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또다시 덮친 기름값 공포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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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두자리물가 걱정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원유수급 차질에 따른 국내 경제 전반에 걸친 주름살이 깊어지게 되었다. 이라크의 침략 행위는 이미 시작된 고유가시대를 더욱 재촉하고 3차 오일쇼크 가능성을 앞당김으로써 성장과 안정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국내 경제정책 방향에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비싼 기름값은 결국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라는 두 가지 압력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있었던 두번의 석유파동이 국내경제에 준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73년 일어난 1차 오일쇼크로 국내유가는 2년간 30% 인상되었고 전기료 등 주요 공공요금과 생필품값도 동반 상승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73년 8.5%에서 다음해에는 26.5%, 75년엔 26.4%까지 천장부지로 뛰었다. 경제성장률은 73년 13%에서 다음해 8%, 75년엔 6%로 떨어졌다. 2차 오일쇼크 때의 피해는 더욱 컸다. 79년 이란 회교혁명으로 시작된 2차 오일쇼크로 국내유가는 6개월 사이에 1백50%나 인상되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8년 16%에서 79년엔 21%, 80년엔 32%로 뛰었다. 78년도 10%였던 경제성장률은 79년엔 7%에 그쳤고 80년엔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했다. 중동의 화약고가 불 붙으면 대체로 그 파급효과는 2개월 안에 국내에 미치고, 2년 이상의 긴 세월이 지나서야 겨우 그 충격이 가라앉았다. 그때마다 큰 대가를 치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소비절약, 환율 및 금리 인하, 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물가통제 등으로 그에 대응해왔지만 국내외의 경제상황이 변화한 지금 당시의 대응책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석유비축과 석유사업기금등 완충장치가 마련돼 있으므로 국내 석유수급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에너지 전문가들도 1·2차 오일쇼크 때 발생했던 일대 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직 국내 유가가 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사태의 간접적인 영향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일론·플라스틱 등 모든 석유 제품의 기초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이미 70% 이상 폭등했다. 선박연료인 벙커C유도 최근 2배 이상 올랐다.

 건설업체가 받는 타격은 더욱 심각하다. 가뜩이나 대금결제가 지연되어온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건설공사 대금을 회수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건설부에 따르면 현대건설 등 국내 건설업계는 9억2천만달러의 이라크 미수금을 안고 있다. 또 쿠웨이트도 6천6백만달러의 미수금이 있는 것을 집계되었다.

 이밖에도 양국으로 수출하는 상품 가운데 3억8천3백만달러어치가 선적이 지연되는 등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수출업체들은 항해중인 선적물량을 인근 두바이에 하역, 현지에서 판로를 모색하거나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릴 계획이다. 한편 수출신용장을 받아 제품을 생산중인 업체는 수출 대금을 못받을 것을 우려, 할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일합섬의 경우 모포등 30만7천달러어치를 수출했으나 대금을 아직 받지 못했고, 삼성물산은 양국에 철강·비디오테이프 등 2백60만달러어치를 선적하지 못한채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1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국제원유가(OPEC 평균 유가)가 분쟁 전의 배럴당 17달러에서 올 연말 22~23.5달러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즉 사태가 장기화되어 국제 원유수급에 계속 차질이 생길 경우, 유가는 3/4분기에 배럴당 21~22달러, 4/4분기에 22~23.5달러의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심리적 압박과 OPEC강경파들의 득세로 유가는 3/4분기에 19~20달러, 4/5분기에 19.5~21달러로 사태 발발 전보다 2.5~4달러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국제원유가가 1달러 상승할 경우, 국내 석유류 제품원가에 약 5% 상승요인을 가져올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반 제조업종의 원가부담은 평균 0.1% 정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연내 원유 도입가가 배럴당 25달러를 넘지 않을 경우, 국내유가를 올리지 않는다는 기본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이미 에너지 과소비를 몰고온 저유가 정책이 심한 비난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고유가시대가 사실상 시작되었기 때문에 국내 유가인상은 시간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은 다소 둔화되어 예상치인 9%에 못미치는 8%대에 머무르고, 이미 정부 억제목표를 깬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82년 이후 처음으로 두자리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논란이 일었던 석유사업기금 5조원 가운데 기금의 주목적인 유가 안정과 수급확보에 동원될 수 있는 재원은 3분의 1밖에 안된다. 그나마 정부가 재정사업재원으로 거의 다 돌려 쓴 상태여서 실제 가용 여유는 4천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방만한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이 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 기회에 우리는 에너지정책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10여년 전의 난국이 내일이라도 재연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보다 튼튼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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