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의 ‘숨은 친구 찾기’
  • 경남 양산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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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상에 대통령 측근 등 ‘손님’은 많았지만 ‘평생 동지’는?

“일본에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지만 한국에는 친구가 한명도 없다. 사람들이 내 앞에서 한 말들은 기회주의적인 것들이 많았다.”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이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칩거하면서 월간 <한국논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모친상을 당해 1년 7개월 간의 해외유랑 생활을 끝내고 돌아오자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았다. 그중에서 특히 각각 이해를 달리하는 정치권의 인물들은 모두 그와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기색이었다.

  박태준씨에게 응어리가 가장 많은 사람은 아마도 김영삼 대통령일 것이다. 김대통령은 박씨의 강력한 도전으로 하마터면 민자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칠 뻔했다. 후보가 된 뒤 지지를 호소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박씨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로 호된 시련을 겪었다. 뇌물 수수와 탈세 혐의로 기소됐으며, 포철 회장 퇴직금과 서울 북아현동 자택까지 압류당했다. 그 후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됐고 어머니 임종도 못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의 사람들이 잇따라 빈소에 나타났다. 최형우 내무부장관, 문정수 민자당 사무총장, 서석재 민자당 당무위원. 모두 김대통령의 측근들이다.

  특히 최형우 장관은 박씨보다 먼저 빈소에 도착했으나 밖에서 한참을 기다린 뒤 박씨와 직접 대면하는 성의를 보였다. 최장관은 “평소 세배를 다닐 정도로 고인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지나치게 정치적 의미를 두지 말아달라”며 기자들의 입을 미리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왔다는데 사실이냐’ ‘김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것은 과거를 잊자는 뜻 아니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계속되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상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라고만 말했다. 여운이 남는 얘기이다.

YS · DJ 메시지 전달설도
  반면 최장관 등을 만난 박태준씨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나 때문에 어머니가 2~3년은 빨리 돌아가셨다. 임종도 못한 나는 큰 죄인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임종도 못하게 한 현 정부에 대해 유감이 많은 듯한 모습이었다.

  문상객 중 또 눈길을 끈 사람은 이동진 전 의원이었다. 그의 현재직함은 아 · 태평화재단 후원회장. 그는 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태준씨의 참모로 활약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가 다녀간 뒤 ‘김대중씨의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박씨와 김대중씨의 친분은 의외로 돈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씨가 김이사장을 직접 대면한 것은 13대 국회 때였다. 두 사람은 13대 국회 상반기 1년 동안 같은 경제과학위원회에 속해 있었다. 박씨는 그 때 김이사장의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인 사고에 감탄했다고 한다. 특히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경제 문제에 정통한 것을 높이 평가하여 김이사장에 대한 여권 특유의 고정관념을 버리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김이사장이 박정희 대통령 추도위원회 고문을 맡는 등 구여권 인사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는 만큼 ‘박태준씨에게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도 있을 법한 얘기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은 박철언씨도 찾아왔다. 그는 “대구 보선에서 보았듯 이제 우리 국민은 정치 보복을 용납하지 않는다. 박태준씨에 대한 법 집행도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방자치 선거와 총선을 계기로 정계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요즘 어떤 식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지 숙고중이다”란 말도 했다. 그는 떠나면서 박태준씨의 손을 꼭 잡고 자주 찾아뵙겠다고 했다.

  92년 대선을 앞두고 박씨를 버렸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찾아왔다. 그는 박씨에게 “옛날에 이룩했던 큰 일에 대한 보람을 찾으셔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대해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겠다는 5, 6공 관계자들의 요즘 정서와 맥이 닿는 말이다.

  박태준씨는 찾아온 정치인 중 누구를 친구로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들 모두를 기회주의자라고 느꼈을까.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이 찾아와 그가 평생 몸바쳐온 강철에 대해 얘기를 나눌때만 그의 얼굴에 잠시 웃음이 떠올랐다.
경남 양산 · 文正宇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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