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연기와 반공구호 속 ‘민족 대교류’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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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회담 열릴지 관심

盧泰愚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한 ‘민족대교류기간’의 첫날인 8월13일 오후 임진각.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이산가족재회촉구대회’를 마친 실향민 6백여명은 임진각에 도착, 망배단 근처에 설치된 ‘망향의 우체통’ 7개에 북에 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6백여통을 띄웠다. 한편 이북향우회, 이북5도민통일촉진회 등 14개 단체로 구성되었다는 “38선철폐 민족통일기원대행진 추진중앙본부‘ 회원 2백여명도 관광버스편으로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들 중 일부는 ”판문점까지 행진하겠다“면서 경찰을 밀치고 자유의 다리 입구에 설치된 철책문을 절단기로 절단, 50m쯤 ’북으로 달려가는‘ 촌극을 연출했다가 잠시 뒤에 경찰에 의해 임진각 쪽으로 밀려났다.

 비슷한 시각에 임진각에 도착한 趙誠宇씨 등 범민족대회추진본부(이하 범추본) 실무접촉대표 3인과 南國鉉 文正鉉신부 등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실무접촉대표단 7인 그리고 홍익대 총학생회장 柳志榮군 등 서총련 소속 학생대표 9명은 모두 정부의 접촉불허 방침으로 제지를 받거나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연세대 교문 앞에서는 ‘8·15 범민족대회 출정 및 민족해방 45주년 기념식’을 마친 범추본 대표단을 태운 버스 5대와 이를 따르는 전대협 소속 ‘통일선봉대’ 대원 7백여명과 청년·학생 환송단 1만여명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보내달라” “못간다” 등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버스에서 내린 범추본 공동본부장 이창복씨 등 대표단 일행과 李澤天 서대문경찰서장 및 경비과장 사이에 즉석대화가 열렸다. 이씨가 “왜 평화행진을 막느냐”고 항의하자 서장은 “교통마비가 예상되므로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행진은 허용할 수 없다”면서 “집회신고 내용대로 대표단 차량만 통과시키겠다”고 맞섰다. 대화는 10분쯤만에 끝났다. 대표단 일행은 잠시 대책을 논의한 뒤에 “학생·시민들과 함께 걸어서 판문점으로 가겠다”고 발표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대표단이 뒤로 물러서고 쇠파이프로 무장한 통일선봉대원들이 앞으로 나서 경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연세대 앞 도로에 포진해 있던 9대의 다연발최루탄차에서 동시다발로 쏜 최루탄이 우박처럼 교정 안으로 쏟아졌다. “누구라도 제한없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비슷한 시각에 임진각 광장은 이날 오전에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가진 한국자유총연맹 등 60여개 단체 회원 2천여명의 ‘놀이마당’으로 변해 있었다. 이들은 “만나자 허물자 분단의 벽” 등의, 마치 운동권의 주장을 방불케 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풍물을 울리기도 했다. 또 이들 가운데 일부는 ‘민족대교류기간’의 첫날 철책문을 자른 사건을 재연하려는 듯 한때 자유의 다리로 통하는 초소 앞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내건 “선별초청 붉은 야수 경계하자”(태극단동지회) “경계하자 북측흉계, 바로 알자 좌익분자”(녹색회) 같은 플래카드로 보아 판문점에서 열리는 범민족대회 본대회에 참석하려고 임진각에 온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다음 날인 8월16일 오후 2시께부터 비가 내리고 있는 임진각 광장에서 천주교신자 7천명쯤이 참석한 가운데 정의구현사제단이 주최한 ‘90년 통일염원미사’가 열렸다. 광주대교구 대학생 신자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흥을 돋우는 가운데 “조국은 하나다” “해방예수 만세” “미국은 조국통일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등의 글귀가 쓰인 만장이 입장하는 것으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4시20분쯤 미사가 끝나자 청년·학생 신도 1백여명은 분단의 철조망 앞에서 간단한 의식을 치른 뒤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철조망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지난 13일과는 사정이 딴판이었다. 경찰이 사정없이 내리찍는 방패와 휘두르는 진압봉에 맞아 이재현군(세종대 전산과 2년)과 최경욱씨(정의구현사제단 간사) 등이 머리와 입술이 터지는 부상을 입었다.

 노대통령이 선포한 ‘민족대교류기간’에 벌어진 위의 사례들은 북한당국의 ‘선별초청’을 비난했던 정부가 정작 임진각행마저 입맛에 맞는 단체만 ‘선별초청’했고 때로는 ‘선별구타’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7·20 발표는 국민에게는 허탈감과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남북한 당국자간에는 불신의 깊은 골을 남겨준 셈이다.

 사실 7·20 발표가 나온 때만 해도 ‘대북 역선전 공세’니 ‘위기정국 탈피전술’이니 해서 비판적 여론이 없지 않았지만 정부 일각에서조차 “더이상의 대북카드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될 만큼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7·20발표 뒤에 나온 관련부처의 후속조처나 진행과정 그리고 그 결과 등을 따지고 보면 결국 7·20민족대교류 제의가 허구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를테면 범민족대회의 경우, 홍성철 통일원장과은 △판문점대회 무조건 불허(7·20 기자간담회) △각계각층 참여 아래 판문점대회 허용(7·23 3부장관 기자회견) △특정단체나 개인만이 아닌 각계각층 참여할 때 허용(8·2 기자회견)등 그때그때마다 입장을 바꾸어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게다가 통일원은 그동안 고수해온 ‘창구단일화’ 논리를 한껏 이용, 북한쪽의 전화통지문이나 방송보도를 선별 공개하여 통일논의뿐 아니라 정보까지 독점하려 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자면 겉으로 정부 아닌 민간이 중심이 된 통일운동을 ‘기술적으로’ 무산시킴으로써 비록 정부 위신에 손상을 입었을망정 창구단일화 논리의 고수에는 성공한 셈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정부가 적극 추진해온, 9월4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고위급(총리)회담이 과연 성사될 것인가이다. 그러나 범민족대회와 민족대교류 제의가 무산됨에 따라 회담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지난7월26일 범민족대회 2차실무회담이 무산되면서 당시 총리회담을 위한 제8차 예비회담을 마무리짓는 폐막연설에서 북측대표단 백남준단장이 “범민족대회에 전민련 대표가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 북남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고위급회담 본회담 개최에도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또한 8월10일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유엔 안보리에 보낸 서신도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서신은 8월15일 안보리 문서로 채택되어 유엔회원국들에게 배포되었는데 그 내용은 남한의 미국 및 유럽산 전투기 도입 계획 등 일련의 방위력 증강 방침과 군사훈련을 군사도발이라고 비난, 이는 남북한고위급회담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원 관계자들은 물론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대개 범민족대회와 달리 근본적으로 남북한 당국 양쪽이 모두 성사를 바라는 회담이라는 점에서 일단 ‘희망 섞인 성사’라는 쪽에 손을 들고 있다. 이같은 예측은 관변 시각에서 보자면 고위급회담 자체가 북한측이 ‘고대해온 성격의 회담’이라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또 진보적 학자들도 기대 섞인 낙관론을 펼치고 있는데 이같은 낙관론의 바탕에는 관변학자들과 달리 ‘북한도 변하고 있다’는 현실진단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군비축소라는 돌파구를 통해 극복하려는 북한 당국과 고위급회담을 통해 최고위급(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남한 당국의 이해관계가 크게 손상되지 않는 한 회담 성사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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