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才교육'에 天才 시들다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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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문제아 만들 수도 영재교육 실시 두 곳뿐

 서울 강남구에 있는 ㅅ중학교 1학년 신석우군은 내년에‘수학속진??과정으로 유명한 미국 존슨 흡킨스 대학으로 유학간다. 이 땅에는 조숙한??영재??를 품어 키워줄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석우군은 3살 때 문득??놀기가 지루하다??면서 어머니에게 산수 문제를 내 달라는 말로써 영재성을 드러낸다. 한 자리수 덧셈과 뺄셈을 금세 풀고나서??시시하니까 더 어려운 문제를 내 달라??고 요청했다. 점차로 수식의 단위가 높아져 나중에는 조 단위쯤 되는 덧셈식, 뺄셈식을 내놓고는 살펴보았다. 아이는 자리올림을 하면서 셈하는 것이 아니라??생각도 안하고??순식간에 답을 내 놓았다. 서너살 때에 이미 지도를 보면서 전국의 역과 도시를 환히 외었으며, 지하철이 개통되자 명함만한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계속 그려보더니 그것을 다 외었다.

국교 5년 때 고교 수학과정 마쳐
 그즈음에 MBC TV의 신동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같은 프로그램에 초청되었던 정연태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다. 정교수는 교육기관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신동의 부모들의 간청으로 85년부터 봉천동 자택에서 18명의 신동들을 모아놓고 교육을 시작했다. 정교수는 석우가 국교 2년생이 되자 수리력이 특출나 그냥 두기 어렵다면서 산수 속진을 권장했다. 그 결과 석달 만에 국민학교 산수 과정을 전부 마쳤고, 이어 중학교 과정도 여섯달 만에 끝났다. 국민학교 2학년 때에  중학교 산수 과정까지 뗀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모두 마친 것은 국교 5년 때인 89년 봄이었다. 6학년이 된 지난해 4월에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참가를 위한 최종 선발고사에서 과학고등학교 학생들과 겨뤄 18등을 했으며, 전국컴퓨터 경진대회에서도 금상을 획득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올 초에는 미국에서 대입생 선발을 위하여 개발된 수학적성검사에서 8백점 만점에 760점을 받았다. 지난해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여름학교 수학과정에 참여하려고 했으나,“중학생과 함께 공부할 수 없다??고 거부감을 표시한??형님들??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요즈음에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교재로 사용하는《calculus》를 원서로 공부하면서 대전과학기술원에서 1주일에 3문제씩 부쳐오는??통신강좌??을 풀고 있다.

 뜻밖에도 석우 어머니는“어떨 때는 오히려 평범한 자식을 키우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석우가 영재임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이들은 신동이라고 떠들썩했던 김모군이 결국 지방대학에 입학했던 경우를 빗대어 편견을 갖는 데다가, 조기입학과 월반 등이 허용되지 않는 현행교육제도 아래서 이미 고등학교 수준을 뛰어넘어선 석우군이 학업에 싫증을 느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은 영재아를 둔 부모들의 공통된 걱정이기도 하다.

‘영재아교육협회??와??영재아연구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부 차원에서 공인해 주는 교육기관으로 과학고등학교가 있을 뿐, 영재교육의 효과가 보다 확실한 유치 연령 교육이나 초·중등교육을 담당해주는 기관은 없다. 또 국민학교나 중학교 과정에서 이들을 위한 특별학급이 운영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아동기에 영재임이 판명되는 경우에 부모들은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속셈학원 음악학원 컴퓨터학원은 물론 각종 학습지마다 영재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정작 진정한 영재가 뿌리내리고 자랄 교육 토양은 없는 셈이다.

