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창, 최형우 겨누다
  • 서명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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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 주도.단체창 선거 등 다목적 … 내무부 국감이 최대 격전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아무리 날카로운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 둘이 겨루면 어느 쪽이 이길까. 정기국회 초반부터 민주당은 중점 공격 목표를 분명히하고 있다. ‘민주당의 창’이 겨누는 최종 목표물은 김영삼 정권의 최고 실세로 꼽히는 최형우 내무부장관이다.

 민주당은 국정감사에 돌입하기 전에 이미 공격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민주당은 9월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내무 인책을 강력히 촉구했다. 행정구역 개편 파문과 인천 세무비리, 지존파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 북구청 세무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최기선 인천시장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해임 요구 공세를 펴면서도 최내무에 대한 공세는 밋밋하게 전개했던 민주당이 지존파 이후 최장관을 목표를 설정했다.

 당 지도부와 협의를 거친 민주당 대변인실의 끈질긴 공세는 9월29일 국무총리의 사과성 기자회견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은 9월30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애꿎은 총리만 사과하고 실세 장관은 뒤에 숨어 있다. 국민이 납득하고 공무원이 분발하기 위해서는 특단 조처가 필요하다??라는 논리를 내세워 최내무 인책 퇴진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YS와 DJ가 벌이는 ‘심리전’의 연장
 그러나 민주당의 장외 공세는 신호탄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최장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인다는 내부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민주당은 9월29일 전남 경찰청 현지 감사에서 연쇄 살인 사건을 따지고 10월4일 인천시 감사에서 북구청 사건을 집중 건로하면서, 치안 부재를 성토하고 정부의 감독 소홀을 부각했다. 이런 정지 작업을 바탕으로 민주당은 13,14일 이틀간 내무부 감사에서 행정구역 개편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행정 미숙을 집중 거론함으로써 최내무에 대해 대대적인 인책 공세를 편다는 전략이다. 결국 10월은 현 정부 최고의 실세를 겨냥한 야당 대공세의 달인 셈이다.

 민주당은 왜 이렇듯 집요하게 최내무를 물고늘어지는가. 물론 민주당 관계자들은 국가행정의 근간인 내무 행정과 치안을 지휘하는 사령탑이 최근 국민에게 엄청난 불안감을 안겨 준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가 관측통들은 최장관에 대한 야당의 가을 대공세가 이런 표면적인 명분에도 다목적 정치 효과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한다. 즉 이기택 대표를 비롯한 야당 지도부가 정치의 주도권 경쟁 구도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실세 장관 흠집 내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의 대공세에는, 현 정권을 주도하는 민주계의 좌장인 최장관을 집중 공격함으로써 민주계의 정국 구도를 헝클어트리고,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계 내분과 민정.민주 계파 갈등을 또다시 건드린다는 전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야당의 공세는 김대중 아.태 평화재단 이사장의 미국 방문을 전후해 불거지지 시작한 YS.DJ 진영 간의 치열한 심리전과 공방전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승주 장관을 급파해 김이사장의 방미 효과를 희석시킨 김영삼 대통령에게 간접적인 타격을 주려는 의도에서, 동교동계 의원들이 김대통령의 측근인 최장관 공격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최내무는 ‘행정 개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행정구역 개편을 밀어붙이면서 민주계의 내분과 민정계 중진들의 반발, 일부 지역의 여론 악화로 말미암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도 행정부내 최대 실세이자 민주계의 강력한 구심점이라는 그의 위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막강 실세라도 돌발 사건에는 속수무책
 행정구역 개편안을 둘러싼 잡음과 인천 북구청 사건 여파에도 불구하고, 최장관은 9월23일 단행된 6개 시장.도지사 인사에서 자기 복안을 그대로 관철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인천 시장만 경질, 나머지는 정기국회 이후 인사’라는 당초 구상이 ‘정기국회 이전 6개 시장.도지사 물갈이’라는 쪽으로 급선회한 것 자체가 최장관의 강력한 건의 때문이었다. 더욱이 새로 임명된 6개 시장.도지사 자리에 내무 관료 4명이 발탁됐다.

