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한반도는 일본 겨누는 ‘칼’인가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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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에 일본도 책임 커…통일되더라도 국력 차이는 있을 듯

베를린장벽 붕괴의 여진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북한 김일성주석의 신년사에서부터 盧泰愚대통령의 7·20남북간의 민족대교류를 위한 특별발표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무성한 남북교류 제안으로 ‘90년대는 통일의 연대’라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이다. 이같은 배경속에서 통일조국과 일본의 국력을 비교하고 나아가 동북아 질서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물론 거기에는 통일조국의 모델, 통일조국과 일본의 국력 비교, 통일조국과 일본 그리고 미·중·소의 세력 판도에 따른 동북아 질서 고찰 같은 매우 어려운 단계적 절차가 따라야 한다.

 우선 전후 대표적 분단국인 베트남, 독일, 우리나라 중에서 베트남의 통일되고 독일이 실질적 통일작업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나라는 유일한 분단 모델이 되었다. 이를 도식화하자면 정치·경제적으로 뒤진 분단국 중 한쪽이 다른 한쪽을 무력으로 공산화한 것이 베트남식이라면 독일식 모델은 그와 정반대의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한반도식 통일모델이 어떤 형태를 띨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두 모델에 견주어 중간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집어삼킬 만큼 우월하지도 않거니와 양쪽이 정치·경제적으로 선진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통일노선이 어느 방식을 따를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크게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합하는 방식(독일식) △북한이 남한을 무력으로 흡수하는 방식(베트남식) △남북한 서로 닮은꼴로 통합하는 방식 또는 중립화 통일방식(스웨덴 또는 오스트리아식) 등으로 3분할 수 있다.

 독일식 통일은 무력에 의한 통일이 아닌 경제적 통일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모델로서 남한의 지배층과 대다수 국민들이 막연하게나마 바라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는 독일과 달리 ‘장기화된 국가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크게 차이난다. 동·서독은 우리처럼 갈등요소도 있지만 실질적 관계개선을 통해서 점차 경쟁관계로 전환을 이룩한 반면 남북한은 여전히 적대관계에 놓여 있다. 한편 베트남식 통일의 경우 “남반부 인민을 제국주의와 그 앞잡이들로부터 해방시키는 통일”을 바라는 북한 집권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마음 끌리는 일이겠지만 도표에서처럼 남북한의 국력 비교로 보거나 주변환경 요소로 보거나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반도에 대한 미·일과 중·소 입장 상반

 한편 닮은꼴 방식은 8·15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민중(인민)세력의 등장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현재의 남북한 관계는 형식적으로는 8·15 당시의 정세와 큰 구조적 차이가 없다. 밖으로는 여전히 미·일·중·소의 외세구조가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고 안으로도 양쪽 지배층의 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국가간 갈등’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기존의 통일논의 자체가 양쪽 지배계층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됨으로써 오히려 갈등을 장기적으로 심화시킨 측면도 있다. 닮은꼴 방식을 모델로 삼는 이론에는 북한이야 말할 것도 없더라도 남한의 사회구조적 특징을 ‘친미반공 국가독점자본주의’나 또는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는 시각이 포함된다. 이를테면 미국이라는 외세의 강력한 보호막 아래서 군부엘리트와 국가에 의해 창출된 독점자본가세력이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근본적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고 있으나 8·15 당시에는 관념적인 존재였던 민중이 지금은 현실적인 존재로 등장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국가간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남북한의 갈등은 ‘제국주의 세력의 모순’이 만들어 놓고 양쪽 지배계층이 더욱 심화시킨 산물이므로 그 모순만 제거해 해결하면, 즉 통일이 되면 남북한의 갈등도 저절로 해결된다는 논리이다. 거기에는 남한쪽 민중세력의 등장에 버금가는 북쪽인민세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통일조국의 국력을 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독일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본보기가 시금석이 될 것이나 우선 쉽게 접근하자면 현재의 남북한 국력에다 이른바 ‘알파’를 보태거나 뺀 힘으로 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체제의 상호보완에 따른 상승작용이 발휘되면 그 힘이 배가될 수도 있겠으나 반대로 체제의 부조화나 반목에 따른 퇴보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비교를 통해 보자면, 우선 일본의 자위대 병력은 양적으로는 24만6천명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소련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비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견주어 훨씬 더 소수 정예화된 초현대화 군단이다. 이를테면 병력 24만6천명이 쓰는 군사비 2백40억달러(1인당 10만달러)는 병력 2백12만명에 3천억달러를 쓰는 미군과 비슷하며 병력 1백47만에 1백20억달러(1인당 8천1백60달러)를 쓸 통일조국군의 화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군사력을 사용하려는 높은 강도의 국가 의지도 무시할 수 없다. 전후에 줄곧 미국의 핵우산 보호 아래 ‘안보무임승차’ 특혜를 누리면서 ‘자위력’을 키워온 일본은 최근 미·일안보조약 무위론을 내세우면서 방위비의 GNP 1%선을 돌파하였고 가상 침략군을 일본열도가 아닌 바다와 공중에서 격파한다는 이른바 전진방어전략을 채택, ‘日本列島의不沈航空母艦化’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GNP의 15%가량을 차지하는 경제력과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이 일본 군사력을 무한정 뒷받침한다는 점에서도 통일조국의 국력보다는 한수 위를 차지할 것이다.

