일원일 때보다 오히려 성장을 꾀할 수 있다며 이탈이 없도록 다독거렸다.

 해당사의 내부 동요도 문제지만 보다 큰 반향은 삼성 밖에서 일었다. 다른 재벌그룹들이 삼성의 진의와 정부와의 연계성 등에 대해 안테나를 높이 세웠다. 삼성그룹에서 두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룹매출액(29조3천억원) 기준으로 보면 2.4%에 불과하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일에 다른 그룹들이 촉각을 곧추세운 것은 삼성의‘자발적인 선취행동??이 자신들에게는 강요된 형태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해석 때문이다.

삼성“정부의 경제력 집중 완화정책 호응??
 삼성그룹측은“국민의 대기업 경제력 집중 완화 요구에 부응하고 그룹의 경영력을 전자중공업 종합화학 등 제조업 분야에 집중하여 업종전문화 및 고도화를 기하는 동시에 두회사의 장기 성장발전을 위해 분리 결정을 내렸다??고 공식 설명했다. 다른 그룹들은 정부의 경제력 집중 완화정책에 적극 호응해서 두 회사를 그룹에서 떨어뜨리게 됐다는 바로 이 대목에 주목한다. 이런 전례를 들어 정부가 앞으로 억지춘향격으로 그룹 쪼개기를 강요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이다.

 몇몇 그룹들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들은 삼성이‘정부정책 호응??이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속셈은 다른 데 있다고 공격의 고삐를 바투 쥐고 있다. 李建凞 삼성그룹 회장 형제간의 재산분배 실현이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이다. 고 李秉喆 회장의 장녀 仁凞씨(호텔신라 고문) 가 전주제지를, 5녀 明凞씨(신세계백화점 상무)가 신세계백화점을 독립 경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공교롭게도 딸들이 갖고 있는 회사가 분리되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은데 대승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해석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의 업종전문화 유도 정책에 걸려 두 회사가 비주력사로서의‘불이익??응 받게되자 차라리 그룹에서 분리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룹의 일원이라는 것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면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룹이 은행감독원의 여신관리 대상이어서 그동안 신세계는 신규 부동산 최득금지 조항에 걸려 지방점포 확충에 애를 먹고 있었고 전주제지도 증설계획에 차질을 빚는 등 운신의 폭이 좁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삼성이 분가의 절대적 필요성과 이로 인한 이득을 노려 두 회사를 그룹에서 떼어놓은 것이지 경제력 집중완화라는 정부정책에 호응하기 위해서 결정했다는 것은 명분을 과대 포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측도 부분적으로는 시인하면서??그런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어도 삼성이 적극적으로 정부정책에 맞춰간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 그룹의 계열사 분가는 최근 선경그룹이 선경마그네틱을 떼어내는 등 사례가 많으며??이같은 추세는 재계의 큰 흐름??이라고 응수했다. 어느것이 더 큰 목적이냐 하는 것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삼성은 이 세가지 목적을 모두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와 전주제지의 삼성그룹의 관계단절은 쉽지 않은 법적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우선 얽히고 설켜 있는 상호출자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할 때 두 회사가 처분해야 할 삼성계열 상장 물량(1백77만주)과 반대로 이회장과 삼성그룹 계열사가 처분해야 할 두 회사 주식물량(52만주)은 2백30여만주(6백억원 상당)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희·명희씨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계열사 지분도 정리가 불가피하다. 엄청난 규모의 주식매각이 이뤄져 증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또 두 회사가 보유한 비상장 삼성 계열사까지 합치면 총 1천만주가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그룹과 두 회사가 완전 결별하려면 주시소유분은 소액주주 보유한도인 1%를 넘을 수 없다.