 강남구 영동아파트에 사는 국교 1년생 오혁군은 학교에서 실시한 지능 검사 결과‘영재아??로 판명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상담원으로부터 아이가 지능이 우수한 영재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기뻤지만 곧이어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 고민에 휩싸였다.??보통 아이보다 몇해씩 앞서 있는 우수 두뇌아를 평준화교육 속에 묶어두었을 경우, 자칫하면 학업에 흥미를 일게 되어 문제아가 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알려주는 상담원의 말에는 걱정이 더럭 앞섰다. 영재아의 부모들은 대개 오군의 어머니처럼 고민하다가 일부는 영재아들을 모아 특수프로그램으로 사고력을 훈련시키고 있는 한국영재아교육협회나 기독교방송 문화센터 영재아연구실을 찾아간다.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국영재아교육협회는 전 서울대학교 사범대 교수 정연태 박사가 87년에 협회를 발족 운영해 왔으며, 지난해 개설된 논현동의 영재아연구실은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부장인 조석희 박사가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다.

 영재의 판별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랜쥴리가 제안한 영재정의 모델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130 이상의 지능, 과제 집중력, 창의성 세가지 요소가 모두 상위 15% 안에 들면서 적어도 한 요소에서 상위 20% 안에 들어야 한다. 영재아들은 대개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기억력이 뛰어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쉽게 흡수 저장할 수 있는 아동, 호기심이 많아 귀찮을 정도로 질문이 많고 다양한 책을 읽는 아동,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 내서 엉뚱하다는 오해를 받는 아동,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끈질기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아동 등이다.

 보통 사람보다 두뇌가 발달한 영재란 한마디로 저장 용량이 큰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은 영재아를 생각할 때는 머리만 커다란 ET 같은 형을 떠올린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터만 교수의 조사 결과는 신동에 대한 이같은 기존 인상을 뒤엎는다. 그는 영재들은 자기 신뢰감이 강하고 주변 상황에 사려깊게 대처하는 침착성을 보이며, 대체로 명랑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나 낙천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도력이 높고 친구들간에 인기가 있으며 감수성이 강하고 겸손하지만, 그 겸손의 대상이 선별적이어서 때로는 교만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개인차 무시하는 평균주의         
 영재아동이 평준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지적 욕구를 해소 못할 경우, 주위가 산만해지거나 학습 내용에 싫증을 내기 쉽다는 교육학자들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한다. 우주 암호인 블랙홀을 아는 영재아와 한글을 못깨우친 아동이 한 교실에서 수업받아야 하는 오늘의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전체의 3%에 지나지 않는 불리한 소수집단인 영재아들이 도리어 문제아로  잔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특별함??이 가져다 주는 불편함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영재아들이 동조행동을 하는 경우도 쉽게 발견된다. 국민학교 1학년생인 한 아동은 집에서는 영어로 된《백설공주》을 읽지만 학교에 가서는 절대로 영어 단어를 외지 않는다.??잘난 척한다??고 따돌림받지 않으려고 다른 아이처럼 한문 연습을 한다.

 한국영재아교육협회 상담실장인 문정화 박사는“흔히 어른들은 조숙한 영재아가 모든 일을 잘 처리하므로 이들이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실제로는 예민한 감수성, 높은 야망, 또래와의 친하기 어려움 등 주위 환경에서 이탈되었다는  낌 때문에 영재아들이 여러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강조한다. 

 ‘영재는 국가의 두뇌집단??이라고 전제한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 김재은 교수는 영재교육이 실시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개인차를 인정하지 않는 드센 평균주의??를 꼽는다. 그러나 영재교육은 특혜 교육이 아니라 휴머니즘에 입각한 교육이라는 주장은 이미 선진국 각국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진아에 대한 특별 교육이 인정되듯이 우수두뇌아들에 대한 특별교육도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지적 연령이 높아지면서 자녀의 영재교육 바람은 높아가고 있다. 6살된 아들이 돌을 지나면서부터 한글 산수 바둑 피아노 영어회화 등을 임기응변식으로 교육시켰다는 주부 정영숙씨의 생각은 더이상 영재가 돌출된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준다.“개인의 힘으로 과학적인 사고력을 길러주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사회는 일반 재능 교육 차원이 아닌, 체계적인 과학적 사고력이 필요한 시대인 만큼 과학실험 중심의 교육을 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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