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주년특별기획 격변의 5년 달라진 지표
  • 이흥환 차장대우.강용석 기자 ()
  • 승인 199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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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으로 가는 진통과 희망

냉전 체제 붕괴 등 국내외 변하 ‘질풍 노도’… 신용카드'첨단통신'유통 ‘지각 변동’, 시민 의식도 급속 팽창
앨빈 토플러는 <권력 이동>의 서문에서 저서의 성격을 ‘인류를 21세기로 내모는 놀라운 변화들을 이해하려는 저작’이라고 규정했다. 변화는 과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토플러가 표현한대로 불투명한 미래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변혁의 세찬 물길…50년 같은 5년
 <시사저널>이 탄생한 89년 10월부터 94년 10월 현재까지 5년 간의 변화상은, 격변하는 이 사회가 과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회 변화상을 지표로 추적해본 결과 얻어낸 결론은 한가지이다. 과거 5년간 일어난 변화의 범위와 속도, 과정과 방향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은 이제 선진국 문턱에 서 있으며, 지난 5년 간의 변화는 선진국화라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범죄?교통 등 ‘선진국형 질병’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음은 물론이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20세기 말을 향해 치달아온 지난 5년은 한마디로 격변의 시기였다. 개인을 둘러싼 국제 질서, 국내 정치, 사회?문화의 세 동심원은 현기증을 일으키리만큼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개인은 물론 특정 조직이나 국가조차도 단기간의 급속한 변화에 휘말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국내외 언론은 단편적인 정보를 마구 쏟아냈고, 통계 정보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변화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나 그 배경에 숨어 있는 틀을 파악하지 못하면 곧 도태하는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변화는 과연 우리를 어디로 내몰고 있는가. 국제 질서라는 이름의 동심원은 가장 바깥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변화의 폭과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개인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정치를 반영한 두 번째 동심원 역시 변화의 폭과 속도에서 가히 혁명적이었고, 세 번째인 사회?문화 변화는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개인의 생활 형태를 실감나게 변화시켰다.

 지표상 변화를 추적하는 데 5년이라는 단위 시간은 전통적인 통계 변화의 개념에서는 그리 적절한 수치가 아니다. 최소 10년을 기초 단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과거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통계 전문가들은 이제는 1년단위로 변화상을 추적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 70,80년대의 5년과 90년대의 5년 사이에는 매우 큰 질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사저널> 창간 이후 지금까지 5년간의 국내 지표 변화 정도는 우리가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대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다가는 영락없이 문명의 도태를 맞고 말 것이다.

 그 5년 동안 국내에서는 대통령 2명과 국무총리 7명, 부총리 11명과 장관 1백7명이 바뀌었다. 대학교 27개가 새로 생겼고 전문대학 28개가 새로 생겼으며 12개가 없어졌다. 국민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42.1명에서 38.8명(93년 말 현재)으로 줄었고, 대학교의 학과당 학생수도 247.1명에서 233.2명으로 감소했다.

 제2호부터 제260호에 이르기까지 <시사저널>의 ‘사람과 사람’난에는 총 1천8백95명이 소개 되었는데, 국내 인물이 1천5백19명, 국외 인물이 3백66명이고, 남자 1천3백30명과 여자 5백65명이 소개되었다. 또 러시아 우주선에 탑승한 원숭이 한 마리(제172호)와 삽살개 12마리(제160호), 129 응급전화(제116호)가 ‘사람의 난’에 실리는 영광을 안았다. <시사저널>은 또 제260호까지 발행하는 동안 합병호 아홉 번, 특별호(호외) 한 번을 냈다.

문화장르마다 ‘밀리언 셀러’ 홍수
 이 기간에 에이즈로 53명이 죽었고, 의사 1인당 인구는 1천67명에서 8백55명으로 대폭 줄었으며, 종합 병원이 18개, 정신 병원이 16개 신설되었다.

 78만5천여 명이 새로 휴대용 전화기를 가지게 됨으로써 무려 20.6배가 늘어났고, 무선 호출기 소지자도 4백85만명이나 늘어났으며, 개인용 컴퓨터 보급 대수는 5백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두 가구당 1대꼴로 컴퓨터를 들여놓은 셈이다.

 지난 5년 동안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은 7만명이 넘으며, 편의점은 7개에서 1천3백47개로 불어났고, 신용카드 가맹점은 카드 발행 회사 일곱을 통틀어 무려 백만 군데가 더 늘었다. 가맹점 수가 급증한 원년은 93년이다. 92년 94만8천이던 가맹점 소가 1년 만에 39만9천개가 늘어나 93년에는 1백34만7천개를 기록했다. 94년 3월 말 현재 국내 신용카드 이용액은 8조2천6백5억원에 달한다.

