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잘 쓰면 원전은 안전”
  • 여운연 차장 ()
  • 승인 1991.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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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根謨 전 과기처장관

 핵폐기물 저장시설 계획에 따른 안면도 주민의 거센 반발로 지난해 11월 과기처장관직에  서 물러났던 鄭根謨박사(52). 핵물리학의 권위자가 바로 핵폐기물 문제로 7개월만에 장관  직을 떠나게 되자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의‘단명??을 아쉬워했다. 그로부터 만 1년이 지난 현재 아주대 석좌교수로 있는 그는 지난 1년간의 생활이 일생중 가장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의 핵폐기물 처분장이 연내에 결정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해당지역 주민 들과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인간적 요소가 결합된 과학기술 발전을  계속 강조해온 정박사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만나 들어보았다.

대학으로 다시 돌아간 것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전에는 회사 운영하고 정부 일 한다고 우리 사회의 깊은 면에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행정직에서 물러난 다음부터 많은 사회단체와 대학생모임 등에서 강연을 요청해 지방에도 많이 다니다 보니까 넓은 의미에서 사회를 좀더 알게 되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지난 1년 동안 가장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정부에 있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예요.

장관직을 단명으로 끝내게 된 것을 사람들이 아쉬워했는데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국가에 기여할 기회를 가질 의향은 없는지요?
봉사하는 사람은 주인이 필요할 때는 하는 거고, 주인이 쉬라면 쉬는 거지요. 저는 아쉽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또 한 사람이 큰 일을 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시스템이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을 알아 비전을 제시하고, 후임자가 그 비전을 따라오고 그러면 만족하는 거 아니겠어요.

안면도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현재 다시 국내 핵폐기물 처리문제가 발등의 불리 되고 있습니다. 정부도 올 연말까지 핵폐기물 처분장을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 아래 전국 44개 신청후보지 중 7개 지역을 놓고 최종 선정작업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제는 순수한 과학자의 입장에서 오히려 홀가분하게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히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여러 곳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는데 후임자가 일하는 데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을까봐 일부러 언급을 안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핵폐기물 처분장을 쓰레기장 같이 생각하는데 방사능폐기물을 관리하는 데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중간저장도 해야 되고, 중간처리도 해야 하고, 거기에 관한 연구개발도 해야 하고 이런 과정을 다 거쳐야 하거든요. 안면도는 사실 중간저장시설ㆍ원자력2연구소 부지로 당시 대규모 연구단지의 일환으로 하겠다는 거였어요. 영구처분장을 하려면 거기에 필요한 지질학적 문제, 사회적 요건 등이 다시 조사돼야 하니까 하나의 후보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선정됐다는 것은 언론이 곡해했던 것 같고 실제적인 것을 그대로 밝혀주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원자력산업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우리 국민의 과학수준은 낮습니다. 원자력문제에 대한 일을 꼭 비밀스럽게 한 건 아닌데도 원자력의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었어요. 폐기물을 처분하는 것을 단순한 쓰레기 처분장 정도로 생각했지. 거기에서 필요로 하는 단계적 기술과정에 대해서는 아마 언론계에서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작년에 제가 착수한 것은 영구처분장이 아니고 원자력에 대한 장기적인 국가계획이었습니다. 그것이 돼야 그 중 일부인 방사능 폐기물 처리과정의 기술적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다음 어떤 장소가 맞는지 나올 수 있는 것이거든요.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국민의 이해가 얼마나 뒤따르느냐가 중요합니다. 원자력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원자력이 두드러진 거지요. 이를테면 핵폐기물이란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어서 국제적으로 공동연구처분장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중간저장시설은 각 나라가 필요로 하겠지요. 그런데 그 문제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과학기술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비화되지 않았습니까. 그걸 이해 시키자니 시간이 없었어요.