 서로 관련되어 있는 사람도 정리대상이다. 총 9천여억원의 상호 빚보증과 5백억원 규모의 빌린 돈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측은 정리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필요한 점도 있어서 6개월 내지 1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 절차를 모두 밟아 완전 독립체제가 되면 삼성은 주거래은행인 한일은행에 계열사 해지 신청을 낼 계획이다. 은행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이때 위장 분가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사람들은 이번 분리결정을 이건희 회장의 ‘LA구상??이라고 부른다. 이회장이 지난 9월 유엔 가입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대통령을 수행하고 로스앤젤레스에 남아 최종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말이 나온 것은 지난 6월 李昌凞 새한미디어 회장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면서 열린??가족회의??결과였으며 이회장이 지난달 25일 귀국하기 직전 실무 검토지시가 비서실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회장이 결단을 내린 데에는 어머니 朴杜乙씨의??중재??가 강력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집안을 가지런히 정리할 필요성과 장남 맹희씨의 거취를 확보하는 문제가 거론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앞으로도 삼성그룹이 제2·제3의 계열사 분리를 시도할 것이냐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에 대해 비서실의 高正雄 전무는“앞으로 추가 분리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더 이상의 그룹 쪼개기는 없다는 답변에??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없지 않다.

“삼성의 추가 분리는 결코 없을 것??
  제2·제3의 분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과 또 있어야 한다는 당위론을 펴는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가장 큰 명분으로 제시된 업종전문화 유도라는 차원에서 보면 삼성은 아직도 많은 업종을 갖고 있고 두 회사의 분리 기준이 된 유통·서비스업종과 가족 소유라는 특성 등을 그대로 고려하면 제일합성 호텔신라 안국화재해상보험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 이창희 회장의 한 측근은“이번 분리계획의 발단은 지난 6월 이회장이 타계하는 과정에서 고인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합섬을 그룹에서 분리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가 계기가 되었다??면서 이번 분리 대상에서 제일합성이 제외된 것을 두고 의혹을 제기한다. 병상에서 제일합섬 분리 문제가 형제간에 오갔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고 ??제일합섬은 반드시 새한미디어로 와야 한다??는 것이 이창희 회장의 소망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토 후 이회장이 형의 뜻을 ??무시??하기로 결정했거나 아니면 다음 단계 계획에 제일합섬 분리건이 잡혀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왕회장??(이병철씨)이 살아 있을 때 새한미디어가 만들고 있는 카세트테이프의 원단인 베이스필름을 제일합섬이 생산해 이를 새한에 공급하게 했으며 실제로 선대회장(이창희씨)이 제일합섬의 인사권을 쥐고 제일합섬 사장의 정기?특별 경영상황을 보고받는 등 사실상 경영자였다는 점을 강조한다.??왕회장??의 뜻이 제일합섬은 둘째아들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또 인희씨와 그의 남편인 조운해 고려병원 이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호텔신라와 맹희씨의 부인 손복남(안국화재 상무), 처남인 손경식 안국화재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안국화재도 분리대상이라는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룹측은 이런 추측을 일축하면서 제일합섬과 호텔신라는 외국사와 합작관계로, 안국화재는 그룹내 돈줄로 금융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분리불가??를 분명히 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삼성은 부문별로 회장제를 도입하고 그룹회장은 점점‘상징적 존재??로 만들 것 같다고 보고 있다. 이회장의 가족과의 관계와 건강악화가 그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룹의 한 관계자는??이건희 회장은 건재하다??고 밝히면서 부문별 회장제는 이미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 물산 중공업 생명 종합건설에 전문경영인이 회장으로 있으며 이회장은??과거 아버지가 그룹운영에 80의 힘을 가졌었다면 나는 20을 갖겠다. 나머지는 계열사 경영인이 결정할 일??이라면서 자율 경영?권한이양을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분리 전 계열사가 52개(10월 말 현재)이며 그들이“관리한다??고 표현하는 핵심계열사만 26개나 된다. 전세계에??삼성맨??이 나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정보력도 정보기관을 능가한다고 들린다. 삼성이 펼쳐가고 있는 2000년대 청사진은 화려하다. 전자와 기계, 화학 및 소재라는 3대업종을 주력으로 키우고 수출과 내수의 비중을 현재 5대 5에서 8대 2로, 서울 미주 동남아 3각축의 본사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2개사 분리 결정은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2000년대 그룹재편??의 아주 작은 움직임에 해당된다는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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