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움직이는 여성지도자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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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여성지도자는 출신조건 경력 그리고 활동영역에 따라 몇 가지 부류로 나뉘어진다.

 초대 여맹위원장 朴正愛(83)와 최고재판소장을 지낸 연안파 출신 許貞淑(82) 등은 제1세대 여성지도자의 간판스타이다. 이들은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부 수립 당시부터 맹활약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은퇴한 상태이다.

 김일성의 친인척은 대부분 고위직을 거쳤다. 후처 金聖愛(60)는 여맹위원장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을 맡고 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여맹은 한때 회원 2백70만명을 자랑했지만 김정일 후계체제가 강화되고 그와 본처 소생 김정일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회원수가 20만명으로 격감했다. 김일성의 전처 소생인 金京姬(42)는 당중앙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맡고 있다. 김일성의 사촌여동생이며 최고인민회의 의장 楊亨燮 (67)이 처 金信淑(사망)은 사회과학원 부원장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장을 지냈고 역시 사촌 여동생인 金貞淑은 전 조평통위원장 許錟의 부인으로 당중앙위 후보위원이다. 실무경력이 필요한 정무원에는 친인척 가운데 아무도 진출하지 못했다.

 몽양 여운형의 딸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呂燕九(63)는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인물이다. 그는 이화여대 재학중 47년 월북해서 주로 대남 관련 기구에서 활동했다.‘노력영웅??칭호를 받은 여성들도 대거 최고인민회의에 진출하고 있다. 이 그룹에는 김락희 고금순 강명옥 리계산 이음전 김영숙 등이 있다. 백설희는 신품종 볍씨개발로 김일성으로부터??숨은 영웅의 표본??칭호를 받고 최고인민회에 진출했다.

 최고인민회의 여성대의원이 1백30여명(21.3%)인데 비해 전문관료들이 일하는 정무원에는 간부여성이 드물다. 정부수립 후 지금까지 배출된 여성장관은 겨우 5명뿐이다. 金福信(65)은 방직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정치국 후보위원 겸 중앙위원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별히 학력은 없지만 실무경력을 기초로 현재 부총리 겸 경공업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제통이다. 현재 권력서열 21위로 여성으로는 최고위 인사이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尹基貞(63)은 정무부 재정부장을 겸임하고 있는 재무통으로 조평통 부위원장 尹基福의 동생이라는 설이 있다. 인민배우 박영신은 국립연극극장 총장과 정무원 문화상을 역임했다.

 노동당에서 일하는 여성의 수는 많은 편이다. 남로당원으로 인천전신전화국 교환수출신인 鄭敬姬(60)는 75년 노동당 연락부장을 거쳐 당중앙위 정치위원에까지 올랐다. 그녀는 맹렬한 대남 첩보활동으로 김일성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 李善實은 권력서열 25위로 공식적으로는 북한여성계의 제2인자이지만 뚜렷한 활동은 없다. 崔庸建 전부주석의 王玉煥과 金一전 부주석의 처 許昌淑은 당직과 함께 여맹중앙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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