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厚淨이화여대 첫 직선총장
  • 김춘옥 실용뉴스부장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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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대학 존재 의의 크다”

 “첫째 의식과 가치의 면에서 남녀의 구분없는 일치성을 지니는 존재, 둘째 능력과 기능면에서 남성적 영역, 여성적 영역을 초월하는 대등관계의 기능을 보여주는 존재, 셋째 남녀간에 동반자적 협동·보완관계를 지속함으로써 상호간의 인격적성장을 지원하는 존재, 넷째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모든 생활양식이 남녀 모두에게 같은 형태로 영위되어 정치와 역사의 책임자로서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역할을 수행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는 존재로서의 여성.”

 ‘통합여성’(Integrated woman)을 내세우며 지난 8월12일 1백4년의 역사를 지닌 이화여대 제10대 총장으로 취임한 尹厚淨교수(58·법학)는 이 대학 최초의 직선 총장. 모교출신, 미혼이라는 전통적 자격요건을 갖추고 선출된 윤총장으로부터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대학과 여성에 관한 의견을 들어본다.

 

● 4백18명교수들(투표자 수는 3백57명)의 압도적인 지지로 총장으로 선출되셨습니다. 선생님의 어떤 자질이 이같은 지지를 받도록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교수들이 그렇게 많은 표로 나를 지지해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다만 내게 던진 표는 나 개인에게 던진 표가 아니라 이화대학에 던진 표라고 생각합니다.

● 취임사에서 오늘의 여성상을 才勝厚德한 통합여성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통합여성은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남성들의 협조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유감입니다.

 남성들은 우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고쳤으면 합니다. 둘째 인간애를 바탕으로 지성과 합리성으로 여성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한편 여성들은 주체의식, 자아의식과 책임감을 철두철미하게 갖고 능력면에서는 남성과는 동업자이고, 의식면에서는 남성과 동지라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심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1886년 단 한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이화여대는 한국여성을 三從之德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등 여성사에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교육이 보편화되고 사회가 다양해지는 데도 이화의 교육은 아직도 ‘여성적’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일제 때 이대 출신 여성들은 교육·계몽·의료사업에 전념했습니다. 해방 이후 54년부터는 이태영여사를 중심으로 가족법개정에 앞장섰고 60년대에는 김활란선생님을 중심으로 초월적 여성을 지향하는 운동을 폈습니다. 70년대에 들어서서는 여성의 본질론·구조개혁론에 기초해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을 병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79년부터 학부에 여성학이 교양강좌로 설치되는 등 그 역할은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60년대까지는 여성의 사회화보다는 교육·사회봉사에 치중했으므로 이대의 역할이 눈에 안 뜨인 것 같습니다. 70년대에 들어와 사회화와 소비자운동을 적극 펼친 결과로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제도권단체나 재야단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대부분 이화 출신입니다. 단지 우리가 좀더 일찍이 여성이 학문한다,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개념에서 탈피해서 인간이 학문한다, 인간이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쪽으로 여성교육을 사회화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여성도 학문의 본질을 추구하는 유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등 가시적인 인재 배출에 역점을 둬야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겨우 10여년 전부터 그점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 취임사에서 이화여대가 추진해야 할 실천적 덕목의 첫 번째로 ‘학문하는 대학, 연구하는 대학의 질적 심화를 보다 강하게 부각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화여대가 최근 특히 남녀공학에 비해서 학문적으로 질이 저하됐다는 점을 의식해서 하신 말씀인지요?

 이화여대의 학문적 질에 대해서는 너무나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70년대 후반부터 이화는 질적으로 꾸준히 향상되고 있습니다. 80년대에 들어서서 소위 비여성학과로 불리는 자연계와 사회계열 학과의 질이 월등하게 높아져 전체적으로 평준화가 됐습니다. 학생수가 많아지니까 그 가운데 아주 처지는 일부 때문에 나온 얘기가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그런 측면에서라면 선진국에 비해 그 수준이 현저히 뒤떨어진 한국대학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화여대 같은 명문대학에서 대학원 시험을 면접만으로 처리하고 있어서 학문적 질에 대한 비판이 나온 것은 아닌지요?