 더구나 표에서 보듯 통일이 되면, 양쪽 합쳐 1백20억달러가 넘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이 다른 부문에 쓰일 것이고 1백50만명에 이르는 병력도 대폭 감축될 것이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될지, 또 통일된 뒤 주변 4강의 구도가 어떻게 짜여질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현재 남북한 양쪽에서 오가는 군축논의에 따르면 각 30만에서 10만명 규모로까지 줄이자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조국과 일본의 국력 비교는 물론 앞서의 통일조국이라는 가설조차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4강의 역학구도에 의해서 ‘검증’돼야 마땅하다.

 통일조국에 대한 4국(미·일·중·소)의 입장은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는 두쪽, 작게는 네쪽으로 엇갈린다. 두쪽의 상반되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이 6·25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3년 동안 1백80억달러를 투입, 5만4천명을 희생하면서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막았다. 54년에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한반도 기본정책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6·25당시 패전국으로서 국제관리하에 놓여 있어 참전이 불가능한 처지였으나 지난 69년 닉슨 미대통령과 사토 일본 총리가 발포한 공동성명에 삽입된 이른바 한국조항(“한국의 안전이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에서 보듯 적어도 베트남식 통일은 원하지 않고 있다.

 

4강, 통일에 적극 반대도 찬성도 안해

 중국과 소련의 입장은 그 반대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소련은 그동안 동서독의 모델처럼 1민족 2국가 체제를 밀고왔으나 지금은 통일 독일의 나토 잔류까지 합의해줄 만큼 전향적인 개방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미 블라디보스토크선언(86년),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88년) 등을 통해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평화체제 구축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같은 소련의 평화전략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힘의 우위를 통해 유지돼온 동북아의 냉전질서를 붕괴시키자는 것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괴뢰정권’으로 간주하던 남한정부가 내놓은 한반도문제 해결방식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4강이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맡을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어느 나라도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적극 반대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외부환경(주변국) 요소로 보자면 전후 연합군 4전승국이 주축이 된 독일 분점은 강력한 독일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반도 분단은 근본적으로는 미소의 세력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미국은 한반도에 38도선을 확정한 장본인의 하나라는 점에서, 소련은 분단 고착화에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본은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점에서 한반도통일에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이른바 독일의 ‘2+4방식’과 ‘아시아판  2+4 방식’으로 해석되는 한반도 통일방식의 공통분모에는 미·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는 전후 전세계가 미·소의 대결장이었던 힘의 역학관계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석적이게도 아시아판 2+4 국가 중 한나라인 일본은 유일한 패전국이자 한반도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책음을 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 점에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시카고대 동아시아사)와 작가 존 할리데이가 함께 쓴 《한국, 알려지지 않은 전쟁》(Korea : The Unknown War)에서의 다음과 같은 대목은 매우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은 비극적인 역사적 부정의 희생자였다. 2차대전이 끝났을 때 한국은 공격의 책임이 없으면서도 분단된 유일한 나라였다. 한국을 점령, 병합하고 이웃국가들을 공격한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다. 가장 잔혹한 것은 한국이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 칼’이라는 취지의 수사구들이다. 그것은 진실과 정반대이다. 한국은 어떠한 나라도 결코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과 간섭에 계속 희생당해 왔다. 이제 홀로, 평화롭게,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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