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숨통조르기에 이라크는 장기전 태세
  • 하창섭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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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예멘 등은 외세개입 맹렬히 비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점령과 이에 대한 미국 등 서방국가의 강경대응으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던 ‘페르시아?의 위기’가 사태 발생 10일이 지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8월12일 한편으로 전쟁태세를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아랍점령지 철수 △미국 및 여타 외국군의 페르시아만 지역 철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 등을 전제조건으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에 관한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후세인 대통령이 내건 전제조건은 대체로 이번 사태를 아랍권과 ‘외세’사이의 대결로 변질시킴으로써 아랍세계 내부에서조차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자신의 입지를 만회해보겠다는 다분히 전략·선전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후세인이 처음으로 타협의 여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향후 사태발전과 관련, 국면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세인 대통령은 이같은 유화적 제스처와 함께 전투태세도 함께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이라크가 和·戰양면작전으로 사태를 장기화시켜날갈 심산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라크는 남부 공군기지에 이미 화력을 집중 배치해놓고, 이어 함정공격용 중국제 실크웜미사일을 쿠웨이트 해안에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12일 이집트의 <알 아람>지는 보도했다. 후세인은 이라크 여성들에게 서방의 경제제재와 전쟁위협에 맞서 ‘지하드’(聖戰)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후세인 대통령의 노선을 지지하는 일단의 아랍 비행조종사들은 ‘이라크를 수호하기 위해 순교자로서 죽겠다’는 결의 아래 페르시아만의 미국함대에 대한 ‘자살공격’을 감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해졌다. 이라크는 터키 국경 부근에도 병력을 배치해놓고 있다.

 이라크가 사태 초기의 강경일변도 전략에서 이처럼 화·전 양면노선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對이라크 대응태세가 예상 밖으로 일사불란하고 강경한 데다 후세인 자신이 아랍세계에서조차 거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위기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소련과 중국까지도 이번 사태에서 이라크에 등을 돌리고 미국에 동조 내지 불개입 자세를 보인 것은 후세인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전개였을 것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에 대한 ‘외세의 개입’을 비난하고 있는 나라는 요르단 예멘 팔레스타인 쿠바 북한 등에 불과하다.

 한편 아랍연맹의 대다수 회원국은 지난 10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열린 긴급정상회담에서 이라크의 침공으로부터 페르시아만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랍합동군의 파견을 결의함으로써 강력한 反이라크 공동전선을 펴기 시작했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사우디왕조 타도와 회교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회복을 선언한 직후 열린 이 회담의 주 목적은 아랍연합군의 구성문제였다. 20개 회원국 가운데 이집트 시리아 등 12개 회원국이 찬성하여 통과된 7개항의 결의안에 따라 이미 이집트군과 모로코군 각기 5천명이 사우디에 도착, 유엔 다국적군과 합류한 상태다.

 이번 회담을 주최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은 미군과 유엔 다국적군의 개입을 정당화하면서 아랍합동군의 구성도 추진하는 일종의 ‘아랍적 체면책’을 모색하고자 했던 것으로 외교관들은 보고 있다.

 이는 카이로회담에서 나온 7개항결의안이 아랍합동군의 파견을 결의하면서도 그것이 “사우디와 다른페르시아만 국가들의 병력파견 요청에 따른 것”임을 강조, 이번 조치가 자위권적 조치임을 명확히 해둔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 당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합동군을 구성키로 한 배경 가운데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국제적 해결책이 모색되는 동안 합동군을 쿠웨이트에 파견, 그곳에 주둔중인 이라크 군을 대신토록 할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아랍권을 분열시키지 않으면서 문제해결을 도모, ‘아랍의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코자 하는 무바라크의 야심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쿠웨이트침공 배경에는 아랍권내에서의 그의 ‘지도자적’ 이미지 구축도 포함된 것으로 분석됐었으나 그러한 이미지는 뜻하지 않게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돌아간 느낌이고 후세인의 앞날에는 오히려 정치적 위기가 도사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카이로회담은 反이라크 공동전선이란 일차적인 목표를 이뤄냈다. 하지만 요르단 리비아 예멘 수단 등에서는 미국의 사우디 파병에 대한 강력한 반미운동도 일고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이것이 향후 사태 발전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가해지고 있는 ‘범세계적 차원의 대이라크 경제제재 조치는 후세인 대통령에게 크나큰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해상봉쇄를 위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페르시아만에 배치된 미 군함들이 이라크의 석유 선적을 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케네벙크포트에서 휴가중인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모든 것이 미국의 봉쇄조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대이라크 봉쇄조치가 매우 철저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의 대이라크 해상봉쇄가 본격화되고 서방 각국의 ’다국적군‘은 페르시아만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다. 지난 10일 브뤼셀에서 열린 16개국 나토 외무장관회의는 이라크를 제재하기 위해 나토회원국들이 개별적으로 다국적군 참여 여부를 결정,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미군 및 영국군과 공동 군사작전을 펼 수 있다고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사태 초기부터 미국과 공동 보조를 취해왔던 영국은 토네이도 지상공격기 12대를 페르시아만으로 추가 발진시키고, 페르시아만 주둔 영국군이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미 스페인도 다국적군에 해군을 보낼 준비를 갖추었다고 나토에 통보했고, 서독의 슈톨텐베르크 국방장관은 서독함대가 페르시아만으로 떠난 미함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중해에 파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국의 다국적군 창설 제안에 소극적 입장을 보이던 프랑스도, 지난 10일 미테랑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갖고, 중동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아랍국들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 미국처럼 사우디와 아랍국들의 군사 및 기술지원 요청에 적극 호응하겠다고 선언해 ,공군력에 이어 지상군의 파병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밖에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터키 등 서방 각국의 함대 파견 및 군사기지 제공 움직임이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중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최근 카이로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듯이 소련도 사우디측에 군사력을 지원하고 해군을 파병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점이다. 소련은 그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의 참가를 거부하고 유엔을 중심으로 한 평화유지군의 파병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또 한가지 문제는 서방각국의 다국적군 참여가 지상군 파견으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여부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행상봉쇄에만 집중할 뿐 사우디에 파견된 미군과의 지상 공동작전까지 확대될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은 지상군의 사우디아라비아 파견으로 인한 부담을 덜기 위해 다른 나토 동맹군들의 지상군 파견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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