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 폐지해야 하는가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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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인간의 생명권과 관련하여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제기한 위헌 여부 심판도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이다. 폐지론자와 존치론자의 주장을 들어본다.

찬성

이상혁 변호사. 법학박사. 서울구치소교화협의회 의장. 사형폐지운동협의회 대표공동회장
 ● 사형제도는 사회보호와 범죄억지 및 예방을 위한 필요악적인 형벌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형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범죄가 늘어난다는 근거는 없다. 사형제도를 폐지한 경험이 있는 미국 8개주에서 조사해본 결과 사형제도와 범죄억지력이 무관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역사적인 예를 살펴볼 때 프랑스대혁명기나 나치시대에 강압적 통치수단으로 사형제를 많이 활용했지만 그 시대에도 범죄가 없지는 않았다. 우리의 경우 올해 10명 이상을 사형집행했지만 그 영향으로 범죄가 특별히 줄어든 것은 아니다. 사형은 생명을 말살한다는 의미에서 ‘필요악’이 아니라 ‘절대악’이다. 국가가 살인을 비난하면서 제도를 통해 스스로 인간의 목숨을 박탈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사형제도는 또다른 형태의 살인이다.

●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인신매매·가정파괴·떼강도 등 흉악범은 ‘응보’ 차원에서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자를 사형시킨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결손가정만 하나 더 늘리게 되는 꼴이며 사회의 어두운 골만 더 깊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차원적인 감정 때문에 사형을 집행한다면 인명경시 풍조의 악순환만 되풀이될 뿐이다.한편 오판으로 인해 인간의 생명이 박탈될 경우 영원히 구제할 수 없다는 위험 또한 있다. 6·25때 한 강인도교 폭파로 사형당한 최창식 공병감은 10여년 뒤 무죄판결을 받았다. 만약 사형제도가 정치보복과 관련된다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조봉암씨의 경우가 그렇다. 많은 국민은 사형제도 존속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의 감정은 유동적이다. 사형폐지운동의 본뜻이 널리 확산돼나간다면 국민의 감정도 변할 것이다.

● 살인을 한 사람을 살려준다는 것은 온정주의에 입각한 것이 아닌가?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것은 그들을 곧바로 사회에 내놓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회와 격리시켜 교화, 즉 개과천선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다. 오히려 흉악범에게는 종신형이 더 큰 응보가 될 수 있다. 흉악범들은 사형받는다는 데 겁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찰나주의·한탕주의자들이기 때문에 형도 찰나에 집행되기를 원한다. 그들에게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평생 감옥에서 노역형에 처해지는 것이 사형보다 훨씬 괴로운 형벌인 것이다. 16명을 살해한 김대두의 국선변호를 맡았을 때 “내가 무기로 변론할테니 너도 무기형을 요구하라”고 했더니 “아니 나보고 이 속에서 죽을 때까지 살란 말이냐?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반문했다. 그 뒤로 세 번을 찾아갔지만 요지부동이어서 일방적으로 무기를 선고해달라고 변론을 해버렸다. 영화 <빠빠용>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평생 감옥에서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이 사형보다는 훨씬 더 적절한 응보이다. 그것은 노동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교화 측면에서 부합될 뿐더러 격정범죄를 저지르는 흉악범에게 형벌의 살아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

● 사형제도가 폐지되면 사형을 선고할 사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게 되는데 결국 국민이 세금으로 그 부담을 떠맡는게 아닌가?

 재소자의 하루 급식비는 1천원 미만인 데 비해 그들이 노역으로 버는 수입은 하루 평균 2만5천원이다. 장기복역수는 출감할 때 돈을 받아가지고 나간다. 따라서 국가경제의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이익이다.

● 사형제도의 폐지가 우리나라에선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러한 생각은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범법자가 반드시 체포되고 처벌을 받게 된다면 사형제도와 같은 상징적 충격요법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사형제도의 폐지는 그 나라의 민주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군정 때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가 민주화가 되면서 다시 폐지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사형제도 폐지운동은 결국 법의 도덕적 복원운동, 법의 인간화운동이라 할 수 있다.

