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는 반성문 써라”
  • 김상현 기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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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교수 ‘북한 핵 보도 행태’ 질타 김일성 사망 보도는 ‘긍정 반, 부정 반’

 ‘북한 핵 문제에 관한 한 언론은 사실 보도에도 실패했다. 게다가 ‘제멋대로’ 의견을 표출하는 바람에 북한 핵에 대한 공포, 국론 혼란과 분열, 국민의식의 불감증 같은 사회적 언론 병리 현상을 증폭시켰고, 더욱이 김일성 사후 ‘양극 전투식’ 보도로 핵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남북 대결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켰다.’

 최근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관훈클럽과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열린 ‘제6회 최병우 기자 기념 심포지엄’(9월 24.25일)에서 金政起 교수(외국어대.신문방송학)는 국내 언론의 최근 보도가 반통일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고 진단했다. 김교수는 <북한 핵 문제 보도와 남북교류>라는 논문에서 ‘국내 언론의 북한 보도가 무책임하다는 지적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유행한 북한 보도의 이상 기류는 신공안 정국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적 조작이라는 비판과 함께 한민족 공동체 회복과 같은 우리나라 통일정책의 궁극적 목표와 어긋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북한 핵 문제의 실상을 모르는 채 전쟁 공포증을 부추긴 미국 언론들은 <워싱턴 포스트>의 옴부즈맨 조안 버드에 의해 ‘낙하산 언론’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김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낙하산 언론을 좇아 남북관계에 첨예한 긴장감을 조장한 일부 언론 역시 낙하산 언론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교수는 94년 1~8월 8개월 동안 <동아> <서울>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 등 국내 여섯 일간지에 실린 북한 핵 관련 사설 1백77편의 내용을 토대로 국내 언론의 성향을 분석해 이러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는 “정밀한 분석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양이어서 일단 백분율만 제시하는 것으로 했다. 차후에 본격적인 논문을 완성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김교수는 사설을 분석하기에 앞서 각 신문의 기본 시각을 비교하는 자료로, 9월7일 이홍구 통일원장관의 기자 간담회에 대한 각 신문의 편집 편차를 예시했다. 김교수는, 기자 간담회에서 이부총리가 ‘남북대화를 위해 두달 전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된 때로 되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을 비난한 적이 없으며, 북한 당국자들도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등 전체적으로 협력과 조화를 지향하는 발언을 했는데도 <한겨레>를 제외한 대다수 신문이 ‘우적관(友敵觀)’에 입각한 대결.갈등형으로 편집.보도했다고 분석하고, “특히 <조선>이 극한 갈등형으로 기사를 부각해 조화형으로 기사를 작성한 <한겨레>와 가장 큰 대조를 보였다고”고 비교했다.

신문 사설 70% 이상 ‘강경 논조’
 김교수는 우적관에 기초한 이러한 시각은 사설 내용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면서, 국제 정치의 게임 이론인 ‘스태그 헌트(stag hunt: 사슴 사냥)’ 모델과 ‘죄수의 딜레마’ 모델을 적용해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두 모델 모두, 공존공영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 있지만 상대에 대한 믿음이나 협조하리라는 근거가 없는 한 그보다 불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가설을 담고 있다.

 국내 신문의 70% 이상은 이 가설대로, 북한은 믿을 수 없고 비협조적이며, 따라서 강경한 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논조를 띠고 있다. 여전히 북한을 적으로 보는 우적관이 우세한 것이다. 두 게임 이론에 따른다면, 핵문제를 다루는 국내 신문들이 남북관계가 상호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최선의 결과에 이를 수 있도록 주의.주장을 펴야 하는데도 해당 신문들의 사설은 반대로 그러한 방향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스태그 헌트 모델에 따르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남북한이 비핵선언을 이행하고 상호 체제를 인정한 틀에서 남북교류를 활성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그 방향으로 정부 정책을 유도해가는 데 인색했다..”(85쪽 아래 도표 참조)

 사설 내용의 단순한 빈도수에서도 이러한 결론은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난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쓴 사설의 63% 정도가 한국 정부의 핵정책 및 외교, 미.북한 협상, 제재 및 사찰 요구 등 대응 방안을 다루었는데, 북한을 비난하거나(20.9%), 제재를 비판하는 내용(38.3%)이 주조를 이룬 것으로 나왔다(85쪽 위 도표 참조).

 많은 국내 언론이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동기를 고정적으로 ‘남한 적화야욕’에만 두고 있지만, 김일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유력한 연구 결과도 있다고 전제한 김교수는 다음처럼 결론지었다. ‘북한의 핵개발 뒤에 숨은 동기.정책.전략.협상.행동양식.태도를 종합적이고 폭넓게 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언론의 몫이다.

 언론의 처지에서 김일성 사망 전후의 보도 양태를 반성하는 具宗書 박사(삼성경제연구소)의 논문도 소개되었다. <중앙일보>논설 위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김일성 사후의 언론 보도를 분석.평가한 논문 <북한의 신체제와 한국 언론>에서 구박사는, 북한이 김일성 사망을 발표한 직후 국내 언론이 발 빠르게 대응한 신속성, 그리고 세계 언론 보도의 정보원 노릇을 톡톡히 해낸 점 등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았다. 그는 “그 중 <중앙일보>는 김일성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전제로 5월 하순부터 북한부와 신문사 부설 통일문제연구소가 김일성 사망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미리 기사를 써놓는 등 사전 준비를 했다”고 예시했다.

언론은 흡수통일을 좋아한다?
 구씨는 그 반면에 과장 기사, 사실 무근 기사, 무리한 해석, 희망적 기대 심리의 기사화 등 부정적인 측면도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김평일 망명설’ ‘김정일 중병설’을 그 예로 들었다. 구씨는 그같은 보도 난조의 배경으로 △북한에 대한 정보 축적.연구 부족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평가 부재를 들고,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일성 사후의 북한은 어디로 갈까. 구씨는 다음 5개의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반동세력이 도전하는 소련식 ‘쿠데타형’ △개혁파가 주도하는 ‘중국형’ △군부가 집권하는 개발독재식 ‘한국형’ △급진파가 집권하는 옐친식 ‘러시아형’ △민중봉기로 붕괴하는 ‘동독형’. 그에 따르면 반동파의 집권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개방.개혁을 택하여 미국과 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이 민중봉기에 의해 동독처럼 무너지지 않는다면 중국형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특히 구씨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지원을 차단하고, 미국이나 중국이 유사시 한국에 의한 통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확고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남북통일의 현실적 모델로 독일식 흡수 통일을 상정한 최근의 언론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구씨는 논문에서 ‘평화적인 흡수 통합이 민족 이익을 가장 잘 보장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은 독일식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구씨는 “김일성 사망은 한국 정부와 사회, 한국 언론에 많은 문제를 유익하게 제기했다. 정부와 언론은 민족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국가의 번영을 영구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정책을 결정하고 보도.제작에 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金相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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