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哲彦 재기 노림수 ‘민자당 재편’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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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3월까지 완료 후 정치 전면에 나설 듯…金대표 등 여권내 견제 만만찮아

 朴哲彦의원의 정치 일선 재등장 시기가 정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박의원의 한 측근은 이와 관련하여 “박 전장관이 내년 3월까지는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고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이 말은 내년 3월 이후에는 박의원이 정치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의원은 최근 측근들에게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민자당내 세력 재편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용만으로는 과연 어떤 식으로 당내 세력의 재편작업이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민자당내에서 무언가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3월까지는 세력 재편작업이 마무리된다는 것과 3월까지 백의종군하겠다는 두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결국 박의원은 내년 3월까지 당내 세력의 재편을 끝냄과 동시에 정치 일선에 재등장한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91년 3월이라는 시점은 14대 총선의 열기가 서서히 가열되는 시점과 딱 들어맞는다. 또한 광역의회 구성이든, 자치단체장 선거든 지자제 선거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될 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당정개편이 예상된다.

 박의원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시 정치 일선에 재등장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최근 들어서는 청와대 주변에서 박의원의 재등용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때를 맞춰 박의원의 지론이라 할 수 있는 ‘제2정계재편설’이 다시 등장, 이같은 시각에 무게를 얹어주고 있다.

 

세대교체론과 맞물린 제2정계재편설

 박의원이 지난 15일과 16일 이틀에 걸쳐 현 정치상황과 관련한 적극적 의사표시를 기자들에게 한 것도 표면적으로는 표류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을 앞세웠지만 내면적으로는 정치 전면에 등장하기 위한 ‘워밍 업’이 아니겠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민주계의 한 핵심의원은 이와 관련, “박의원이 화해 제스처를 보내고는 있지만 치고 빠지는 과거의 방식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의 발언도 최근 들어 좁혀지고 있는 듯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대내용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의원의 이번 발언이 민자당내에 ‘세대교체론’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나왔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민자당내 세대교체론은 3김씨 모두를 겨냥하고 있지만 金永三대표최고위원과 金鍾必최고위원, 그중에서도 김대표를 겨누고 있다.

 현재 김대표는 외면상 여권내 2인자로서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민정계 및 공화계 중진의원 그룹 사이에서는 그에 못지 않게 반김영삼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민주계의 젊은 의원들사이에서도 3김씨 퇴진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기도 한다.

 김대표와 밀접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민주계의 한 의원이 생각하는 세대교체론은 이렇다. “평민당의 김대중총재를 이런 식으로 배제시켜 놓아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3당통합 때 어느 한쪽 지역만을 고립시킨다는 커다란 문제에 대해 아무런 자신감이나 대책도 없었다는 것이 현실로 드러난 지금, 결국 그 책임은 김대표 자신에게 쏠릴 것이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있지만 어느 때고 폭넓게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같은 발언은 박의원이 “3당통합이 오히려 지역감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시각이 있으며 통합 후 정치 운용에서도 그런 기미가 보인다”라고 말한 것이나 “통합 후 민자당 지도부는 평민당을 정치 실체로 인정하지 않고 경멸해 결국 통합의 기득권자의 자기 권익 향유를 위한 것으로 비쳐지게 했다”고 발언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박철언 캠프에서 주장하고 있는 세대교체론은 바로 이같은 주장에서 출발한다. 월계수회 소속의 인사들은 정국이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김영삼 대 김대중의 대결구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차기 대권을 가리는 싸움에서도 두 김씨가 다시 격돌하게 된다면 지난번 대통령 선거 이상의 혼란이 닥칠 것이 분명하므로 3김씨를 배제한 차세대 정치인이 나서 대권을 수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같은 정황을 눈여겨 본다면 이번 박의원의 발언이 당내 분위기를 충분히 읽은 다음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내면적으로 공감대를 이루고는 있으나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말하려 하지 않는 미묘한 사안을 앞장서 말함으로써 자신이 정치 일선에 재등장하는 데 필요한 전진기지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민정·공화계, 은근히 박의원 두둔

 金潤煥정무장관은 박의원의 발언에 대해 “그런 생각을 몰라서 얘기 안하는 게 아닌데 모두 각자 나서서 떠들면 어떻게 되느냐”고 박의원의 경솔함을 지적하면서도 “민주계에서 묵살하겠지”라고 말했다. 金龍煥정책위의장도 “그가 걱정하는 지역감정 문제는 민자당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민정계와 공화계가 동시에 박의원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나타낸 것을 보면 이번 박의원의 발언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도 보인다.

 최근 盧泰愚대통령과 박의원의 관계는 지난 4월 정무장관직 사퇴 이전으로 복귀한 것처럼 보인다. 노대통령은 3최고위원과의 청남대 골프회동 하루 전인 지난달 23일 박의원을 청남대로 따로 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소련과의 수교 등 최근의 북방외교가 예상 외로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박의원의 재기용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17일 부임한 예레멘코 초대 주한 소련 영사처장은 “한국과 소련과의 관계 개선이 모스크바와 평양간 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전제하고 “수교까지에는 좀더 시간을 두고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 한·소 연내 수교가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따라서 북방정책에 정권의 생명을 걸다 시피하고 있는 6공의 사정상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점도 박의원에게는 유리한 정황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서는 당장 당으로 복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당 주변의 공통적인 견해다. 박의원이 갈 길에는 아직도 험난한 고비가 구비구비 도사리고 있다. 한때는 김대표가 지난날의 박의원 언행을 용서하고 서로의 공존을 기본 바탕으로 한 제휴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번 파동으로 인해 김대표의 심기가 다시 지난 4월 상태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민정계 중진들의 견제 역시 수그러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당무위원이나 총재 지서실장 자리가 박의원이 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당직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는 김대표가 반대하는 한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뜻한 가슴을 보이는 데 주력할 시기”

 이에 따라 박의원의 정치 일선 복귀는 당보다도 행정부를 경유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가 일각에서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일원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과 관련, 박의원이 통일원 장관으로 기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

 박의원은 현재 청와대 북방정책팀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盧在鳳비서실장, 金宗輝외교안보보좌관, 金鍾仁경제수석이 주류를 이루는 북방정책팀은 지나치게 한·소수교에만 매달림으로써 북방외교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남북관계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을 고립시키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이 박의원이 가지고 있는 불만의 내용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6공의 북방정책을 주도했던 박의원으로서는 통일원 장관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박의원측은 통일원 장관 기용설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백의종군한다고 분명히 말했다”는 것이 박의원측의 입장이다.

 박의원의 측근들은 그를 평가하는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사실을 든다. 냉철한 머리, 따뜻한 가슴 그리고 빠른 발걸음이 그것이다. 박의원 측근들은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박의원이 냉철한 머리와 빠른 발걸음은 충족시키고 있지만 따뜻한 가슴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모자라는 점이 있다고 평가한다. 한 측근은 “현재 박의원은 일반 국민들에게 따뜻한 가슴을 보이는 데 주력할 시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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