● 폐지를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공정하고 신속한 사법운영과 이른바 ‘미제사건’이 없게 하는 과학적이고 강력한 수사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죄를 지으면 꼭 잡힌다”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는 인식, 즉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붙잡혀 그에 상응하는 죄값을 받게 된다는 통념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인적·물적으로 수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또 흉악범의 경우 가퇴원이나 가석방이 허용되는 일이 없도록 한번 내린 판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종신무기형은 아니더라도 중무기형을 선고해 15년 이상 지난 다음 교정효과를 봐서 가석방·감형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으면 한다. 유기징역 25년 상한선을 없애고 징역1백년, 2백년을 선고하고 감형해나가는 방법도 좋다고 본다.

반대

 박정근 중앙대 법대 교수. 법학박사. 중앙대 법대 학장 역임. 한국형사법학회 고문.
 ● 국가가 살인행위를 비난하면서 사형제도를 인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사형은 주체만 바뀐 다른 형태의 살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인이나 사형이나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같은 것이라 볼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는 범죄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형벌에 대한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가장 크게 비난받아 마땅한 ‘살인’이라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사형은 ‘필요악’으로 존치해오고 있는 것이다. 존엄한 인간생명을 파괴하는 살인자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 현시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의 법적 확신이다. 사형은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되지 아니한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지만 다른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침해한 사람의 생명권까지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사회의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한도에서는 死罪 범인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 우리나라의 경우 사형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형제도가 범죄억지·예방 측면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형벌로 모든 범죄를 절대적으로 억지·예방할 수는 없다.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사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형제도는 그 예방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형벌로서의 사형이 범죄예방에 아무런 구실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나 아직 국민 대다수는 사형제도가 그 위협력을 가지고 흉악한 범죄를 예방하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로서는 피해자 가족들의 복수심을 가라앉히는 기능도 하고 있으므로 사형은 개인적 복수살인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 형벌이 잔인해질수록 범죄가 더욱 잔인해진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국가 공동생활 수단이 완력화되면 될수록 그것을 통제하는 모든 제도, 특히 형벌제도도 완력화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사형제도가 있기 때문에 사죄가 증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반대로 사죄가 늘어나기 때문에 사형이 존치 혹은 증가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사형선고 또는 집행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사죄가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일 경우 영원히 구제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더욱이 정치와 관련되었을 때 사형제도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도 될 수 있지 않은가?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은 명백한 위험 요소이다. 더구나 그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었을 경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사형제도는 ‘필요악’이지 바람직한 제도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그러한 우려 때문에 당장 사형제도를 전폐하는 것도 무리이다. 오히려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과 사형제도의 정치적 악용이 생길 소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형벌의 목적이 응보, 범죄억지 및 교화에 있다고 할 때 사형제도는 교화효과를 무시한 두가지 논리로만 성립된 형벌이 아닌가?

 사형은 응보와 억지기능만 가지고 있을 뿐 근대 형벌에서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교화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형제도는 가능한 한 현대사회에서는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할 형벌이고 나아가서는 전폐되어야 할 형벌이다. 다만 사형이라는 형벌기능이 없이는 질서유지가 어려운 우리나라 실정으로 볼 때 폐지하기에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볼 때는 존엄한 인간 사이에 형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정에선 사회보호 및 방어라는 측면에서 사형이라는 제도가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현행 사형제도에 보완할 점이 있다면?

 첫째 사죄규정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하고, 둘째 절대적 사형규정을 상대적 사형규정으로 개정해서 가능한 한 사형을 피하고 자유형을 선택하게 해야 하며, 셋째 사형을 선고하여 그것이 확정되어도 가능한 한 사면제도를 활용해서 사형집행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실정이 바뀌고 국민의 도덕적 감정이 변해서 사회의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형사정책상 사형의 형벌로서의 기능이 필요없을 때가 오면 사형은 전폐되어야 마땅하다. 사형폐지를 주장하기에 앞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사죄예방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다시 말해 사형이 필요없는 사회적 여건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의 존폐 여부는 다른 나라를 따라가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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