 대중 문화 상품은 본격적인 ‘밀리언 셀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희망사항> <하여가> <핑계> 등 무려 9개의 음반이 밀리언 셀러로 기록되었고, 단행본에서도 밀리언 셀러가 16개 나왔으며, 미시?야타?야따?벌타?난데족 등 신세대의 떠오름을 알리는 신조어들이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양산됐다.

 민간 경비업체의 급증도 변화의 숨은 양식을 보여준다. 89년 2백7개소이던 이들 업체는 금융실명제로 호황을 타면서 94년 9월 말 현재 5백70개로 늘어났다.

 애주가들의 입맛이 고급화한 것도 큰 변화다. 출고량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맥주 1백20만ℓ에서 1백64만ℓ, 소주 72만ℓ에서 76만ℓ), 비열처리 맥주가 히트 상품이 되고, 부드러운 소주가 점차 인기를 얻는 추세다.

‘전두환 하산’ 호외, 90년대 불안 예고

 세계 질서 재편 과정은 숨돌릴 틈조차 없이 가속도가 붙었다. 옛 동독이 국경을 전면 개방한 것은 89년 11월9일이다. 그 달 26일에는 고르바초프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논문을 <프라우다>에 발표했고, 12월22일에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츠쿠 독재 정권이 붕괴되었다.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변화와 동유럽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세계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냉전 체제 종식과 함께 한?소, 한?중 수교라는 대사건은 이미 역사 속에 묻혀버렸고, 김일성 사망 역시 남북한 통일 논의를 가속화하는 견인차 노릇을 하는 등 국내외의 급변하는 정세는 미래에 대해 단기 예측조차 불투명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막 아장걸음을 걷기 시작하면서 세계사 격변의 현장을 추적해 오던 <시사저널>은 탄생 백일을 기념하는 잔치 대신 그 해 12월31일 백담사에서 내려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 사건을 호외로 제작하느라 89년의 마지막 밤을 지새웠다. 새로운 90년대가 결코 평탄치 않으리라고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민자당 탄생에서부터 문민 정부 출범에 이르는 정치사의 변화는 새로운 사회, 엘리트 출현에 대한 욕구와 함께 관료주의의 벽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 무대에서 냉전 체제 붕괴라는 대변혁이 진행되던 그때 우리는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이라는 희대의 정치 사건에 매달려있었다. 그, 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생산액은 5천2백10달러였고, 무역량은 1천2백38억5천만달러로 세계 20위였다. 5년 전인 당시의 각종 사회 지표는 일반적으로 ‘점진적 증가 추세’라는 80년대식 변화의 관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90년에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급류에 휩싸여 급격하게 도시화?정보화로 치닫기 시작했다. 90년을 기점으로 가장 두드러진 사회 변화상의 하나는 신용카드 발급 급증이다. 89년 말 현재 7백만 장밖에 안 되던 카드 수가 90년 들어 천만장을 돌파했고, 그뒤로도 증가 추세가 계속되어 94년 6월 말 현재 2천1백23만장을 기록함으로써 무려 3배에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다. 신용카드를 이용한 통신 판매가 새롭게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통신 판매액도 89년에 비해 7.7배나 신장세를 나타냈다. 소비자 신용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소비자 대출에 새로운 수단이 생긴 것이다. 물론 소비자 신용 시장은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다.


구멍가게 있던 자리에 편의점
 개인의 생활 방식, 즉 ‘사는 법’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매우 뚜렷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가옥의 난방 방식은 연탄 아궁이→연탄 보일러→기름 보일러→가스 보일러로 급격히 바뀌었으며, 싸전?구멍가게?연탄가게가 차지했던 자리에는 편의점이 대신 들어앉아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다. 89년 우리나라의 편의점은 통틀어 7개였다. 그랬던 것이 93년 말 현재 1천3백47개로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94년 말까지는 1천5백개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골목마다 즐비했던 구멍가게를 몰아낸 편의점의 매출액 역시 5년 만에 무려 7백50배로 늘어나 94년 말 추정치는 약 9천억원이다.

 편의점은 로손(태인유통) 등 외국 기술을 도입한 회사 6개와 해태유통의 웰컴 등 국내사 5개가 치열한 판촉전을 벌이고 있으나, 국내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기획?시장조사?진열에서 외국 사가 한발짝 앞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 여가 생활의 질적 변화도 눈에 띄는 큰 변화 중의 하나다. 특정인의 겨울 스포츠로만 인식되었던 스키는 겨우 2∼3년 사이에 대중 레저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고, 수상 스키?패러글라이딩 같은 레저 스포츠 인구도 급격한 추세로 늘어나고 있다. 한 예로 스킨스쿠버 다이빙의 경우 89년에 7만∼8만명이던 동호인 수가 94년 9월 현재 12만명을 웃돌고 있다.


