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한국인 沈英浩
  • 글 이문재·사진 이상철기자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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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으로 쌓은 명예가 가장 중요합니다??

 평균은 양 극단을 전제로 한다. 양 극단이 없는 평균은 무의미하다. 평균은 양 극단을 인정하면서도 또한 양 극단을 부정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양 극단과의 거리 혹은 편차가 클수록 평균은 그 의미가 돋보인다. 우리가 평균한국인을 선정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이때의 평균은 개성을 희석시키고 다양성의 뿌리를 뽑는‘폭력??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위와 아래, 앞과 뒤, 좌와 우 등 우리 사회 전반의 형국은 극단들이 서로 끌어안으려 하기는켜녕 더 깊은 골을 만드는 쪽으로 치닫는 듯하다. 더불어 살기의 미덕은 증발되고‘말세 징후와 다름없는??사건뉴스들이 쉴새없이 전달된다. 잘살고 못사는 사람들의??키 차이??가 날로 커진다. 우리 사회모순의 본질이라는 분단문제 해결에 대한 목소리에 비해 그 체감온도는 아직 낮기만 하다. 사회주의의 붕괴와 걸프전 이후 재편되는 세계질서는 우리를 우루과이 라운드라는??경제전쟁??속으로 떠밀어넣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
 1991년 겨울, 우리 한국인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대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이 질문에 값하는 한 방편으로 《시사저널》과 코리아리서치센터는 평균한국인을 선정했다. 평균한국인으로 뽑힌 沈英浩씨의 삶과 생각을 통해 우리의 좌표 혹은 정체성을 새삼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숲만 강조하다 보면 그 숲을 이루는 한 그루 나무의 존재는 지워져버리고 만다. 나무 한 그루를 통해 숲 전체를 가늠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평균한국인 심영호씨가 있다.

 자신이‘91평균한국인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심영호씨는 머뭇거리는 기색이었다.??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며 그는 완곡하게 한발 물러섰다. 평균한국인을 선정하는 취지와 의의를 듣고 나서야 그는 카메라 앞에 섰는데, 기실 그의 현재적 삶이나 살아온 날, 그리고 품고 있는 생각들은 어느 누구에게 드러나도 꺼리낄 것이 없는 것이었다.

 심영호씨는 삶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들 가운데 명예를 맨 위에 올려놓고 있다. 흔한 말로 “돈이야 있다가는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고, 권력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는 그이다. 심씨가 생각하는 명예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명예는 신용을 바탕으로 한다고 봅니다. 나의 솔직한 면을 상대방에게 드러내도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을 때를 나는 명예롭다고 말합니다.??평균한국인으로부터 나온 이??명예론??은 그의 건강한 삶과 상식의 척도가 없었다면 그저 책에서 인용했을 법한 잠언의 한 구절로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왼쪽 <표>에 정리되어 있듯이 올해 38세인 심영호씨는 부인과 1남1녀의 가장이고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장남이다. 동시에 조그만한 침구 제조업체를 꾸려가는‘사장님??이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저녁 9시30분쯤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오고 일요일이면 가족들을 위해??운전사??가 되는 전형적인 우리 시대의 가장이다. 그의 하루 일과에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없다.??외로운 부모??와??유사 이래 가장 풍요롭게 자라나는 신세대??사이에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이른바??샌드위치 세대??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까지 해석하진 않는다.??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권 돌아가는 모습“한심하다??
 경남 산청에서 출생, 그곳에서 국민학교 3학년까지 자랐다. 교육자 집안인 외가의 권유로 국민학교 4학년 때‘대처??인 진주로 나온 이래 지금까지 객지생활를 해오고 있다. 2남2녀의 장남인 그의 이력서는 대가족제도의 마지막 세대이자 핵가족의 제1세대인 40대전후의 초상이다. 姜信杓교수(한양대?문화인류학)의 지적처럼??시골 고향을 떠나 도시를 새로운 고향으로 삼는 세대??이다.(28~29쪽 참조). 그리고 보면 심씨는 또한 대가족제도의??마지막 장남??이기도 하다.

 경남 지역의 명문인 진주고등학교를 다닐 때 꿈은 의학도였다. 그러나 졸업 무렵 아버지(沈源澤·66세)의 사업이 실패하는 바람에 대학 진학과 취업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 장남이 아니었다면 그는 몇 번 재수를 해서라도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곧장 서울시청 하급 공무원시험에 합격, 한 2년간 민방위업무를 맡았으나“워낙 박봉이어서?? 집안에 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공무원증을 반납하고 여성의류업체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의류수출입에 대한 감각과 노하우를 익혔다.

 그러나 월급쟁이로 만족할 수 없었다. 83년 친구와‘장원실업??이란 조그마한 수입 오퍼상을 차렸다. 잡화와 특수강 따위를 수입 해??한때는 좋은 시절??을 누렸지만, 85년 무렵 정수기를 들여다 팔면서 사업은 내리막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정수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86년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정수기를 덤핑으로 넘기고 2천4백만원이란 손해를 떠안은 채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의 좌절감은 실로 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1주일 동안 전국을 무작정 해맸다. 아버지가 파출소에 행방불명신고를 내기까지 했다. 그를 절망에서 구해준 것은 부산에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뒤늦은 결혼을 했다. 고향 어른들끼리 서로 잘 아는 집안이어서 혼담이 오고간지 한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부인 鄭芝英씨(35)는 경남 함양 사람으로, 결혼 전부터 서울에서 침구 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그는 침구 제조업에 손을 댔다. 이 분야에 눈이 밝은‘신부??의 길안내가 큰 도움이 됐다.