 근래에 와서 대학원 시험을 일률적으로 치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각 과 재량으로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법학과의 경우도 6과목을 시험종목으로 내놓아 3과목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또 각 과에서는 대학 때의 성적을 많이 참조하고 있습니다. 연세대와 서강대와 학점교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곳 선생님들 말씀이 우리 학생들이 안떨어진대요. 제 소원은 외국에 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석·박사를 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기본적으로 어떤 교육을 하고 싶으십니까?

 여성의 인간화를 통해서 전체 인간을 해방하자는 겁니다.

● 10명의 총장 가운데 한국인 총장 4명 모두가 독신이었습니다. 또 이대에는 총장을 꿈꾸는 독신교수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성의 인간화교육을 하기에 독신총장 독신교수들은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애기들을 많이 합니다.

 지금 이대의 여교수들은 기혼이 미혼보다 더 많습니다. 또 앞선 총장들이 미혼이었던 것은 당시의 사회적 여건 때문에 기혼 여교수가 학교행정에 깊이 관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자신의 학문과 학교행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지 않겠어요? 게다가 총장이 미혼이라고 해서 편향된 교육을 시킨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김활란총장도 이미 가정을 갖고도 사회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초월적 여성을 강조했었습니다. 또 학문적으로 성숙했던 분들이라 결혼을 안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총장선출 제1차 선거에서 기혼교수 3명이 5위 이내에 포함됐습니다. 지금 시대는 기혼이냐 미혼이냐에 따라 여성의 사회생활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 인간은 어차피 남녀가 함께 살아야 하므로 남녀공학에서 남성과 함께 20대를 보낸 여성이 더 절실하게 여성의 인간화에 앞장설 수 있지 않을까요?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성은 사회에서 남녀의 차별이 삼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느낍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눅이 들어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자대학에서는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은 남자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므로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습니다. 또 여성이 대학 내의 단체장직을 맡을 수 있으므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도 있고 또 여성교수가 많아 미래상을 그려보기 쉽습니다. 남성교수도 있으니 균형적인 인간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대의 단점은 같은 연배의 남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떠한 행태를 보이는지 부닥쳐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이대를 남학생들에게도 입학시험부터 전면 개방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잘 아시겠지만 우리 사회에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과 실천이 가시화될 때까지 여자대학의 존재의의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남녀공학 문제를 많이 거론하고 있어요. 그러나 보세요. 여자대학이 남녀공학을 하면 남녀공학이 아닙니다. 남자대학으로의 흡수죠. 그렇죠? 김부장께서는 남녀공학 대학을 다녀서 아시겠지만 교육의 내용이나 시설이 남학생 중심이되지 남녀를 같은 차원에 둔 인간교육이 되지 않습니다. 남녀공학 대학에서 여학생수는 많아야 20∼30%입니다. 여교수가 5%도 안됩니다. 이것은 남녀공학이 아닙니다.

● 남성총장이 언제쯤 나오리라고 봅니까?

 여성들이 주요한 자리에 많이 있는 것이 사회발전을 위해서 좋습니다. 그런 자리가 몇 개 안되는데 그나마도 남성들이 차지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6년 임기 동안 이화여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예정입니까?

 우리 학교의 사랑과 섬김, 진리와 정의와 평화의 전통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이 바탕 위에서 국제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시대에 맞게 이화대학이 대학으로서의 가치와 의의를 발휘해서 한국민족사와 여성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취임사에서도 밝혔듯이 학문하는 대학, 여성의 인간화, 기독교 교육이념의 내면화, 여성의 기여확충이라는 네가지 실천덕목을 정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기획조정실을 기획처로 확대·강화하려고 합니다.

● 국제화 추세에 발맞추시려면 재학중 결혼금지 같은 조항도 폐지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론적이나 이상적으로 말할 때는 재학중에 결혼을 미루라는 말은 좀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죠.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성이 가정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충실하게 대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전통 때문에 여성이 소극적이었는데 대학생활 기간만이라도 착실하게 공부하는 기강을 세워야 하지 않습니까. 남녀공학에서는 결혼을 하고도 학교에 다닐 수 있는데 결혼한 여학생이 몇 명이나 됩니까. 또 남녀공학에서는 결혼을 했더라도 남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표가 안나지만 여자대학에서는 금세 표가 납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흐트러집니다. 우리나라의 가족생활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결혼 자체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지요.

