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이기주의와 독선의 충돌
  • 김재태 기자 ()
  • 승인 1990.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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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 직원 항명 파동/징계해도 불씨 남을 듯…사태에 대한 상하 인식차 커

 건설부 직원들의 장관에 대한 항면성 집단행동사건은 주동자급 13명을 총무처 징계위원회에 회부함으로써 표면상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내부분만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어서 많은 파장을 남기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은 어느 조직보다 복무기강이 중시되는 공직사회에서 집단행동사태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6공정부의 국가관리능력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칫 통치권 누수문제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월요일인 지난 20일 과천 정부제2청사내 지하 대강당에서는 오전 9시30분부터 건설부 월례 직원조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미 이틀 전 토요일에 조회개최 공고가 있었으므로 직원들은 9시가 조금 지나면서부터 속속 강당으로 몰려들었다. 9시27분경, 본부직원 7백1명 중 5백여명의 직원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權寧珏장관이 입장하자 조회는 바로 시작됐다. 식순에 따라 먼저 국민의례가 거행됐다. 사회자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알리자 참석자 전원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후 ‘바로’라는 구령이 나오자마자 돌연 장내가 소란해지더니 몇몇 직원들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 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나갑시다” “안 나가고 뭐해”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부는 영문을 모르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별다른 동요없이 강당을 차례차례 빠져나가 이번 사건이 사전에 준비된 행동임을 암시했다. 국기를 향해 돌아서 있다 뒤늦게 이 광경을 목격한 권장관이 바쁘게 마이크를 붙잡았다. “여기는 공직 사회입니다.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장관의 격앙된 목소리는 그러나 썰렁하게 자리가 비어버린 강당 안에서 공허한 울림만을 남길 뿐이었다. 앞자리에 있던 국장급 등 간부직원들만이 엉거주춤 선 채로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른바 ‘건설부 집단항명 파동으로 불리는 퇴장사건은 이렇게 일어났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사건은 이미 며칠 전부터 진행돼온 셈이었다. 17일 오후 건설부 직원들 사이에는, 권장관이 전날 직제개편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소식과 함께 직제개편 저지를 위한 연판장이 돌고 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돌았다. 18일 아침에는, 사무관들을 중심으로 직원 70여명이 출근하자마자 4층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직제개편안 내용과 기구축소의 이유에 대해 고위간부의 명확한 설명을 듣게 해달라며 가벼운 시위를 벌이고 해산한 뒤 이들을 포함한 1백50여명의 직원들이 다시 4층 대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직제개편방향에 대해 각자 알고 있는 정보를 서로 교환하면서 ’직원들 사이에 너무 많은 유언비어가 돌고 있으므로 정확한 내용을 알기 위해 설명회를 열어달라‘는 요구를 계속했다. 

 

1천4백여명의 신상에 변화

 이들은 결국 金大泳차관이 그 자리에 나와 ‘직제개편안은 이미 청와대에 보고한 사항이다. 20일 직원 전체조회에서 장관이 직접 설명할 것’이란 요지의 발언을 한 다음에야 자리를 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기술관리관실의 朴東華시설기정은 ‘정당한 절차없이 직제개편내용에 관한 설명회를 개최하는 데 앞장서 이번 집단행동의 원인을 제공한’혐의로 중징계(파면·해임·정직) 대상에 올랐고 徐奇東 李文揆 金一中씨 등 3명의 토목기좌도 같은 혐의로 경징계(감봉·견책) 대상이 됐다.

