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잠’ 사퇴정국, 9월이 오면…
  • 박중환 정치부차장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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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통합·여권관망 등으로 소강상태 … 국회 개원 앞두고 여야 충돌 불가피

찜통 더위는 한풀 꺾였으나 경색된 정국은 풀릴 낌새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정기국회법정 개회일인 9월10일 이전의 타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비관적 전망은 여야가 같다.

 그대신 민자당은 늦어도 10월중순쯤되면 야당의원들이 국회로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여당의 낙관적인 자세에 대해 평민·민주 두 당은 “여당이 현정국을 지극히 안이하게 보고 있다”며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일부 강경한 야당의원들은 내년 3~6월까지 국회밖에서 버티면 국회해산·총선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여야간의 시각차는 이처럼 크다.

 민자당의 10월중순이란 시한은 이번 국회가 임시국회가 아닌 정기국회이기 때문에 야당이 국정감사·예산심의를 무시하고 원외투쟁만 계속 벌일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등을 나름대로 감안해서 얻어낸 것이다.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일단 연 뒤 야당의원들의 사퇴서 일괄 반려와 함께 국회를 휴회하고, 야당과 지방자치제법 국가보안법 안기부법 등의 쟁점법안에 대해 협상을 벌이면 매듭은 풀려나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협상으로 의견접근이 안될 경우 민자당이 일부 지자제 선거에 정당추천제를 허용하고 국가보안법의 대체입법을 추진하는 등 야당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야당의 복귀명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자 “복귀명분 줄 수 있다” 낙관

 민자당이 이처럼 낙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몇가지의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金大中 평민당총재의 정치성향이 겉으로는 투쟁론자인 것 같지만 속으로는 협상주의자라는 점이다. 그 예로 지난 65년 한일협정비준 당시 야당의원들이 집단사표를 냈을 때 김대중의원은 국회로 복귀했다는 것이 꼽힌다. 가깝게는 지난해 3월20일의 중간평가 연기와 12월15일의 이른바 ‘대타협’때도 5공청산 매듭협상을 하면서 잇따라 타협을 했다는 사실이 지적된다. 둘째, 정기국회의 일정 1백일 중 50~60일 정도 휴회를 하더라도 그 사이 여야간에 타결이 되면, 나머지 일정 동안 의사일정을 거의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믿을 만한 구석'이다. 셋째, 국정감사는 정기국회 개회일로부터 20일간 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본회의 의결로 그 회기를 변경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어, 이것으로 야당의 국정감사 참여를 유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다. 넷째, 김총재가 정기국회에 등을 돌리고 장외집회를 강행할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으나 전국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노력해온 그로서는 얼마 못가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도 민자당쪽이 믿고 싶은 구석이다. 이러한 분석들의 저변에는 여당의 자의성이 깔려 있는 듯하지만 김총재는 사태가 불리해지면 군중을 끌어들여 ’일을 꾸미려 한다‘는 자신의 좋지 않은 이미지가 확산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 추론이다.

 민자당은 김총재가 평민·민주·재야가 연대하는 공청회와 군중집회로 장외투쟁을 벌여나가면서 적절한 시기에 盧泰愚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통해 극적인 전환을 찾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민자당은 그 구체적인 시기를 정기국회가 한달 이상 공전되어 국민들 사이에 야당의 국회등원 거부에 대해 시비가 일고, 언론이 야당의 장외투쟁을 꾸짖으면서 의정참여를 촉구하게 될 10월중순 이전쯤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민자당은 그러나 영수회담이 이뤄지려면 야당에게 등원의 명분과 실리를 주는 어떤 ‘선물’이 사전에 준비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선물은 과연 어떤 것일까. 민자당은 지난달 24일 청남대에서 당3역이 노대통령에게 보고한 지자제 선거에서의 정당추천제 허용, 국가보안법의 대체입법 및 안기부법 개정 ‘선물꾸러미’를 마련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평민·민주 두 당은 “그 정도의 협상안은 날치기 파동이 있기 전인 7월13일 이전에나 먹혔을 법한 것”이라고 코방귀를 뀌며 국회해산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특히 평민·민주 두 당은 민자당이 지자제의 정당추천제 허용 범위와 실시일정을 검토하면서 91년 상반기, 95년 이내, 95년 이후 등 3단계로 나눠 광역·기초단체의회와 단체장 선거를 하면서 광역단체장에 한해 정당추천제를 허용하려 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자 “놀리려는 것이냐”고 감정적인 반응까지 나타내고 있다.

