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패권에 눈먼 중동의 형제나라들
  • 유정열(한국외국어대학교수·중동정치)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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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통치 벗어난 뒤 통합 주도권 싸움 수십년간 계속돼

이집트 중심의 나일강세력과 이라크 중심 바빌론세력은 숙적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대치상황까지 겹쳐 국가간 이해 복잡

이번 ‘중동사태’는 후세인의 ‘위험스런’성격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 지역 국가들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 및 세력각축이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의 원인이 된 이 지역의 국가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이번 사태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쿠웨이트·이라크전쟁은 민족적으로 보면 같은 아랍민족간의 전쟁이고 종교적으로도 같은 이슬람국가간의 전쟁이다. ‘형제끼리’의 전쟁인 것이다. 요즘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아랍세계는 과연 어떠한 곳인가.

 아랍세계는 중동의 일부이며, 중동지역은 일반적으로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사하라사막의 북아프리카지대와 동쪽으로는 남아시아의 서쪽 지대를 포함한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넓은 지역을 말한다. 국가별로는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수단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예맨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 이라크 쿠웨이트 시리아 지부티 등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이란 터키 아프가니스탄 등 비아랍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아랍권은 중동의 핵심이며, 동일한 민족 언어 문화 종교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제1차 세계대전 말기까지 수백년간 오토만제국의 통치를 받아 왔다. 이어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세력의 식민통치를 받다가, 제2차세계대전 후에 여러 국가로 분할되어 독립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랍민족주의운동과 아랍통합운동이 지금까지도 정치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 아랍통합운동의 주도권 싸움 내지 패권 싸움이 수십년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쿠웨이트·이라크 전쟁에서도 다분히 이런 아랍권의 내부정치적인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 이라크는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아랍세계 및 중동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이스라엘도 섬멸하겠다는 것이다. 아랍제국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미 4차례에 걸쳐 전쟁이 되풀이돼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타격을 가하는 사람이 아랍세계의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62년엔 혁신계와 보수계가 무력충돌

 아랍세계를 대표하는 국제기구로서는 45년 3월에 탄생한 아랍연맹이 있는데 이집트 사우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전 북예멘) 및 트랜스요르단(현 요르단왕국) 등 7개국으로 출발, 지금은 20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쿠웨이트사태 때 사우디에 파견할 아랍합동군 창설 결의안에 찬성한 12개국은 이집트 사우디 바레인 지부티 쿠웨이트 레바논 모로코 오만 카타르 소말리아(소말리아는 민족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랍국가라기보다는 인접국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리아 및 아랍에미리트이고 반대한 2개국은 리비아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이며, 기권한 2개국은 알제리와 예멘이다. 요르단 수단 모리타니아는 유보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이 표결 결과를 분석해보면 아랍권의 내부 분열상을 엿볼 수 있고 세력이 재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0년대와 40년대에는 아랍권의 주도권 싸움이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나일강 세력’과 이라크를 중심으로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세력’간에 전개되었다. 52년에 군사혁명을 성공시킨 아랍의 영웅 낫세르가 등장한 후에는 이집트 중심의 ‘혁신계’와 사우디왕국 중심의 ‘보수계’의 대결로 주도권 싸움의 양상이 탈바꿈하였다. 이양 세력간의 군사충돌이 62년의 ‘예멘전쟁’으로 나타났다. 이때 북예멘 혁명군사정궈은 이집트의 군사지원에 의존했으며 붕괴된 북예멘왕정은 사우디로 망명, 사우디왕국의 지원을 받아 참전했다. 역학관계를 보면, 오늘의 쿠웨이트·이라크전쟁은 이 예멘전쟁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다. 즉 사우디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놓고 힘의 대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사우디를 적극 옹호하면서, 아랍합동군 편성을 주도하고 있음은 30년대와 40년대의 이집트와 이라크간의 아랍 주도권 싸움을 연상시켜주는 사태발전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아랍권내의 국제관계는 불안정과 변화로 일관되어 왔으며, 이런 관계가 세계적인 역학관계와 연계되어 있어 중동은 항시 전운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중동을 지배하고 있는 종족은 셈족이다. 셈족은 백인종에 속하며 아랍민족, 유태민족, 아라마익민족으로 구성된다. 모든 아랍국가들은 아랍민족이고 이스라엘은 유태민족국가이다. 아랍민족과 유태민족은 먼 옛날엔 같은 혈통이었으며 이들은 비록 종교는 이슬람교와 유태교로 다르나 언어와 생활양식은 비슷하다. 이슬람교와 유태교는 이질적이라기 보다는 형제종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국가이익 앞에선 민족 동질성도 무색

 나치독일의 히틀러는 셈족에 대해 ‘문명을 파괴하는 민족’이라고 규정하고 그중 특히 유태인을 학살하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만들어낸 훌륭한 민족이며, 인류 문명에 끼친 영향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동의 국제관계를 역사적으로 되돌아 보면 동일민족·동일종교 개념은 국가의 ‘이익’앞에선 무색해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세계의 여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동일성은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분화되고 이질화되어 상호관계가 복잡하게 변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고 일어난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도 아랍국가와 이스라엘간의 전쟁으로 상호 민족말살이 전쟁의 목적이었다기보다 동일선조를 지닌 형제간의 전쟁으로 일종의 땅뺏기 싸움이었다.

 이에 비해 62년의 예멘전쟁은 아랍민족내의 보수세력 대 혁신 군부세력간의 전쟁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8년간이나 계속되었던 이라크·이란전쟁은 아랍국가인 이라크와 非아랍 중동국가인 이란간의 전쟁이었지만 같은 이슬람교 국가끼리의 전쟁이었다. 이때 아랍국가의 포진을 보면 시리아를 위시한 여러 아랍국가가 같은 아랍국으로 아랍연맹 회원국이기도 한 이라크를 비난하며 이란에 동조했었다. 이번의 쿠웨이트사태 때 시리아가 그다지 관계가 좋지 못했던 사우디와 이집트편에 서서 쿠웨이트를 돕기로 결정한 것도 이란·이라크전쟁 때의 입장에 비추어보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의 쿠웨이트·이라크전은 여러 복합적인 국면을 보이고 있다. 아랍세계내의 보수왕정세력 대 혁신 군부세력간의 대립, 아랍국가 대 이스라엘간의 대결로 확산되려는 조짐, 아랍권내와 페르시아만지역의 패권쟁탈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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