자동차 ‘폭발’ 정보통신 ‘만개’
 자동차 등록 대수는 94년 6월 말 현재 6백80만대를 넘어서 7백만대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 중 자가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65.4%인 4백46만대 가량이다.

 자동차 사고 발생 건수는 89년 약 25만건이던 것이 93년 말 현재 26만건으로 조금 늘었고, 사망자 수는 1만2천여 명에서 만명 선으로 떨어졌다. 사망자 수는 91년에 1만3천4백여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92년(1만2천6백40명) 이후 수그러들기 시작했으나. 교통사고율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 발생 수도 2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89년 37명이던 것이 94년 6월 말 현재 63명이다.

 이동통신 서비스이 대중화야말로 지난 5년간 변화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다. 특히 차량 전화와 휴대 전화 등 이동 전화 신규 가입자가 94년 들어 부쩍 늘어남으로써 95년에는 이동 전화 서비스 신청자가 유선 전화 신청자 수를 웃도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96년부터는 디지털 방식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개시될 예정이다.

 휴대용 무선 전화기는 90년에 8만대밖에 되지 않던 것이 91년에 16만대를 기록해 2배넘게 뛰어올랐고, 뒤이어 27만대(92년) 47만대(93년) 82만대(94년 9월 말 현재)로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삐삐로 통칭되던 무선 호출기 또한 급신장세를 나타냈는데, 94년 6월 말 현재 여성 가입자 수가 전체 가입자 5백만명의 39%나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제는 전화 시대가 아니다. 지난 5년은 미흡하기 짝이 없던 우리의 정보화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으나,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초보 단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에 조사된 통신개발연구원의 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정보화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일본은 1천22, 미국은 8백8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1가구 1전화라는 최소한의 통신 수요충족에만 매달려 왔다. 데이터통신?위성통신?무선통신 등 통신 고도화 면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또 통신 설비가 주로 가정용으로만 보급되면서 업무용 통신 설비 보급이 낮았던 것도 정보화 수준을 초보 단계에 머물게 한 원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우리는 통신회선의 82%가 가정용이고, 업무용은 불과 18%이다. 그에 반해 싱가포르나 일본?홍콩?미국의 업무용은 모두 30%를 넘는다.

 통신개발연구원 박영철 박사의 <패러다임 전환기의 통신정책>이라는 연구보고서(94년 4월 펴냄)에 따르면 기본 통신보다 고도 통신 부문에서 선진국과 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컴퓨터와 연계된 고도 정보 통신 보급 및 이용 정도를 나타내는 정보 통신과 기본 통신의 서비스 매출액 비율을 보면 우리는 기본 통신이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반면 데이터 통신과 데이터 처리가 가각 4%, 6%로 극히 낮게 나타났다.

 종합정보통신(ISDN)은 싱가포르(89년)와 프랑스(90년)가 전면적인 서비스에 돌입했으며,  일본이 94년 6월 현재 92% 보급수준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체신부 주관으로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사업을 이제 막 시작해 2010년까지 정보유통 체제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입김 거세진 지역 주민?시민단체
 93년 6월13일 경남 거제군 장승포항에서는 ‘해상 선박 시위’ 사건이 있었다. 전에는 좀체 보기 힘들었던 지역 주민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시위였다. 고기잡이 배 50여 척까지 동원하는 지심도 주민 3백50여 명이 시위를 벌인 이유는 군사시설 설치 반대였다.

 이튿날 광주에서는 국내 주택건설 사상 최초로 아파트 부실 공사에 항의하는 입주민들의 집단 이주 요구를 시공주가 수용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드높았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핵쓰레기장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운동 단체의 급성장 역시 지역 주민들의 발언권 강화와 함께, 통계 수치로 집계하기는 힘들지만 지난 5년간의 변화 중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이다.

 경실련이 태동한 것은 89년 7월8일. 4평짜리 사무실에서 상근 지권 4명으로 출발했다. 발기인이 중심이 된 회원 수는 총 5백여 명이었는데, 5년이 지난 94년 10월 현재는 1만5천여 명으로 불어났고, 1백30평 사무실에 상근 직원만 해도 지역 인원을 포함해 백여 명으로 늘었다.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경실련의 높아진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민입법위원회 활동이다. 법학 교수가 변호사 등 50여 명이 참가한 이 위원회의 시민 입법 운동은 법률 개정안 제출 등 시민의 목소리를 직접 법률 제정에 직결시킨다는 점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94년 9월12일 한국 사회에는 개별 시민운동 모임의 결집체인 ‘한국 시민 단체 협의회’(시민협)가 탄생함으로써 비로소 시민운동권이라는 도 하나의 변수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21세기 진입을 1년 앞두게 될 1999년까지의 앞으로 5년이다. 정보화사회 본격 진입, 국제질서 재편 등 국내외의 소용돌이는 한시도 멈출 기세가 아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21세기 한국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 틀림없다. 94년 현재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21세기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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