 그 가운데 국회해산·총선에 대해 현실적 불가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온 민주당 金光一의원이 《시사저널》 41호 인터뷰를 통해 밝힌 야당의원의 ‘세가지 등원조건’이 민자당내 일각에서 검토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그 세가지 조건은 ‘선물’추가분의 수준과 범위를 가늠케 하고 있다. 그 내용은 △민자당이 지난 임시국회에서의 날치기 법안통과를 공개사과하고 △13대 국회에서 내각제 개헌을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며 △앞으로 국회를 여야협의 자세로 운영하겠다고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 조건을 두고 민자당내 반응은 계파별로 각기 다르다.

 날치기 공개사과에 대해 민정·공화계는 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인 반면 민주계는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만약 공개사과를 할 경우 지난 임시국회를 총지휘 했던 金永三 대표최고위원과 金東英총무에 대한 인책론이 대두될 것이라는 점을 김대표 최고위원측은 우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의 내각제 개헌포기 선언에 관해서 민정계와 공화계는 “야당의 원내복귀를 위해 3당합당 정신이기도 한 내각제 개헌을 포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희생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민주계는 개헌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설령 개헌이 된다 해도 내각제하의 총선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얻기가 더 어려운 만큼 개헌 포기선언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의 국회운영 정상화 약속에 대해서는 3계파 모두가 일단 받아들이는 데 그다지 문제가 없다.

 

야권 “명분없인 절대 등원 안한다”

 그러나 이 세가지 조건을 민자당이 자진해서 받아들인다 해도, 열쇠를 쥔 평민당측은 이를 충분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다소 애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원회관에서 나와 개인사무실로 짐을 옮긴 야당의원들은 한결같이 “명분없이 국회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평민당의 한 중진의원은 “야당이 국민의 여론에 못이겨 국회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그런 자세로는 정국을 풀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지지해주었던 국민 중에서도 국회에 들어가 싸우라고 충고하는 분들이 있지만, 만약 복귀한 뒤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거대여당의 그늘아래 있게 된다면 그때에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라며 확실한 명분이 없는 한 복귀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김윤환장관이 여당의 내각제 개헌안과 김총재의 부통령제 개헌안을 함께 국회에 상정해서 논의하는 형태로 야당의 국회복귀를 시도하는 듯한데, 그런 미묘하고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야당이 복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퇴정국의 돌파구로 노대통령과 김대중총재의 회담이 열린다 해도 강경한 민주당이 버티고 있어 김총재의 뜻대로만 밀고 나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만약 통합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민주당을 버려두고 평민당만 국회에 들어갈 경우 평민당은 중간평가 연기, 5공청산 매듭합의에 이어 또한번 ‘야합’했다는 비난을 민주당과 재야로부터 받게 될 것이 큰 부담이다. 김총재가 지난해 3월10일 청와대 단독회담을 통해 3·20중간평가 연기를 합의해준 이후 공안 정국으로 공격을 당했고, 1노3김회담(12·15)에서 5공청산 매듭에 합의해준 뒤 3당합당으로 하루 아침에 소수야당의 총재로 전략해야 하는 수모를 겪은 점을 생각할 때, ‘이번만은 쉽게 타협하지 않을 듯’하다는 일부 야당의원의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특히 13대 국회 임기의 절반을 보낸 시점에서 다음 총선과 대권구도를 짜나가야 할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민주당 ㅇ의원은 “김총재가 노대통령과 밀실에서 만난 뒤 확실한 명분없이 평민당을 이끌고 국회로 복귀할 경우 ‘정치자금을 받아 챙겼다’는 의혹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영수회담에 대해 사전제동을 걸었다.

 7·14 날치기파동으로 빚어진 사퇴정국은 야권의 통합정국, 여권의 관망정국이 따로 놀면서 소강상태를 유지해왔으나 9월의 정기국회를 앞두고 결국은 다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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