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압력에 꺽인 파키스탄 ‘민주화의 꽃’
  • 하창섭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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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 총리 실각… 부패·권력남용 등으로 인기도 떨어져

 “나에겐 비전이 있다. 21세기에는 내조국을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현대 회교국으로 만들고 싶다.” 회교국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오랜 군정에 시달려온 파키스탄에 ‘민주화의 꽃’을 피우려던 베나지르 부토 총리(37)가 집권 20개월만에 군부의 압력으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88년 12월 부토정부의 출범 후 급진개혁에 반대하는 군부의 압력을 심하게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이샤크 칸 대통령은 8월6일 “부토정부의 부패와 족벌주의의 성행”을 이유로 부토 총리를 전격 해임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그는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야당 지도자이자 부토의 정적인 무스타파 자토이를 임명하고 10월24일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칸 대통령이 과연 그같은 약속을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있다. 선거가 치러진다 해도 민심을 잃은 부토의 약화된 입지를 이용하여 야당이 승리할 가능성도 있으나 최악의 경우 선거가 실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관측통들은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토는 ‘선거공약’을 내세운 군부 쿠데타의 희생물이 되고 파키스탄은 다시 군사통치의 그늘로 들어가게 된다.

 부토의 전격 해임에는 칸 대통령이 밝힌 ‘해임사유’도 부분적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출범 초기부터 불화를 빚어온 군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88년 12월 부토 총리는 정권을 인수하기에 앞서 아스람 베그 군 참모총장과 비밀회담을 갖고 집권기간 동안 국방예산을 삭감하지 않고 군 인사권에 대한 군의 재량권을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데 합의했었다. 그러나 부토는 합의와는 달리 국가예산의 34%를 차지하는 국방비를 삭감하여 군부의 반발을 샀다. 또 지난 5월 이후 사망자가 4백명을 넘어선 신드州의 유혈사태에 군이 개입하겠다고 나서자 이를 거부하여 군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군부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칸 대통령을 내세워 부토를 실각 시킨 것이다. 부토의 군부에 대한 반감은 아버지 알리 부토 전 총리가 지난 77년 ‘정적살해 음모’의 죄목으로 지아 울 하크 군사정부에 의해 처형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88년 11월 실시된 총선에서 열화와 같은 국민의 지지로 부토가 이끄는 신예 파키스탄인민당(PPP)은 하원 2백 37 의석 중 1백 16석을 차지하여 제1당으로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의석은 과반수 미달이었고 지아 전 대통령계의 회교민주동맹(IDA)과의 의석차도 3석에 불과했다. 결국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부토정부는 집권 3개월만에 야당의 불신임 공세를 받았고 이는 자연 개혁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특히 1인당 GNP가 4백달러 정도에 불과한 빈곤문제, 83년부터 터지기 시작한 부토의 출신지역 신드주의 유혈 민족분규, 캐시미르지역을 둘러싼 인도와의 갈등 등 난제들을 풀기에 ‘정치 풋내기’ 부토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민주기수’ 부토의 이미지는 퇴색하고 정부관리의 부패, 파키스탄인민당의 권력남용, 친인척의 부정사건이 겹쳐 무능한 정부라는 인식이 국민 사이에 확산됐다. 특히 남편인 사업가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한 영국 사업가를 납치하여 88만달러를 강탈하려는 음모에 연계됐다는 소문은 부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국회의원인 시아버지 하킴 알리 자르다리도 독직 구설수에 올라 있다.

 

‘무능한 정부’인식 국민 사이에 확산

 파키스탄 주재 한 서방외교관은 “전세계의 이목이 이라크·쿠웨이트 전쟁에 쏠려 있는 사이에 감행된 이같은 사태는 쿠데타가 분명하나 현 파키스탄 사태가 이대로 계속되었다면 어차피 계엄령 선포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부토의 국정수행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관측통들은 지나 20개월간 부토가 자신의 민주화개혁 공약을 실천하기보다는 군부와 야당의 끊임없는 견제로부터 ‘살아남기’에 더 관심을 뒀고 여기에 정치적 ‘경험미숙’이 겹쳐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토의 전격해임은 47년 독립 이후 근 25년간 군사정부의 통치를 받아온 파키스탄이 민간주도의 민주국가로 변모해나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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