 서울 종로구 원남동에 있는 그의 공장에서는 미싱 4대가 돌아간다.“이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고 말하면서도 그는??심각한 인력난 때문에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1년전부터 갑자기 직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5명만 남아 있다. 젊은 이들의 생산직 기피현상만 해소된다면 얼마든지 유망한 업종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물가고 때문에 걱정이란다. 임금은 물론이고 원단값, 공장임대료도 2배로 껑충 뛰어 올랐다.

 신문은 <한국일보>와 <동아일보>를 구독하는데 여간해서는 정치면을 보지 않고 경제면을 펼친다. 정치권 돌아가는 꼴이, 특히 국회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우쳐 주인인 국민들의 마음을 읽으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6공초기까지 3당 합당 이후 그 입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지난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선거에는 참여했다.

 만일 지금 대통령을 만나면 어떤 제안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중소기업인들의 의욕을 살려주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즉 가진 자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금융지원의 폭을 좀더 넓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중소기업의 인력난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가 안정되고 임금이 안정되고, 그리고 근로자들이 희망과 의욕을 가지고 있을 때 인력난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평균한국인 심영호씨는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원인들을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범죄가 급증하는 원인을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가진 자들, 부동산으로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오른 졸부들의 과소비를 보는 모가진 자들의 심사가 법죄심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물론 각자의 인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그는??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들의 자각과 솔선수범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융실명제나 토지거래신고제가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 것도 다 기득권층들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인이 소형승용차를 손수운전하고 가진 자들이 자중한다면??사회는 자연히 아늑해질 것??이라고 평균한국인은 말했다.

“통일되야 진정한 안정 가능??
 “정치안정이 경제안정의 전제조건이지만 군사분계선이 있는 한 진정한 경제안정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통일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는 나름의 식견을 갖고 있다.??우리 국민은 안정다운 안정을 아직 누리지 못했다??는 그는 “통일이 되어야 진정한 안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통일 및 변혁운동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학생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학생이란 신분을 망각하면 더 큰 혼란과 피해가 온다??면서 그는 국회가 하루빨리 제 기능을 발휘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고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지은지 23년째 되는‘허름한??국민주택이다. 일전에 아파트에 사는 심씨의 친구 가족이 이 집을 찾아왔을 때 대문을 들어서던 그 친구의 아이들이??아빠, 이것도 집이야???라고 물어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집을 사기 전부터 지금 집에 전세를 들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올해로 16년째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이 동네‘토박이??다. 집을 안식처가 아닌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삼는 세태에 비하면 그는 평균적이지 않다.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일곱 번이나 신청을 했지만 다??떨어졌다.?? 그러나 그의 부친이나 아내도 그처럼 아파트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지금 집에 정이 너무 들었고 이웃들이 좋은 것이다. 내년쯤 집 앞에 소방도로가 나면, 집을 헐고 새로 지을 참이다.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이 늘 앙금처러 남아 있는 그는 학사고시에 합격, 경영학 학위를 받는 것이 유일한 개인적 소망이다. 공장을 꾸려나가는 것을 이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홀아버님의 노후를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과 유치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이 잘 자라나 주는 것이 큰 소원이다. 미국으로 유학간 남동생도 이젠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을 잡아 큰형으로선 한숨 놓을 수 있게 됐다.

 맞벌이인 이들 부부가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일때무에 늘 밖에 있어 아버님과 아이들에 소홀한 것??이다. 심씨부부는 그래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요일 아침이 더없이 소중하다. 지난 엿새 동안의 미안함을 이날??벌충??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로 나가 함께 놀아준다.

“재산은 사회의 향기가 돼야 한다??
 가정과 공장을 오가는 심영호씨에게 국민학교와 진주중고 동창회 등‘학연??으로 맺어진 3개의 친목단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재경 진주고 총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다. 특히 두달에 한번씩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몽우회??와??배영회??를 통해 더불어 살기와 친구의 소중함을 경험한다. 다들 대학을 나와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에 속하지만 그에겐 격의없는 친구들이다. 고향을 떠난 그에겐 30년동안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도 있다.

 평균한국인 심영호씨는“받을 때보다 베풀때가 기쁘다??고 말했다. 한때 그는 경북 김천오지에 사는 소녀가장에게 매월 성금을 보냈으며, 군과 경찰에 있는 친구들에게 라면이나 과일 몇 상자를 사들고 가??부하들과 회식이나 하라??며 놓고 온다. 공장에서도 한달에 한번씩 직원들과 회식을 하고 가끔 디스코장에도 함께 간다. 재산은 있으면 더 좋은 것이지만, 그 재산은??사회의 향기가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평균한국인 심영호씨가 갖고 있는 상식의 잣대와 소박한 삶의 모습은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의 오늘을 둘러보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뉴스와 소문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비상식과 반인간적 행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 등은 어쩌면 지나친‘과민반응??일지도 모른다.

 리 사회를 우리 사회답게 하는 에너지와 우리 사회를 그래도 살만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근거는 다름아닌 심영호씨같은‘드러나지 않는 많은 평균한국인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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