● 윤총장님께서는 그래서 결혼을 안하셨습니까?

 (웃음…) 글쎄요. 공부하다보니.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 다니면서 조교하고, 그러고는 유학가고, 그러면서 공부하고 학교에 매달리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 독신들이 기혼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많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내 일생은 너무 바빴어요. 이북에서 내려온 집안이라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워서 힘들게 공부했어요.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에서 6남매 가운데 다섯 번째로 태어난 윤총장은 15세 때인 47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내려왔다. 이화여고와 이화여대를 다닐 때는 늘 가정교사를 했다.) 스트레스를 느끼고 풀 시간도 많지 않았지요. 초기 전임강사시절에는 밤 10시 전에는 집에 간적이 없었어요. 집에 가면 강의준비를 해야 했고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드러누워서 음악을 많이 들었지요. 유행가 중에서는 김추자 노래를 좋아했어요. 가사와 멜로디가 좋았어요. 남자 중에는 장현 송창식 등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샹송도 많이 들었지요. 클래식으로는 오페라를 아주 좋아합니다. 또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나의 문제로 소화시키는 방향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노력했습니다.

● 마광수교수가 던진 파문이 큽니다. 이화여대에 그런 교수가 있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나는 그분이 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요. (…) 그분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 대학교육의 70%를 사학이 맡고 있습니다. 사학의 재정은 등록금에 90%나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사학발전을 위한 제언을 해주십시오.

 이 문제에 대해 문교부도 기본적으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문제가 워낙 많아 그곳에 지원을 하다보니 대학까지는 못미치는 거죠. 앞으로는 문교부 차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사학에 대한 재정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폈으면 합니다. 한편 문교부 차원에서는 학교에 따라 행정방침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가 없는 대학, 잘하고 있는 대학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부여해야지 일률적인 행정을 강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 이대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을 폈으면 합니까?

 여대라는 관념을 벗고 대학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아울러 석·박사 인원을 늘려주기를 바라고 있조.

● 요즈음 교수들은 자신들이 지식인 집단 중 가장 시대에 뒤늦는다는 자조적인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점은 인정합니다. 사회가 진전해가는 속도와 대학의 발전속도에는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는 사회에서 대학에 상당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또 대학 스스로도 연구하고 학문하며 교육하는 대학 본래의 자세로 복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국제적으로 자료와 인적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부터 대학은 사회의 산실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대학은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는 임무에 복귀해야 합니다.

● 대학의 현실참여가 우리의 정치·사회사에 끼친 긍정적 영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학문연구와 현실참여 사이에는 갈등적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학생운동을 일반적으로 넓게 보면 지성인의 가치운동이라고 봅니다. 대학생들의 현실참여는 사회변혁·시대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와 대학에 긍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학생들이 앞서가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으면 학생운동은 일반화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같은 긍정적인 촉매작용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으면, 또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는 학생들이 사색하고 연구하며 학문분야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 젊은이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예. 기성세대와 그들 사이의 가치관이 다른 데서 오는 갈등이지요. 여대생들의 경우는 취업과 가정문제와의 갈등입니다. 이대에서는 여성취업센터를 설치해서 어떻게 하면 전문직에 여성들이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를 연구·조사하고 있습니다. 세대간의 마찰은 기성세대가 모든 분야에서 정상적으로 된다면 줄어들 것입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사회에 나가서 살면 다르다는 점을 예상하면서 기성세대의 부족하고 잘못된 점을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정상화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요?

 경제적으로 계속 성장은 해야 하나 분배와 실질적인 복지정책이 시행돼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파행적인 것이 많지 않습니까. 쉽게 횡포화하지 않고 쉽게 분노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환경오염이나 환경파괴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공동체 생활이 많이 승화되는 그런 사회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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