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로 간 ‘의혹의 신물질’ K11587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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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화학연구소 국정감사서 처리과정 집중 추궁 … 진상조사단 추진 논의도

지난호 <시사저널>이 커버스토리에서 제기한 ‘신물질K11587’의 운명이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랐다. 10월 10일 오후 대전 대덕연구단지 과학기술원에서 약 세 시간 동안 진행된 화학연구소에 대한 국회 체신과학위원회의 국정감사는 신물질K11587의 처리 고정에 대한 심판장을 방불케 했다. 30여명의 화학연구소 간부급 직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증인으로 나선 강박광 소장은 의원들의 의혹 제기와 증거자료 제출시 시종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K11587 국감’의 포문은 민자당 이호정 의원이 열었다. 이의원은 자기가 K11587에 대해 그동안 깊이 조사해 왔다고 강조한 뒤 수집 · 분석한 자료를 증거로 내세우며 일곱 가지 사실을 규명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공개한 일곱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K11587은 국제 특허 출원이 돼있지 않다 ②K11587은 G7과제가 아니었으며 성보화학은 포장 실험을 실시한 바 없다 ③ 독일 바이엘사는 K11587 실험 데이터를 내놓지 않고 있다 ④K11587은 고의적으로 G7 과제에서 누락됐다 ⑤K11587 연구기밀은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국내와 국외에 불법 유출되었다 ⑥G7 과제인 K11451이 이중 계약되어 있다 ⑦과기처가 K11587사장을 방조했다.

  증거 자료를 제시해 가며 이같은 내용을 차근차근 추궁해 나가자 답변에 나선 강박광 소장은 대부분 “시간관계상 반박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며 추후에 보완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강소장의 답변은 대부분 제출된 증거들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흥분한 의원들의 고성이 오갔고, 이를 보다 못한 화학연구소 배석자 일부가 나서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강조하며 질의의 예봉을 피해 나갔다.

  강소장은 전체적으로 우왕좌왕하며 답변함으로써 참석 의원들의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세밀한 구석까지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시인함으로써 이 날 국정감사가 철저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분위기임을 드러냈다. 강소장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의 네 가지이다. ①K11587DP 대해 성보화학이 공식적인 포장 실험을 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②K11587은 화학연구소가 성보화학으로부터 하청 계약을 받아 연구를 수행했다 ③이중 계약 문제는 보완 계약으로 이해해야 한다 ④독일 바이엘사에 K11587DMF 준 것은 국내에서 실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민주당 유인태 의원은 K11587 처리를 둘러싸고 생긴 화학연구소 내분 과정에서 조인호 박사를 ‘부당하게’ 추방한 점을 지적했다. 유의원은 “규정상 박사급 선임연구원은 2년씩 고용 계약을 연장하도록 돼 있는데 조박사에게는 지난 2월에 6개월만 고용 합의 계약을 맺으면서 본인 동의도 없이 서무 여직원에게 도장을 찍게 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강소장은 “행정 착오를 인정한다”라고 밝혔다.

민주당 “당 차원 해결 노력” 약속

  세 시간 동안에 K11587 처리를 둘러싼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의원들은 이 문제를 이후 있을 상임위원회(체신과학위) 활동과 본부(과기처) 감사를 통해 반드시 해결해 나가기로 결의했다. 특히 이 날 국감에 참석한 민주당 이기택 대표는 약 한 시간 가량 신물질K11587 합성자인 조인호 박사를 독대한 뒤 당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민자당 이호정 의원은 자신이 국감 자료로 화학연구소로부터 제출받았다는 K11587 약재 샘플을 공개하며, 이의 진품 여부를 가리기 위한 ‘진상조사단’ 구성과 국회 차원에서 예사능ㄹ 투자해 ‘공정한 포장 실험’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장 경우 위원장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한다면서 직권으로 그 추진을 민자 · 민주 양당 간사에게 맡겼다.

  이제 신물질 K11587 처리 과정을 둘러싼 진실 확인 작업은 정치권의 숙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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