어쨌든 고리원자력발전소만 보더라도 중· 저준위 폐기물 저장능력이 올 연말까지 완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중· 저준위 폐기물의 경우는 95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사용 후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은 97년까지 건설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실 어려운 문제인데 진척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44개 신청지역은 후보지이죠. 벌써 11월 중순이 지났는데 우선 지질조사도 해야할 게 아닙니까. 주민들의 합의도 이루어져야겠고 실무자들의 노고도 많을 것이고 신중한 기술계획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구미 각국도 핵폐기물 처분문제로 고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영국 같은 경우는 성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도 잘하고 있고, 프랑스도 우리 같은 원자로뿐만 아니라 고속증식로를 만들어 발전까지 하고 있어요. 원자력발전을 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리와 월성의 완전 타입이 다릅니다. 고리의 경우 핵연료를 조금 농축해 태우는데 얼마 전 대통령께서 우리는 재처리나 농축을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농축은 항상 외국에 의존하게 되는 거죠. 그건 정책적인 겁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로 원전은 일단 일반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까? 정말 안전한 것이고 또 꼭 필요한 겁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을 정확하고 신뢰있게 응용할 수 있다면 안전합니다. 체르노빌 사고를 볼 때도 거기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안전수칙을 다 어겨버렸어요. 우리는 안전수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 차세대 원자력발전 기술은 사고를 낼래야 내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아무리 안전하다 할지라도 발전소나 핵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서게 되면 생활터전을 잃게 되는 지역 주민들로선 엄청난 타격 아닙니까?
물론 생활패턴이 바뀌어지겠지요. 원자력발전소 자체가 많은 고용기회를 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포항에 포항제철이 들어서 많이 변한 것 처럼 그런 변화가 일어나겠지요. 그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이냐는 가치관과 우리 사회문화의 근본적 문제를 봐야겠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19세기식으로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겠지만. 그 지역으로 볼 때 원전이 들어서면서 절대적으로 손해는 없고 이익만 봐야 하는 경우란 없겠지요.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넘어서 선진화 단계인데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1백% 만족을 주느냐 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모든 사회적 가치관을 수렴해 결정해야겠지요. 원전이 들어서는 곳에서는 그 주변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 관례로 돼 있고, 우리나라도 하게 돼 있습니다. 큰 공장이 들어서 많은 이익을 내게 될 때는 그 열매의 일부가 그 지역으로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장직을 역임하셨기 때문에 특히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 핵안전협정체결 등의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최근 외신은 북한의 핵무기 생산시설이 거의 완성단계이며, 모든 상황으로 볼 때 일반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핵폭탄제조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상황을 보고 북한이 핵무기제조를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언제 어떤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피상적으로 나타난 것만으로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북한이 핵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흘러나오는 정보와 사진을 토대로 추측하고 있는데 어떤 전문가가‘이렇다??고 하는 데는 플러스 마이너스 상당한 오차가 있을 겁니다. 당초에 전문가들은 95년에는 할 것이다 하고 추측했는데 사실 플러스 마이너스 2년을 감안하면 빠르면 93년에는 할 수 있지 않느냐, 그것은 오차의 범위내에 들어가는 것이 되겠죠. 북한이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게 되면 핵사찰을 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지금 핵사찰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당국이 의심을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저들이 핵무기를 만드니까 저렇게 지연시키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북한당국이 핵무기를 만드는 것처럼 보여야 자기네들에게 이익이 있다고 생각해 하는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북한에 있는 원자로는 사실 처음 것은 실험로입니다. 그것을 출력을 올려 움직여 그것 하나만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했어요. 그후에 더 큰 원자로를 지었는데 그걸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있다는 것 자체를 보고 안한 거죠. 위성사진으로는 나타나거든요. 다른 하나를 짓고 있는데 그것도 보고를 안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의심을 자초하는 행위죠. 또하나 공장을 짓는데 스타일이 꼭 재처리공장입니다. 재처리공장은 북한에 당장 필요없는 시설인데 왜 그런 걸 짓느냐,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의심하는 겁니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나라는 그렇게 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왕 신뢰를 못받으니까 아예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해 마치 핵무기를 금방 제조할 것처럼 일부러 보이게 할 수도 있어요. 자기네 외교카드로 쓸 수도 있으니까.

진작부터 과학기술능력 배양의 필요성을 강조해오셨는데 최근 우리의 경제난국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사는 사회를 기술사회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경제활동 하나하나를 분석해보면 과학기술 요소가 대단히 많기 때문이거든요. 미국의 경우 50년대 과학기술 요소가 얼마나 공헌했느냐 물어보면 25%라고 했어요. 요즘은 선진국에서 과학기술 요소가 경제활동의 80%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조사를 보니까 사회경제활동의 15%밖에 안되더군요. 그러면 앞으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그 15%를 80%까지 올려야 된다는 얘깁니다. 그렇게 올리는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이냐, 국민 전체가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겠고, 산업계 공장 하나하나가 연구실화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회 여러 정책들이 과학기술을 유인하는 정책이 되게끔 연구돼야 해요. 그러나 정책담당자들은 그 우선순위를 항상 밑에다 두고 있어요. 앞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가능성은 과학기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노력하는 게 아니고, 그 위에 국가지도자들의 대단한 지도력 발휘가 요구됩니다.

정박사님께서는 최근에 와서는 과학자보다 종교인으로 더 알려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겁니까?
믿음이란 게 이론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체험 속에서 자기가 확신을 갖는 것인데 80년초 귀국 초기에는 그렇게 믿음이 없었어요. 그러다 아주대 교수로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 상실, 인간성 타락, 민주화 갈등, 사회복지 문제에서 사회적 움직임을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믿음이 없으면 도덕성을 회복하기란 참 어렵겠구나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가 치열한 경쟁사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가 돼버렸어요. 그것을 회초리 들고 고친다는 건 더 악화시키는 것이겠고, 믿음 속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더군요.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 진리를 찾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과학은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하나의 소단위 세계이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가 어떻게 생겼고, 우주의 질서를 생각해보노라면 굉장히 종교적이 되고 맙니다. 알면 알수록 아는 게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이론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면 자만이 없어지게 되겠지요.

경기고 1학년 때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가 24세에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자랄 때부터‘ 천재??란 소리가 늘 붙어다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박사님 자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저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어요. 강박감이 있었구요. 신앙을 갖기 전에는‘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학위를 빨리 받아야겠다고 해서 2년 만에 박사를 끝냈는데 사실 박사과정은 좀 오래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20대 박사를 만들자??고 하는데 저는 상당히 문제성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학문을 일생 동안 해야 하는 사람이 젊은 시절에 고생도 해보고, 다른 분야도 보고 그러면서 필요해 공부하는 것이 박사과정인데 우리는 너무 학위 중심으로 따지고 있어요. 과정이 중요한 것인데 외형적?지표적인 것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재 전공인 에너지분야의 기술을 어떻게 첨단화하느냐, 첨단기술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주력할 작정입니다. 지난 1년처럼 세계와 국내를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계속해서 평범하게 노력하는 학자로서 지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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