 한편 기획관리실의 崔然忠행정사무관은 ‘업무지시를 위해’ 각 부서 주무계장들을 근무시간 종료 후에 소집, 별도의 회의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도 직제개편안이 화제가 되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최사무관은 이 모임에서 ‘조회시 집단퇴장을 결의한 혐의’로 역시 중징계 대상자로 분류됐으며, 같은 이유로 安濚基 崔正基 朴奎松 崔大? 徐炯夏 黃海成씨 (이상 경징계) 와 李承在 金享洙씨 (이상 엄중경고) 등 사무관급 직원 8명이 징계대상에 올랐다. 또 20일 아침 직원조회가 열리던 시점과 때를 맞춰 ‘임시직(?) 몇사람이 건설부를 망치는가’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팩시밀리로 몇군데 언론사에 전송되고 일부는 직원들에게도 배포되었다. 이 유인물은 “장관 이하 몇몇 입안 인사가 즉흥적인 발상으로 30여년간 대과없이 국토건설이란 대명제를 수행해온 부처를 공중분해시키려 한다. 진정 나라를 위한 조직개편이라면 상당기간 장기적인 연구검토와 각계의 의견수렴 및 진짜 주인인 건설인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어야 한다”고 지적, 직원들의 반발이 단순한 직제개편 내용에 대한 불만뿐만 아니라 그 결정과정상의 문제 때문인 것을 나타냈다. 출처는 단지 ‘건설부 OB'(전임직원)라고만 밝혀져 있을 뿐이지만 직원들은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부처 중 유일하게 건설부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이번 개편안은 ‘명실상부한 정책부서로서의 위상을 정립한다’는 취지 아래 건설부업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각종사업의 집행기능을 각 지방자치단체와 도로공사 등 산하 투자기관에 이관하고 건설부는 정책·기획·조정·감독업무만 수행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기능이 중복되거나 영역구분이 애매모호한 업무는 타부처로 넘기고 타부처의 건설부 관련업무는 편입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사업집행기능의 지방 이관에 따라 총 37개 소속기관 중 국토유지건설사무소 등 24개 기관이 지방행정기관에 편입되도록 되어 있다. 현재 건설부의 직원수는 본부 7백1명과 37개 소속기관 2천3백18명 등 총 3천19명으로 이 중 약 77%가 사업집행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개편안대로 하면 지방행정기관으로 소속이 바뀌는 24개 기관의 1천1백여명은 모두 하루아침에 지방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또 기구가 대폭 축소되는 5개 지방국토관리청 직원 6백26명 중 상당수도 지방행정기관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커 전직원 가운데 줄잡아 1천4백명 가량이 신분상의 변화를 겪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일반에서는 바로 이러한 위기의식이 이번 집단행동사태를 촉발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권장관은 이번 사건을 가리켜 “조직개편에 따른 신분불안이 극단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했고 대다수의 정부부처 관리들도 같은 생각을 나타냈다. 이점에 대해서는 집단퇴장에 참가한 한 직원도 “솔직히 말해 하루아침에 신분이 달라진다는데 참을 수 있겠느냐”는 말로 간접시인했다. 정부의 한 관리는 “건설부 업무가 다른 부처와 달리 많은 이권과 연관돼 있어 이를 놓친다는 데 대한 반발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을 비치기도 했다.

 

