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빙맛’볼 때 아니다
  • 앙드레 퐁텐느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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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옛 속담에 ‘지리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오늘날은 사정이 좀 다르다. 생활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캉스가 이름조차 모르던 국가에까지 프랑스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여행스케줄에 한국은 여태까지 올라 있지 않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직행항로로 간다해도 13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멀고 운임도 비싼 곳이다.

 ‘투어’를 알선하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한국은 여행 프로그램에서 빠져 있다. 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는 많은 유럽인과 미국인이 태양과 휴식의 이름으로 지중해를 즐겨찾도록 안내하는 ‘메디테라네’와 같은 클럽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은 지친 사람들을 매혹하는, 가을이면 요정처럼 변하는 숲과 유적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88년의 서울올림픽은 운동선수 응원단 기자와 시청자들에게 서울의 최신 경기장과 뻗어나는 건물을 학생과 경찰의 잦은 충돌과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의 테러행위와 휴전선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기억과 아울러 이 모습은 전체적으로 한국의 효용성과 역동성, 심지어는 폭력성마저도 느끼게 해줬다. 필자처럼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서 두루 여행도 하고 오래 전에는 경쟁국가 북한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은 철의 권력에 오랫동안 지배받은 한국사회에 민주화가 진행되고 매일 6백여대의 새 차가 나와 교통을 더욱 더 혼잡하게 만들면서 수도가 팽창적 발전을 하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이와 비교하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공해가 심한 도시의 하나인 멕시코의 교통소통은 매끄러운 편이다.

혜택 누리는 사람들의 경박성이 문제 부른다.
 프랑스인들이 여태까지 전혀 감지하지 못한 점은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너무 빨리 너무 부자가 됐다’는 특집에서 다룬 과소비문제이다. 이같은 현상은 도약적 경제발전 국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이윤이 경제의 유일한 동력일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의 엄청난 낭비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그 단적인 예로 일본에서 정신이 돌 정도의 가격으로 인상파그림을 사들인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생활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향상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소득은 아직도 미국이나 일본의 3분의1밖에 되지 않는다고 미국잡지가 지적한 것은 맞는 말이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국민의 대다수는 황금으로 덮인 신생국의 자만에 찬 환상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또 빈곤층의 불만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도 된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를 가능케 한 직업의식과 노력이 자만을 부르기 쉽다. 또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지나친 경박성은 문제되는 순간을 향상 부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분단고착에 있음이 분명하다는 점을 생각하자. 한국 분단의 원인은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에 있다. 또 포스트공산주의 세계에서 김일성은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공룡처럼 보인다. 이로 미루어 한반도는 조만간 통일이 될 것이라고 원칙으로는 말할 수 있겠다. 북한과 남의 유엔 동시가입은 독일의 예에서 보았듯이 상황을 유리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쿠데타의 실패는 경제상황이 지극히 어려운 때 북한에 대한 외부지원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의 침략 위험은 점차 희박
 이같은 조건으로 인해 수십년간 남한 지도자들을 짓눌러온 북한의 침략위험은 점차 비현실적으로 되는 것처럼 보인다. 상처받은 곰의 마지막 뒷발차기를 배제할 수는 없고, 핵무기 생산에 관한 소문도 염려할 만하기는 하다. 그러나 사그라져가는 전체주의 경험에 따르면 마지막 날이 올 때 ‘아파라치크’(특권관료계층)는 이미 패배한 전쟁터의 바리케이드속에서 죽기보다 그들의 소중한 인품과 특권을 더 염려하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냉전시대의 마지막 大浮氷群의 하나가 녹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미국잡지에 언급된 50만원을 주고 팬티를 사 입는 아름다운 한국여성들은 이같은 해빙을 어느 면에서는 미리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다음과같은 사실을 애기해줘야 한다.해빙은 아직도 오래 걸릴 것이며 경기침체가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빈곤이 아직도 흔한 지구상에서 과시적인 모든 낭비는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도발을 초래한다는 점을.


 앙드레 퐁텐느씨(71)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47년 입사해 외신부장과 편집국장 및 초대 직선사장을 역임했다. 금년초 사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르몽드>의 고문으로서 국제정세에 관한 칼럼을 세계각국의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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