 시도 인사에 내부부 관리들을 발탁하는 것은 관례지만, 본청 1급직을 한꺼번에 시장.도지사에 임명한 사례는 보기 드문 일이다. 역시 최장관의 힘이 세기는 세다는 말이 관가 주변에 나돌았고, 내무부 공무원들의 사기는 한껏 올라갔다.

 최근 청와대와 민자당은 자치단체장 후보 전략을 세우면서 야당이 내세울 정치인 출신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행정.경영 전문가 출신을 내세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알려진다. 그럴 경우 최장관이 형성해 놓은 내무부 인맥이 여권이 단체장 후보로 대거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민자당 일각에서는 최근 민주계가 주도한 민자당 부실.사고 지구당 조직책 물갈이도 최장관의 작품이라는 설이 무성하다.

 정원을 주도하는 민주계의 좌장이라는 위상 역시 아직까지는 탄탄하다는 중론이다. 한때 행정구역 개편 논의 과정에서 최장관이 주도하는 개편안이 부산.경남 출신 의원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사태가 벌어지긴 했지만, 최근 민주계의 흐름은 ‘우리가 흩어져서는 안된다. 다시 뭉쳐야 한다’는 쪽으로 형성되고 있다. 재결속의 구심점은 물론 최장관이다. 

 최장관의 위상과 영향력은 서울 구기터널 근처 자택을 찾는 보도진과 방문객들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장관은 내무부장관 취임 후인 지난 3월 오랫동안 터잡았던 성산동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택에는 아침 저녁 짬에 잠깐만이라도 최장관을 만나려는 면회객과 방문객이 연일 끊이지 않는다. 매일 아침 6시부터 북한산에 올라 맨손 체조를 하는 그의 산행에 동행하는 사람이 십수 명에 이를 때도 있다.

 외부에도 치열한 공세와 여권 내부의 은밀한 세 싸움 속에서도 갈수록 탄탄한 위상을 구축해 가는 최장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배경은 위기일수록 정면으로 대응하는 저돌성과 돌파력, 민주계 내의 탄탄한 정치적 기반, 김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경험상 대통령 의중 읽기에 누구보다도 밝은 점, 대통령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현철씨와의 도타운 관계 등 여러 각도에서 설명된다.

 야당의 끈질긴 최장관 인책 공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행정구역 개편은 방법론과 시기에 문제가 있었지만 행정 개혁을 위해서는 누군가 서둘렀어야 하는 일이다????행정 비리와 끔찍한 대형 사건은 장관 한 사람을 문책한다고 일거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며 지속적인 개혁과 처방이 필요하다??면서 단호하게 쐐기를 박고 있다.

 하지만 국정감사라는 절호의 장을 십분 활용한 야당의 공세는 막강한 방패를 가진 최장관에게도 엄혹한 시련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장관은 야당의 국정감사를 눈앞에 둔 심경을 “공부하는 자세로 임하겠다??라고 밝히면서 공부치고 쉬운 공부가 있는가 라고 반문했다.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최장관이 팔짱만 끼고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다. 최장관은 국감에 앞서 민자당 내무위 소속 일부 중진 의원들을 야권의 공격에 맞대응할 수 있는 소장 민주계 의원들로 교체해 달라고 당 지도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이 낌새를 알아챈 일부중진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결국 내무위 교체 폭은 차수명 의원 등 2명으로 조정됐지만, 최장관이 이번 국감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당의 공세도 공세지만, 최장관에게 더 결정적인 복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돌발 사건이다. 최장관의 한 측근은 “국감 기간에 내무부 산하 기관에서 비리나 대형 사고가 터지면, 아무리 최장관이라도 버텨낼 지간이 없을 거 같다??라고 걱정했다. 최장관이 책임질 사안이든 아니든, 야당의 맹렬한 인책 공세를 뒷받침할 사건이 생기면 여권 상층부가 더 이상 최장관을 보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장관을 둘러싼 창과 방패의 싸움, 그 승패는 최장관 개인의 정치 행로는 물론 여야의 지방자치 선거 전략과 향후 정국 구도와 관련해 눈길을 끌고 있다.
徐明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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