“지방국토관리청 직원 집단 사표” 소문도

 그러나 많은 건설부 직원들은 신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집단행동의 근본동기로 작용했다는 일부의 지적에 노골적인 반발감을 표시했다. 그들은 유인물에도 나타난 것처럼 직제개편과 같이 중대한 시안을 장관과 일부 고위간부들이 일체의 내부의견 수렴과정 없이 ‘밀실작업’으로 추진했다는 점을 가장 직접적인 행동동기로 들고 있다. 즉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절차상의 잘못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행동의 주동자로 꼽혀 총무처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직원들도 한결같이 “직제개편은 미래사회의 능률적인 행정체제를 다진다는 의미에서 필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그러나 직원들의 신분상의 이익에 관한 문제를 상부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또 직원들 가운데는 이번 행동을 권장관의 평소 업무스타일과 관련하여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직제개편이란 불씨를 만나 폭발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장성출신인 권장관이 지나치게 군대식으로 부하들을 통솔하려 든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내용보다는 시간만을 따진다”는 비판과 “국장급들마저 장관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할 만큼 귄위주의적이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한 직원은 “다른 부처는 몰라도 건설부에서 권위주의청산은 꿈같은 일”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주동자들의 징계처리 방침에도 불구하고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말끔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일부 직원들은 동료들이 징계에 회부된 사실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모 지방국토관리청 직원들이 집단사표를 본부에 우송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도는 등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이다. 한 직원은 “이번 사건은 누가 주동할 필요도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징계회부된 동료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또 설명회 개최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징계대상이 된 한 직원은 “차관도 참석한 설명회가 어떻게 무단집회가 될 수 있는가”라고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보는 상부관리층과 하위 직원들 사이의 근본적인 인식차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일부에서는 나오고 있다. 즉 상부층에서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신분변화의 위기감 표출로 보고 있는 반면 하위 직원들은 장관의 업무스타일에 대해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폭발된 것으로 자가진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인식의 괴리현상이 해소되지 않고는 근본적인 사태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국가공무원이 집단행동으로 자기의 의사표시를 하고 나선 이번 사건이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끼칠 악영향이 대해 우려하는 소리도 높다. 그동안 89년 4월 국회의원에게 경찰관이 뺨을 맞았다는 이유로 전국의 경찰관 4천여명이 집단사표를 제출한 사건과 같은 해 7월 행정개혁위원회의 동자부폐지안에 반발, 동자부직원들이 서명운동을 벌인 사건이 있긴 하나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이 집단행동을 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그만큼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또 지난 25일로 집권후반기에 접어든 노태우대통령의 통치기반 안정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점에서 발생해 의미가 증폭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단임대통령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는 집권후반기의 ‘통치권 누수현상’(레임덕)에 대한 우려가 정치권 일각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정부·여당으로서는 이번 사건의 파장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청와대측이 사건 직후 “내각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개인적 이익보호라는 소아적 발상으로 공무원들이 집단행동을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姜英勳총리가 사건 직후 즉각적으로 주동자 엄중처벌과 함께 공직자기강확립을 거듭 지시한 것도 이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단으로 볼 수 있다.

 여당에서도 외면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확대해석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 핵심 당직자들은 심각한 위기상황의 한 단면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金永三대표는 “국가기강확립이 제1과제”라고 말했고 金鍾泌최고위원은 “너도나도 민주화니 권위주의 타파니 외쳐대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위계질서를 거듭 강조했다. 한 당직자도 “공무원사회가 이 지경이 됐기 때문에 노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나라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공무원 사회에도 민주의식 팽배”

 일반 국민은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 공직사회에서 이같은 집단행동이 표출된 데 대해 대부분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면서도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의 잔재가 시급하게 청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원 朴?勳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아직도 민주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도층 인사들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사회지도자들의 신뢰성있는 행동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金浩鎭교수(정치학)는 “관료는 ‘공익보다 자기의 신분상 이익에 더 민감하다’는 파킨슨의 법칙이 이번 사건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보고 “조직의 관리를 맡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구태에서 벗어나 시대흐름에 맞춰 사고를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회건설위 평민당측 간사로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서두르고 있는 李元湃의원은 “이제 공무원들 사이에도 민주의식이 팽배한데 관리자계층이 이를 무시하고 군대문화의 폐습을 고집하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국가공무원이 신분상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집단행동을 취함으로써 공직기강을 크게 훼손시켰다는 점과 함께 고위관료들의 비민주적 지휘통솔방법의 문제점을 새삼 부각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사건 발생에 일부 책임을 공유한 권장관에 대해서는 노대통령도 “시대착오적인 관료주의의 발로”라면서 간접 비난했고 정부당국에서도 “사태가 진정된 후 어떤 방법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와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집단이기주의’의 실상과 함께 ‘권위주의체제의 청산’이란 오래된 과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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