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재벌들에 빙하기 예고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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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규제??여론 업고 현대에 본때…?? 6공 치적??만들기說도

 “정치적 관심에서 한국은 지금 70년대에 중화학공업육성책으로 너무나 비대해진 재벌이 나라 전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문제에 직면했다…미래를 위해서는 한국의 노동자를 더 경쟁력 있게 하고, 재벌들이 애국적인 자세를 지키게 하는 데 국가 권력이 사용되어야 한다…한국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권위주의와 기업주의를 유지하는(점차 부드럽고 사회적인 형태로 옮아가야 하지만) 현명함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 10월초 21세기연구원(원장 徐相穆)초청으로 내한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이 찰머즈 젠슨 교수는‘한국의 자본주의 어떻게 운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벌의 힘이 커져서 국가 권력에 부담이 되고 있으므로 국가 권력은??요령껏??재벌을 다스려야 한다는 취지였다.

 재벌들에게는 젠슨 교수의 말이 심상치 많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들에겐 그의 말이 재벌에 대한‘집중포화??를 알리고 예고쯤으로 비쳐졌음이 틀림없다.

젠슨 교수 예고탄“국가가 재벌 다스려야?? 
 올해 들어 부쩍 재벌들은 이른바‘재벌해체론??이라 불리는 획기적인 경제력집중 완화 대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재벌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고, 내년부터 시행될 7차 5개년 경제사회개발계획의 특별과제 가운데 하나로 경제력집중 완화대책이 지정됐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재벌들은 정부가 획기적인 재벌규제정책을 은밀하게 연구한다는 의혹을 떨치지 못한다.

 올봄 朴泰俊 민자당 최고위원은 포항종합 제철연구소에 소유와 경영 분리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연구소측은‘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제3자??인 서울대학에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또 경제기획원 산하 국민경제제도연구원에서는 최근 일본의 재벌이 맥아더 장군에게 일거에 해체된 과정을 연구했다. 재벌들이 일본에서처럼 급진적이고 강압적인 조처가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재계는‘현대파문??으로 그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었다고 확신한다. 정치적으로 큰 호재가 없는 정부가 반재벌여론을 등에 업고??치적만들기??용으로 재벌규제정책을 활용하고 있으며 현대가??시범 케이스??라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의 한 관계자는??설마 설마 했다. 하지만??현대파문??이후 정부의 재벌에 대한 정책이 순수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심지어 재벌규제처럼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정책은 대중적 기반이 약한 대권주자에게 꼭 필요한 것인 만큼 집권당내 측정계파의 대권시나리오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분석조차 나오는 실정이다.

 재벌들로부터 눈총받는 연구를 진행하고있는“재벌들의 시각이 침소봉대된것??이라고 주장한다.??소유분산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제시를 끝으로 연구는 거의 끝났다??면서??그 프로그램 가운데 새롭거나 의미 있는 것은 없다??고 밝힌다. 그는 이 연구결과가??민자당의 재벌정책을 위한 기초자료로 쓰이지는 않을 것이며 포철이 다른 재벌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경제제도연구원의 연구는 더욱‘우스운??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거느린 연구원들을 통폐합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내년 한국개발원(KDI)에 흡수될 이 연구원은 그 전에 독자적인 연구영역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대상으로 공정거래와 경제력집중완화 분야를 선택했다. 굳이 일본의 재벌해체과정을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은 역사학으로 일본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한 연구자의 발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경제력집중완화정책에 몰두하는 연구자들은 한결같이“재벌규제정책을 정권 말기의 민심수습책으로 봐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벌들이 우려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

 경제력집중완화대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맨처음 실시된 것은 74년의‘5?29조치??이다. 이때 정부는 대기업의 공개를 꾀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유도하려 했으나 제도적 장치가 모자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80년??9?27조치??에서도 기업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부동산 소유를 제한하고 여신관리를 강화하려 했으나 사후관리가 잘 안돼 중단했다.

 경제력 집중에 대한 법적 규제는 81년‘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법은 뭔가 새로운 경제개혁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김재익씨가 강력히 추진하여 제정되었다. 당시 이 법 제정을 주도했던 실무진들이 재벌규제만을 위한 법이라고 볼 수는 없는 이 법의 제1조에??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라는 목적조항을 삽입하면서 이 법은 경제력집중방지와 관련된 중요한 법이 되었다. 86년말에는 계열회사 간의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총액을 회사 순자산의 4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실체조항이 삽입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재벌규제법이 되었다. 90년초에는 공정거래법을 집행?감독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은행과 보험사의 상호출자도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당시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야당쪽의 강력한 의지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 과정을 보면 재벌규제정책은 재계의 지적처럼 집권세력이든 반대세력이든 자신들이 개혁세력임을 내세우는 근거로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벌규제조치의‘뒤끝??이 항상 신통치 않았던 것도 이대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산하 경제정의연구소 姜哲圭소장은??6공화국이 실천한??5?8부동산투기대책??도 토지과표를 현실화하고 위임받은 토지를 실제로 매각하는게 핵심인데, 핵심을 제쳐두는 바람에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6공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실질적으로 경제력집중완화대책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11월12일 7차5개년 계획을 확정하면서도 재벌의 소유분산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30여개 분야를 경제력집중대책 특별과제로 선정해 정밀하게 연구한 사실은 언론을 이용하려 하는 인상을 준다.“정부가 종전의 5개년계획과는 뭔가 다르게??히트할??소재를 찾으려 고심했다는 것??이 정책협의에 참여했던 한 실무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3공 이래 여섯 번째 빼든 칼
 최근 추진되는 재벌규제정책은 경제정책의 상두마차인 崔珏圭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와 金鍾仁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지론??에 따랐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기획원 실무진들도 재벌에 관해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재벌규제 정책은 정권의 의지가 아니라 실무진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자부심이다. 공정거래법 제정 때부터 경제력집중 대책에 깊이 간여해온 KDI의 李奎億선임연구위원은??재벌규제조치가 우리나라의 발전단계상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방향을 7차 5개년계획에서 암시한 것처럼 소유를 분산시키고 그룹중심 경영을 개별 기업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주주의 평균 내부지분율이 약 50% 선인 재벌 주력기업의 경우 자분율을 자율적으로 하향조정하여 금융기관의 주식투자를 늘리고, 이 금융기관의 상당한 지분을 국민에게 돌린다는 복안은 주로 소유분산을 겨냥한 것이다. 상호지급보증제도를 철폐하고 계열기업간 내부거래를 더욱 엄격히 감독하며 그룹별 여신관리제도를 기업별로 바꾸겠다는 것도 그룹경영체제를 개별기업체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 과거처럼 고위층의 정치적 동기가 개입했는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중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경제력집중대책의 흐름 속에서 세인들의 눈에 공정하게 비치는 조처들이 나오지 않을 경우 정부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업구조 조정을 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재벌과 힘 겨루기를 하면서 국력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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